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을 제외한 모든 숙박은 레지던스 형태의 주방이 있는 숙소로 잡은 터라 아침 식사는 간단히 숙소에서 먹었다. 아침으로 빵과 베이컨, 달걀과 과일을 곁들여 먹기도 하고 밥이 있을 때는 물을 붓고 코인 육수 하나를 넣고 끓이다 계란을 풀어 넣으면 가벼운 아침 식사로 좋았다. 코인 육수 대신 소금만 넣어도 ok. 거기에 양송이나 양파를 송송 썰어 넣으면 금상첨화. 수년간 다녀보니 어느 도시를 가든 쌀을 구하는 어려움은 없었다. 찰기가 있는 쌀은 없더라도 안남미 같은 쌀은 대부분의 마트에서 구입이 가능했다. 처음에는 그 독특한 향 때문에 거북했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지 않나.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숙소와 5분 거리에 있는 얼스코트역
숙소를 나서니 맑은 하늘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세인트폴 대성당으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빠져나간 오피스 거리는 건물들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조용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세인트폴 대성당은 지난해 찰스 3세로 영국의 왕이 된 찰스가 다이애나비와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바로크양식의 세인트폴 대성당은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을 떠올리게 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모나지 않은 둥근 아치가 주는 웅장함과 함께 단단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성당의 지하에는 넬슨과 나이팅게일 등 세계적인 인물들이 안장되어 있었다.
성공회성당인 세인트폴성당
세인트폴 대성당을 나와 템즈 강 쪽으로 걸었다. 런던에서 제일 궁금했던 곳은 밀레니엄 브리지와 테이트 모던이었는데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조금만 걸으면 2000년을 기념해 세워진 밀레니엄 브리지로 이어졌다. 템즈강 위로 세인트폴 대성당과 테이트 모던을 연결하고 있는 밀레니엄 브리지는 차가 다니지 않는, 사람을 위해 설계된 보행자 중심의 다리이다.
밀레니엄 브리지에서 보이는 세인트폴 대성당
테이트 모던은 그 역할을 다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화력발전소를 허무는 대신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모던아트 미술관으로 새롭게 탄생한 곳이다. 재생사업 초기에는 템즈강 바로 옆에 시커먼 화력발전소의 외관을 그대로 살리는 것은 도시미관을 해쳐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테이트 모던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오히려 도시재생의 성공모델로 꼽히게 된다.
4년 전쯤 <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김정후)를 읽었을 때 책의 표지에 있는 밀레니엄 브리지와 세인트폴 대성당을 담은 사진에 단번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상쾌하고 투명한 바람이 가슴속으로 불어 가는 듯했다.
밀레니엄 브리지 끝으로 화력발전소의 굴뚝이 있는 테이트 모던이 보인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 또한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아니던가. 도시재생은 기존의 가치로운 것을 최대한 보존하고 재활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녹아 있는 사업이다. ‘oldies but goodies’ 오래되었지만 좋은 것들. 게다가 자원도 아낄 수 있으니 성공적인 도시재생은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밀레니엄 브리지를 걷다가 여러 번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볼 때마다 하얀 다리 끝으로 세인트폴 대성당의 아름다운 돔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상상했던 것만큼 아름다웠고 돌아볼 때마다 좋았다.
템즈강변에는 버스킹을 하는 뮤지션들과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밀레니엄 브리지를 내려와 테이트모던으로 들어갔다.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보다 건물이 궁금했던 터였다. 입구를 지나자 중앙 로비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아래로 향해 있었다.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바닥 어디에 앉아도 좋았다. 방문자들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으로도 열려있는 듯했다.
미술관 7층에는 세인트폴 대성당과밀레니엄브리지가 보이는 넓은 카페가 있었다. 안전 문제로 철제난간이 시야를 절반 정도 가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창너머로 보이는 템즈강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