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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와 부조화 사이에서...

유엔의 파란색들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

새벽 4시, 런던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엔 사무국이었다.  유엔 빌딩 확장 공사의 인테리어 부서 책임자로 발령이 난 것이다.  우리가 맡게 된 임무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기존 빌딩의  보수 및 Re-programing (재설계),  그리고 새로 준공하는 건물의 새 인테리어 디자인 및 총 기획 설계였다. 1946년 준공 이래 첨으로 갖는 대공사이기에 유엔이 거는 기대는 컸고 회사 입장에서도 역사적이며 권위 있는 공익기관 일이었기에 많은 관심이 몰려 있었다.



나는 퇴사한 전임에게서 이 프로젝트를 인계받아 다소 촉박한 스케줄로 팀원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여야 했다.  15개의 기관과 1,600명의 직원을 둔 큰 조직을 설득하며 프로그래밍하는 건 매우 복잡한 일이었다.

수직적 구조,  개인의 프라이버시 위주의 큐비클 식 사무실에서 수평적 구조, 성원 간의 소통과 협업을 권장하는 오픈 플랜 오피스로의 큰 변화를 제안하였고 걱정한 것과 달리 이것들은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모든 구성원들을 한 공간에 배치하여 협업의 시너지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구조로 유연성과 효율성 도모하자는 의도를 높게 산 것이다.



제동이 걸린 것은 내 전임이 제안하고 떠난 프로젝트 전반에 컬러 초이스였다.  전 디렉터는 활발한 성격의 게이 중년 남자였는데 남미사람들의 화끈하고 열정적인 성격 때문인지 강렬한 원색들을 활용한 매우 튀는 배색을 제안했고 이것이 다소 촌스럽지 않냐는 의견이였다.  빨, 노, 파 삼원색을 이용한 몬드리안 풍의 배색은 관심을 끄는 조합 이긴 했으나 유엔과의 거리는 멀었고 벽이나 가구 등에 쓰기에 세련된 조합은 아니었다.  서로 너무 다른 원색들의 대비는 공간엔 다소 부담스러웠으며 서로 간에 긴밀성이 없어 보이는 부조화가 불안, 혼란, 불안감을 가져다주는 듯 했다.



 디자인에서 내가 가장 즐기는 프로세스 중 하나는 색의 조화를 맞추는 것이기에 난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컬러 콘셉트를 제안했다.  색은 어떤 디자인 요소보다 서로 상대적 영향을 많이 받기에 그 조화를 맞추는 데 있어서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그렇기에 공간이 조화로워 보이려면 전체 색감이 중요한데 나는 개인’이 아닌,‘조화로움’을 중시하자는 의도로 색의 통일감을 이용하고자 유엔의 브랜드 컬러 블루만을 이용하기로 제안했다.  전쟁을 위해 빨간색에 반대되는 평화를 나타내는 유엔 블루, 그 동색 계열들을 이용한 조화로운 팔레트였다.  하나의 블루가 아닌 여러채도의 블루를 쓰자는 제안에 그들만의 고유한 "UN Blue" 하나 만을 써야 하지 않겠냐는 반론이 있었지만 나는 동색 계열 배치가 주는 편안함,  family of blue로 균형과 질서, 다양성을 거듭 강조 했다. 하나의 완벽한 블루가 아닌 미묘하게 조금씩 다른 다양함이 완성하는 조화로움을 그들을 설득했고 결과는 대성공 이었다.




삶을 살면서도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부조화 속의 조화, 혼돈 속의 질서 중 무엇이 중요한가.

조합을 중시하고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다양한 차이점을 소중히 하는 것. 유엔을 디자인하며 배운 소중한 교훈이다.  우리가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뜻깊은 관계를 형성하며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 다름이 완성하는 조화로움은 단지 색배합에서만 볼수 있는게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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