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첫 번째 위기



늦여름,

두 사람은 결혼했다.



결혼식 당일에도 둘은

하객도 보지 않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킥킥거렸다.


둘 다 뇌 전원을 교대로 껐다 켰다 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평화는 입추(立秋)에 절단 났다.




입추가 오자

허무양은 갑자기 몸집을 키웠다.

말 그대로 그녀의 그림자가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천장에서 현관까지,

현관에서 텃밭까지.




그림자는 영역을 넓히며

새로운 자치구를 만들었다.




허무양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오늘부터… 대사 없는 존재야.”




농담군은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도 뻥끗 못했다.




하려던 농담이

허무의 기압에 눌려버린 것이다.

호흡보다 병맛이 먼저 눌렸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던 허무양은

허겁지겁 텃밭으로 질주했다.




그리고 그녀의 그림자는

주민등록도 없는 상태로

영토를 꾸준히 넓히고 있었다.




텃밭엔,

말라비틀어진 대파 세 줄이 쓰러져서

이미 거의 서류처럼 납작해져 있었다.




대파는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마치,

‘찌개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못 들어갔다.’

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허무양은 대파 앞에 앉아

갑자기 대파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대파야…

너도 존재가 힘들지…”




대파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하기엔,

이미 너무 대파였다.




그녀는 대파를 쓰다듬으며 계속 말했다.

“나는 가을만 되면…

왜 이렇게 커질까.

나는… 누구의 허무일까.”




농담군은 뒤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머릿속에선 병맛이 사망선고를 받았다.



그녀가 대파한테 존재론을 말하고 있는데

웃기고 싶어도 웃음이 안 나왔다.





그는 대파를 손에 들고

대파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대파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아직도 너무 대파라서.





그는 대파에게 물었다.

“너… 왜 이렇게 말랐어?”



대파는

바람 한 번 스치더니,

그냥 ‘퐁’ 하고 부러졌다.




허무양은 울음을 터뜨렸다.

“대파가…

자기 존재를 반으로 접었어…”





그녀는 대파를 안은 채 말했다.

“가을엔 다 접혀.

말도 접히고, 농담도 접히고,

존재도 접히고,

얘도… 접혀.”




농담군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럼… 난 뭐 해야 돼?”




그녀가 대파를 내려놓고 말했다.

“입춘(立春)까지 버티면 돼.

겨울엔 내가 줄어들어.

그때 너 다시 웃기면 돼.”




농담군은 허무양의 손을 잡았다.



가을빛이 손등에 내려앉았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 신혼… 괜찮은 거 맞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파도 흔들렸다.

(바람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후,

농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허무는 침묵의 그림자를 거두었다.



그리고 신혼집은 아주 잠깐,

병맛과 허무의 균형이 맞는 계절이 되었다.



둘은 같이 가만히 앉았고

그러다 동시에 웃었다.

늦여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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