속도는 네 발로 달리지 않는다

황소와 말, 그리고 한국의 과속방지턱




은하는 그날,

갯벌 근처 한식당 앞 도로에서

두 마리의 전설을 마주쳤다.



람보르기니, 황금황소 에디션.

페라리, 적토마 에디션.


둘 다

극단적 속도와 본능을 상징하는 금속 생물이었다.




문제는

둘 다 시속 12km로 주차 대기 중이라는 점이었다.




황소가 먼저 내뱉었다.

”브르르릉.“

무게감 있는 음색이었다.



말이 힐끔 보더니 말했다.

”히히잉.“

약간 비꼬는 느낌이었다.



은하는 둘 사이에 있는 과속방지턱을 보며

이 모든 상황의 모순을 감지했다.





“여기는...

속도보다 진동이 강한 곳이에요.“



페라리는 소리 없이 고개를 들었다.

람보르기니는 울컥한 듯 머플러를 떨었다.





“나는 원래

무제한 속도의 땅에서 태어났어.“

말이 말했다.



”그럼 지금은?“

은하가 물었다.



“지금은 유턴 중이야.

가고 싶은데, 앞에 학원버스 있어.“






은하는 람보르기니를 향해 말했다.

”당신은 원래 경주용이죠.“

“응,”


황소가 속삭였다.

“근데 지금은..

전복 위험 표지판 보고 감속 중.“





말과 황소는

나란히 멈춰 섰다.

둘의 합산 출력은 1300마력.


하지만,

둘의 평균 속도는

시속 17km.

도심 속 자아를 삼키는 속도였다.




둘 다 3분째 시동만 걸고 있었다.

기름을 태우며, 자존심을 식히고 있었다.



“여기는

속도보다 자세가 중요한 나라에요.“



람보르기니는 머플러로 한숨을 쉬었다.

페라리는 잠깐 하이빔을 켰다가 껐다.



은하는 조용히 지나쳤다.

장화를 신고, 시속 3km로.


페라리보다 빠르게, 람보르기니보다 정확하게

고라니를 피해

텃밭으로 간다.





그날 밤,

은하는 꿈을 꿨다.

황소가 말을 태우고 도망치는 꿈.



그리고 둘은

제주도 1차선 국도에서

서로의 발굽을 부딪히며

평행주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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