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템즈강은 단조의 서정을 담고 있었다. 컨디션 탓이겠지만 흐린 하늘과 빼어 닮은 회색의 템즈강은 마음속으로도 낮게 흘러드는 듯했다. 템즈강을 따라 트래팔가 광장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트래팔가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니 깔끔하고 작은 음식점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고 그 사이로 분식이라는 한글 간판이 보였다. 열 명만 들어가도 꽉 찰 듯한 작은 식당 안에는 테이크아웃을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벽을 따라 길게 붙어 있는 좁은 테이블의 몇 개 안 되는 의자에도 식사하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딱히 식욕이 없었는데 얼큰한 라면 국물이라니 솔깃했다.
좁은 주방과 카운터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밀려드는 주문을 해결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영어로 주문을 하니 어설픈 영어발음 때문인지 바로 한국 사람인지 묻고는 한국어로 주문을 받았다. 잠시 후 라면과 김밥이 익숙한 속도로 나왔다. 빠름~ 빠름~
하.. 나 라면 국물에 위로받네.
라면과 김밥으로 속이 든든해지자 내셔널갤러리를 거뜬히 볼 수 있겠다는 기운이 솟았다. 내셔널갤러리 앞의 트래팔가 광장은 공사가 한창이라 펜스로 가려져 있었다. 펜스 너머 넬슨 기념비의 꼭대기에는 하늘로 비상이라도 할 듯한 넬슨 제독이 까마득한 높이에 서 있었다.
예약한 시간에 내셔널갤러리에 들어섰다. 최대 3시간을 잡아놓았고 다 보겠다는 욕심은 애당초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입장료가 없으니 실내의 혼잡이야 안 봐도 뻔한 일. 그러니 딱 3시간 동안 보고 싶은 것만 보자. 그리고 빅토리아 역에서 짐을 찾아 게트윅 공항으로 가는 거야.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2,300여 점. 13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작품들을 망라하고 있었다. 마침 카라바조 특별전도 진행되고 있었다. 카라바조에 마음을 두었던 수년 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그의 작품을 열심히 찾아봤었다. 빛과 어둠을 다루는 그의 천부적인 붓질 앞에서 얼어붙었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그의 어둠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불행했던 그의 인생처럼.
내셔널갤러리를 해설하고 있는 책들을 보면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대표작으로 꼽는 경우가 많았다. 이 작품에 담겨 있는 깨알 같은 상징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해석한 글도 많았다. 그러니 놓치면 안 될 일이다.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고흐 <해바라기>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과 고흐의 <해바라기>, 언제 봐도 좋은 베르메르, 고야 그리고 많은 화가들이 다룬 소재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른 유디트는 요한 리스의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엘 그레코. 하지만 감동은 생각지도 못한 윌리엄 터너의 작품에서 왔다.
요한 리스<홀로페르네스 장막 안의 유디트>
(순서대로) 엘 그레코/아베르캄프/베르메르/클림트
2014년 윌리엄 터너를 그린 영화 <미스터 터너>가시네큐브에서 개봉되었을 당시 주춤거리다 놓쳤었다. 영화를 본 것은 그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전시회를 앞둔 2022년이었다.
북서울미술관에서 있었던 영국 테이트 미술관 특별전에서 처음 터너의 작품을 보았다. 영국의 국민화가이며 20파운드 지폐에도 있는 윌리엄 터너의 작품 앞에 섰을 때의 느낌은 덤덤했다.마치 먼지바람 속에 있는 듯 알 수 없는 혼돈과 답답함이었다.당시 전시의 주제가 ‘빛’이었는데 빛이 주는 감동은 존 브렛의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에서였다.
그때 터너의 작품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이 내셔널갤러리에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의 작품 다수가 소장된 테이트 브리튼도 일정에 넣었을 텐데.
월리엄 터너 <강풍 속의 네덜란드 선박>, <비,증기 그리고 속도>,<폴리페무스를 조롱하는 율리시스>
모네가 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빛과 색을 표현하는 터너의 과감함에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빛은 색’이라고 했던 윌리엄 터너. 그래서 터너는 인상파에게 큰 영향을 준 화가로 평가받는다.
밤 9시 15분 노르웨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노르웨이의 작은 도시 스타방에르 공항에 밤 11시 55분에 도착하는 스케줄이었다. 연착이라도 할 경우 자정에 출발하는 마지막 공항버스를 놓칠 확률이 높아 고민 끝에 숙소에 픽업서비스를 요청해 놨다.택시를 부르기도 어려운 위치라 애를 먹었다는 글도 보였기 때문에.
비행기는 정시보다 20여분 일찍 스타방에르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으며 숙소 호스트에게 도착했음을 알렸다. 호스트는 그때까지도 공항으로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공항 출구로 나가면 작은 종이라도 들고 맞아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가 좀 실망스러웠으나 어쩌겠나. 스타방에르 도심에서 공항까지 차로 20여분이면 된다고 했으니 금방 도착하겠거니 했다.
함께 내린 승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텅 빈 공항에는 남편과 둘만 남았다. 호스트는 새벽 1시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내 연락을 받고 출발했어도 자정 조금 지나 나타났어야 했다. 처음에는 화가 났으나 시간이 흐르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틀 전 호스트에게 연락이 와서 예약한 숙소에 수도 쪽 문제가 생겼다며 새로운 숙소로 안내를 받은 터라 이래저래 신경이 쓰였다. 끝내 나타나지 않을 경우를대비해머릿속으로 대안을 찾으며 기다렸다.
텅 빈 스타방에르 공항
어디에 있냐고 왜 나타나지 않냐고 메신저를 통해 문자를 여러 번 보내니 그제야 호스트에게 연락이 왔다. 본인은공항에 한참 전에 도착했으나 우리가 없었다며 공항 옆에 있는 호텔 사진을 하나 첨부하고는 그 앞에 차를 대고 있으니 그쪽으로 오라는것이었다. 그리고는 연락이 없었다. 몹시 괘씸하고 화가 났지만 일단 만나야 하니 호텔 쪽으로 가방을 끌고 가는데 텅 빈 공항 주차장으로 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호스트였다.
남편이 불같이 화를 냈다. 공항에서 만나자고 했지 언제 호텔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냐고, 지금이 몇 신데이제야 나타나냐고.그때까지 미안한 기색도 없던 그가 그제야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시간은 새벽 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