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현되지 못한 계획은 흩날리고

[2] 가능성은 현실 앞에서 멈췄다

by 사근

“진짜 앞이 안 보여. 뭐 예상가는 미래도 없고, 그냥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고, 그냥 아무것도 모르겠어. 졸업밖에 안 했는데 밖으로 내던져진 느낌이야.”


벚꽃이 한창 피는 가로수길 벤치에 앉은 스무 살 둘은 찬란한 꽃놀이를 보면서도 안개를 보는 것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친구와 나란히 앉아 나눈 얘기는 미래에 대한 것이었다. 친구는 내가 뱉은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동네에서 어느샌가 5km 정도를 걸어와 큰 가로수길에 도착했다. 앞길이 막막하다며 한숨을 쉬다가 그대로 일어나 다시 한강으로 향했다. 한강에 도착해서는 주변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 한 개, 과자 하나를 골라 나왔다. 그러고선 다시 콘크리트 계단에 앉아 노을이 질 때까지 우리의 무방비한 자유로움에 대해 한탄했다. 그 무렵, 그런 일이 잦았다.


“너는 그럼 하고 싶은 게 있어?”
“나도 그걸 모르겠어. 솔직히 시각디자인을 하고 싶은데 지금 상황에서 내가 입시 미술은 못하잖아. 부모님도 그것 때문에 반대한 거니까.”
“학원비 때문에?”
“그렇지. 입시 철에 바짝 듣는 특강만 해도 달에 백은 넘잖아. 내가 알바로 벌어서 간대도 한 달 학원비 모으려면 막상 학원 갈 시간이 없어.”
“어렵네.”
“...”

하고 싶은 게 없는 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시각디자인. 그건 내가 처음으로 부모님 앞에 다시금 들이댄 내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이미 오래전 좌절돼, 빛이 바랜 꿈이었다.




중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둔 11월의 나는 평소에 좋아하던 미술 선생님께 처음으로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1이 지워질까 두려웠다. 예전부터 다시금 미술을 해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준비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선생님으로부터 입시상담을 위해 교무실로 찾아오라는 답장을 받았다. 그동안 만들었던 것 중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면 USB에 담아 오라는 말도 덧붙여서.


다음 날,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만들었던 PPT 전부를 USB에 담아 교무실로 향했다. 선생님은 나를 뵙고서는 안쪽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패딩을 입고 있어야 할 정도로 입을 열 때마다 어렴풋이 입김이 보이는 서늘한 공간이었다. 널찍한 탁상 사이로 마주한 둘은 어색한 공기를 얼싸안고 있었다. 창문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만이 어색함을 달래주는 듯했다.


선생님만 보면 좋다고 맨날 달려들기만 했던 내가 처음으로 떨려서 아무런 말조차 못 하는 순간이었다. 그 침묵을 깬 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어제 메시지를 보고 놀랐다고 하셨다. 마냥 밝을 줄만 알았던 네가 진지하게 진로에 대해 혼자 고민하고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고. 그 말에 나는 웃음을 지어 보였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내가 들고 온 USB 속 PPT를 보며 네가 만든 거냐며 감탄하셨다. 선생님은 내가 미술 수업에 임하는 방식과 지금 들고 온 포트폴리오를 보았을 때 시각디자인 분야에 속한다고 하셨다. 그 후, 시각디자인과에 가기 위해서는 어떤 입시 계획을 세우면 좋을지 알아봐 주셨다. 첫 상담에서 얻은 경로는 두 가지였다. 알아본 바로는 실기를 보는 쪽으로 가려면 입시 미술을 해야 한다는 것과 여의치 않는다면 비실기전형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교무실 밖으로 나와서는 부푼 마음을 안고 신나게 집으로 갔었다. 엄마가 오길 기다리며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상상했다. 아마도 좋아하겠지? 그런 생각에 나는 설레다가도 몹시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왜인지 알 것만 같았지만 설마, 하며 덮어두기로 했다.


저녁이 되어 엄마가 퇴근했다. 쉴 준비하는 엄마에게 문 사이로 장난스럽게 쭈뼛대며 말했다.


“엄마, 나 있잖아. 할 말이 있는데…”
“뭔데?”
“그 미술 쪽으로 가보고 싶어서…”
“미술? 너 미술 안 한다고 했잖아.”
“아, 근데 다시 하고 싶어져서…”
“그래서?”
“근데 학교 대다수가 실기로 들어가야 하는데 입시 미술을 해야 한대.”
“안돼.”
“응?”
“입시 미술은 못해. 그거 못 해줘. 안 돼.”
“왜?”
“너 그게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고 하는 얘기야?”
“...”
“안 돼. 돈 없어. 절대 안 돼.”


부푼 꿈이 단숨에 무너진 것은 삽시간의 일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 말에 더 저항하지 못한 건 내 책임도 있었다. 그건 내가 놔버린 내 첫 번째 꿈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