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에 눈을 떴다. 일주일 넘게 밀려있는 빨래부터 해결해야 했다. 지난밤 픽업 문제를 일으켰던 호스트의 뒤늦은 친절(?)로 숙소에 잘 도착했고 샤워만 하고 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숙소 컨디션이 생각보다 훌륭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차를 내렸다. 목의 통증이 가라앉으니 이번에는 콧물이 폭발했지만 목 아픈 것에 비하면 이깟 콧물쯤이야. 빨래가 끝나면 프레이케스톨렌까지 트래킹을 할 예정이다. 프레이케스톨렌은 노르웨이 3대 트래킹 코스 중 하나로 CNN이 선정한 세계 50대 자연의 신비 중 1위를 차지한 곳이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창밖 풍경을 보고 있는데 이른 시간의 텅 빈 거리가 몹시 사랑스러웠다. 거리는 잘 세팅된 연극 무대를 보는 듯했다. 마치 주인공들이 대사를 치며 등장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스타방에르 숙소에서 보이는 거리의 아침과 밤
거리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데 굽은 길 쪽에서 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시야를 지나 반대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다른쪽에서 나타난 사람은 거리를 가로질러 굽은 길 뒤로 사라졌다. 그리고 거리는 다시 고요해졌다. 비현실적인 풍경에 넋을 놓고 있다가 이와 유사한 느낌을 주었던 장소가 떠올랐다.
수년 전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인 장크트 길겐에서였다. 당시 묵었던 호텔은 마을의 중심인 모차르트 광장과 붙어 있었는데 창을 열면 아담한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아침에 창을 열었는데 맞은편 건물의 문이 열리더니 한 여성이 걸어 나와 광장을 가로질러 다른 집의 문으로 들어갔다. 이내 그 집에서 나온 남성은 광장에서 마주친 사람과 짧게 얘기를 주고받더니 서로 다른 길로 사라졌다. 마치 공연의 인트로를 보고 있는 듯했다. 딱 지금 마주하고 있는 풍경처럼.
호텔창에서 보이는 모차르트 광장(2019년 오스트리아의 장크트 길겐)
빨래를 널어놓고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작은 배낭에 우비와 우산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오전에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인근 빵집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도 구입했다.
트래킹 출발지점까지는 버스로 50분을 가야 한다. 가는 길이 바다로 막혀 있지만 2019년에 해저터널이 완공되면서 수월하게 바다를 건널 수 있게 되었고 이동시간도 단축되었다.
해저터널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밝고 산뜻했다. 과거 작은 항구도시였던 스타방에르는 1969년에 북해유전이 발견되면서 노르웨이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 급부상하게 된다. 도시의 윤택함과 여유가 그대로 느껴졌다.
트래킹 출발지점에 도착하니 하늘에서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배낭에서 우비를 꺼내 주며 힘들면 돌아와도 되니 무리하지 말자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뤼세 피오르에 우뚝 솟아 있는 600미터 수직 절벽인 프레이케스톨렌까지는 넉넉잡아 왕복 5시간이면 충분할 터였다.
프레이케스톨렌 트래킹 출발지점
비는 살짝 바닥만 적시고 지나갔다. 콧물 이슈로 콧물을 닦고 푸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눈앞에 펼쳐지는 이색적인 풍경을 연신 눈에 담았다. 프레이케스톨렌으로 가는 길은 바위에 붉은색 'T'로 표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을 때는 줄을 서서 오르기도 한다는데 우리가 걸었던 날은 드문드문 마주쳤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T자를 따라가면 된다(좌)
한국과 다른 수종과 바위가 만들어내는 풍경,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주친 호수, 비를 품은 구름들이 넘나드는 바위 언덕을 오르며 북유럽의 대자연 속에 있다는 자각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2시간 남짓 올랐을까. 산마루가 뚝 끊어지며 천길 낭떠러지 아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뤼세 피오르가 나타났다. 그리고 프레이케스톨렌이 우뚝 시야를 막아섰다.
뤼세 피오르
일찍이 뤼세 피오르를 방문했던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썼다.
'이 바다에, 이 고독의 한가운데에 거대하고 침울한 길이 나타난다.
사람을 위한 길도, 배를 위한 길도 아니다. 아무도 그곳을 통과하지 않는다.'
프레이케스톨렌
장엄하다는 것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것이 가슴에 일렁였다. 장엄함은 두려움과 닿아 있을까.두려움은 또 다른 적막함일까.
자연이 빚은 이 장엄함 앞에서, 가슴에 일렁이는 묵직한 두려움과 적막함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