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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생각 Mar 29. 2023

1편 :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없었던 빨간 스티커

야 그때? 기억나? 우리 그때 진짜 재미있었잖아!

음…어… 맞아 맞아 그랬지.


나는 어릴 때 추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친구들이 과거 이야기를 하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내 추억이지만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를 잘 기억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 어떻게 저렇게 다 기억할 수 있지…?


이런 나에게도 강렬하게 생각나는 기억들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여름 방학에 집에만있는 것에 지루해진 나와 형은 초등학교로 배드민턴을 치러 갔다.

땀을 뻘뻘 흘리고 집에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어느 다른 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부모님은 수요예배를 가셨고 나와 형은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신 틈을 타 형은 게임을, 나는 그동안 밀린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다.

역시 부모님 몰래 하는 게임과 티비 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었다. 한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데 티비 아래 스피커에 이전에 못 봤던 무언가가 있었다.

자세히 가서 봐도 도저히 뭔지 모르겠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집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TV 뒤에도, 소파 뒤에도, 그리고 형이 게임하고 있는 컴퓨터 뒤에도 어딜 가든 똑같은 알 수 없는 의문은 ‘빨간‘ 스티커들이 붙어있었다. 나는 형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형이랑 나는 네이버 검색창에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압류’ : 체납처분의 제1단계가 되는 행정처분으로서 국세채권의 강제징수를 위해 체납자의 특정재산에 대해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처분을 금하고 그 재산을 환가 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처분을 말한다.


너무 어려운 말로 적혀있어서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형이 설명해 줬다.

“ㅇㅇ아, 이제 이 모든 게 우리 거가 아니라는 거야”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우리 집에 있는데! 내가 항상 쓰던 것들인데 우리 거가 아니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완전히 이해는 안 되지만 좋지 않은 상황에 빠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띠띠띠띠,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들리고 부모님께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셨다. 부모님을 보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한테 마구 따지듯 물었다. 이게 다 뭐냐고. 왜 이런 게 우리 집에 붙어있는 거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아무 잘못 없는 엄마, 아빠는 우릴 부등 껴안고 미안하다며 흐느껴 우셨다.

엄마, 아빠가 미안하다고 근데 조금만 기다리면 다 잘 해결될 거라고 그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드라마에서 보던 뻔한 대사였다.

그래도 엄마는 너무 다행이었다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실 낮에 우리가 배드민턴 치러 갔을 때 와서 붙이고 간 거라고.

최대한 안 보이는 곳에 붙여 달라고 했는데… 그래도 너희가 없을 때 붙이고 가서 정말 다행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 네 가족은 거실에서 서로를 부등 껴안고 1시간이 넘도록 펑펑 울었다.

그때 서야 알았다. 아 드라마에서 보던 그런 게 이런 거구나…


지금 와서 뒤돌아 생각해 보니 내가 다른 또래보다 더 성숙할 수 있었던 것도, 강한 책임감을 갖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성공’이라는 단어가 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압류는 엄마 말대로 몇 달이 안 돼 전부 해제되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구석구석에 붙은 딱지를 떼기 시작했다. 스티커를 다 떼어갈때쯤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래도 정수기에는 안 붙였네...(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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