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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28. 2024

6.  퀴어축제와 르네 마그리트, 브뤼셀

네벨영노스덴에핀-60대 부부 여행기


*2023.05.18.(토)


  여행의 재미 중 하나는 방문하는 도시의 로컬 맥주를 맛보는 것이다. 라거보다는 에일을 선호하지만 여름철에는 시원한 라거가 목 넘김이 좋긴 하다. 암스테르담에는 하이네켄 박물관이 있어 여러 맛을 시음해 볼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하이네켄은 비호라서 박물관은 패스. 그래도 현지에서 하이네켄 한 모금은 맛봐야 될 듯해서 마트에서 하이네켄과 암스테르담을 사봤다. 하이네켄은 역시 아는 맛 그러나 암스테르담, 요게 입에 맞았다. 하이네켄에 비해 홉 향도, 바디 감도 좋아 암스테르담에 있었던 4박 5일 동안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는 암스테르담을 사서 남편과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며 짧은 뒤풀이를 했다.    



   5일째 되는 날 암스테르담을 떠나 벨기에 브뤼셀로 가기 위해 다시 센트랄역으로 나왔다. 암스테르담 센트랄역을 통과해 역 뒤로 나가면 시야가 탁 트이며 넓은 부두와 강을 만난다. 암스테르담을 남북으로 가르며 흐르는 아이강이다. 강 건너에는 신도시 느낌의 북암스테르담이 보였다. 기차 시간이 남아서 아이강 쪽으로 난 창을 바라보며 를 마셨다.     

 


  기차는 2시간 40분을 달려 벨기에 브뤼셀 중앙역에 섰다. 예약한 숙소는 역에서 도보 15분 거리라 가볍게 생각했는데 웬걸 중앙역을 중심으로 퀴어축제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퀴어축제에는 아이들 손을 잡은 엄마 아빠들을 비롯해 나이와 인종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주변 건물에는 이들을 지지하고 연대한다는 의미의 무지개 깃발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중앙역 출구를 나서는데 지린내가 훅 들어왔다. 상상 속의 브뤼셀은 드레스를 입은 우아한 여성의 이미지였는데 이런 반전이 있는 첫인상이라니. 짐작건대 축제를 위해 곳곳에 설치한 이동식 화장실 때문인 듯했다. 출구로 나왔으나 수많은 인파로 인해 데이터가 잡히지 않아 당최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중앙역이 언덕에 있다는 것은 구글맵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워 숙소를 잡을 때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 여행 가방을 끌고 거리를 메운 축제 차량과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길을 찾기 위해 언덕을 오르내리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암스테르담에 이어 브뤼셀 너마저!      



  오락가락하는 데이터 때문에 구글맵이 수시로 길을 변경하는 탓에 사람들에 치이고 언덕에 치이면서 둘러둘러 1시간이나 더 걸려 숙소에 도착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오후 일정으로 마그리트 미술관 하나만 여유 있게 볼 예정이었는데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체크인만 해 놓고 부지런히 다시 길을 나섰다.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연결되어 있는 마그리트 미술관은 숙소에서 10여분 거리에 있었다.   

   

  언제부턴가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는 것을 볼 때면 늘 마그리트의 작품이 연상됐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인사동에서 미디어아트 형태로 진행되었던 그의 전시에는 원작이 와 있는 것이 아님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초현실주의 작가 중에서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마그리트는 “나에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라고 했다. 상식을 깨고, 넘고, 비틀어 마그리트만의 해석으로 독특하고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 간 작가였다. 다양한 것들의 영향이 작품이 된다고 생각한 그가 집중했던 것들 예컨대 영화, 마술, 서커스, 사진 등은 그의 작품 속에서 새롭게 변주됐다. 마그리트 미술관에 전시된 수많은 작품들에서 그가 보았을 세계와 상징을 찾고 상상해 보는 일은 때로는 살짝 달뜬 행복과 때로는 묘한 공포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초현실주의 작가이면서도 무의식을 부정한 작가였다. 하지만 마그리트의 작품들 중에는 무의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한 작품들이 찾아진다. 작가의 삶이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마그리트의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았다고 전해진다. 그로 인해 여러 번의 자살 시도가 있었고 결국에는 강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마그리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두 눈으로 목격한 나이는 불과 14살이었다. 이 충격과 상실이 그에게 깊은 내상을 남겼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성실하고 평이한 일생을 산 그의 에서 묵직한 감동이 느껴졌다.



  마그리트 미술관에는 10대에 처음 만나 그와 평생을 함께한 아내 조르제트의 사진도 많았다. 두 사람은 노년까지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내 작품이 전하려는 것은 한 편의 시다”라는 그의 바람대로 그의 작품들이 품은 상징과 세계는 하나하나의 시였다.      



  미술관 닫는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왔더니 그사이 한차례 소나기가 내렸던 모양이다. 거리는 흠뻑 젖어 있었다. 숙소와 가까운 곳에 브랜드샵이 모여 있는 번화가가 있었고 그곳에 아시안마트가 있어 간단하게 장을 보기로 했다. 오 그런데 마트에 놀랍게도 김치와 막걸리 그리고 두부까지 있었다. 이 먼 유럽의 브뤼셀 한복판에 막걸리와 두부라니.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가움에 얼른 장바구니에 챙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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