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극장에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없다. 대신 주말 밤이면 티비에서 방영하는 주말의 명화를 이불속에서 몰래 샛눈으로 보곤 했다. 대개 방학이 시작되면 외할머니 집으로 갔다가 개학을 며칠 앞두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외할머니 집에는 티비가 있었다.
흑백 티비 속 모든 피사체는 흑백의 명암으로만 표현되었는데도 그게 오히려 아련한 분위기를 만들며 영상 속 배우들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
주말의 명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영화를 좋아하는 이모덕분이었는데,영화가 시작되면 이모는 티비 화면이 선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천장의 형광등을 껐고나는이불속에서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이모와 함께(?) 영화에 빠져 들었다. 이모는 한 번씩 고개를 돌려 내가 자고 있는지를 확인했는데 그때마다 내 심장은 콩알만 하게 쪼그라들었다. 그때 보았던 영화 중 하나가 앤 불린을 그린 영화 <천일의 앤>이었던것으로 기억한다.
앤 불린
헨리 8세
앤 불린은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로,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에 등을 돌리고 새로운 종교인 성공회를 만들어 국교로 삼기까지 하며 아내로 만든 인물이었다. 그러나 앤 불린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약 3년 만에 남편 헨리 8세에 의해 런던탑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기엔 참혹하고 비극적이기 짝이 없다. 우리에게도 이와 유사한 역사가 있으니 숙종과 장희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캐서린 하워드
앤 불린에 이어 왕비가 된 캐서린 하워드 역시 런던탑에서 목이 잘렸다. 수많은 피의 역사가 뿌려진 바로 그 런던탑이 템즈강 건너 타워브리지 북단에 있을 터였다.
버로우마켓을 나와 템즈강을 따라 걸었다. 안전을 위한 석조 난간이 템즈강을 따라 이어졌다. 타워브리지가 가까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타워브리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난간마다 빼곡했다. 현수교과 도개교로 이루어진 고딕양식의 타워브리지는 마치 드레스 위에 푸른 숄을 걸친 우아한 여성을 연상케 했다.
타워브리지
타워브리지를 향해 걸어가며 사진을 찍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런던탑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채색의 런던탑은 주변의 다채로운 건물들과 대비를 이루며 템즈강을 향해 서 있었다. ‘타워가 런던이다’라는 말처럼 런던탑은 영국 역사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런던탑
런던탑은 11세기 정복왕 윌리엄 1세가 런던을 방어하기 위해 건축한 요새이자 왕궁이었다. 하지만 12세기부터 귀족이나 왕족을 가두는 감옥과 처형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런던탑으로 가기 위해 타워브리지를 건넜다. 타워브리지는 런던의 랜드마크답게 다리 위까지 사람들과 차로 혼잡했다.
런던탑은, 지금은 말라붙어 풀들에게자리를 내 준넓은 해자를 두르고 있었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해 둔런던탑 안으로 들어가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대여했다.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사방으로 쏟아져 내렸다.
런던탑 중앙 뜰로 들어서자 푸른 잔디 한가운데 앤 불린이 참수당한 현장이보였다. 역사의 현장에 서면 책 속에 박제되었던 역사에 피가 돌며 현존으로 살아오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특히 생과 사를 가른 현장일수록 그 느낌은 배가 된다.
앤 불린이 참수당한 현장
런던탑의 중심인 화이트타워를 돌아보고 나오니 또 다른 비극의 현장인 블러디 타워가 보였다.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런던탑에 유폐되었다가 끝내 살해된 에드워드 5세와 그의 동생 리처드가 갇혀 있었던 곳이다. 세조와 단종의 경우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2시간을 훌쩍 넘겨 런던탑에서 나왔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해는 여전히 머리 위에 떠 있었다.야경을 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니 일단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쉬기로 했다.
밤 10시가 다 되어 숙소를 나섰다. 런던탑 앞 템즈강변에서 야경을 보면 좋겠다생각했는데 웬걸, 낮에 지났던 런던탑앞 강변은 폐쇄되어있었고 런던탑은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런던탑을 돌아 타워브리지를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