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영재라는 것이 나를 부르는 게 아니라면
점심시간, 왁자지껄한 교실에서 나는 연필을 들고 줄이 그어진 인쇄지에 글을 쓰고 있었다. 그 인쇄물 옆으로는 컬러로 프린트된 미술 작품. 그 그림을 보고 드는 감상을 계속해서 글로 옮겨적는 일. 그리고 절대 그 줄글 프린트지에 여백을 두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의 일이다. 미술 감상문 쓰기 수업을 듣고 나서 담임선생님께서는 계속해서 내게만 따로 감상문 쓰기를 시키셨다. 왜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쓰고 나면 감탄을 자아내시기만 하셨다. 나는 배운 대로 쓴 것뿐인데 그런 칭찬을 듣고 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 감상문을 쓰는 것이 선생님께 인정받기 위한 도구로써 전락해 버렸다.
머지않아 미술 영재를 선발하는 시험이 있다는 가정통신문을 받게 됐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내 이름을 부르시곤 속삭이셨다.
“어머니께 미술 영재 시험 한번 보는 거 어떠냐고 말씀드려봐. 네가 이 시험 봤으면 좋겠어.”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그동안 내가 겪은 확신이 서는 것 같았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제일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을.
차 뒷좌석에 앉아 차창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 엄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엄마, 담임쌤이 나보고 미술 영재 시험 한번 보래.”
“미술 영재 시험? 그게 뭔데.”
“몰라? 가정통신문 봐야 아는데. 근데 시험이 3차인지, 4차까지 있대.”
“그거 보고 싶어?”
“응.”
“그럼 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집으로 돌아가 가정통신문 한편에 쓰인 서명란에 엄마의 서명을 받고 고이 잘라 가방에 넣었다. 내가 어떤 시험을 보게 된다니. 그것도 ‘영재’라고 불리는 시험을. 그 마음에 설렘과 동시에 걱정이 됐다.
‘2차까지는 교내 시험이니까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 해야 돼.’
미술 영재 시험은 생각보다 원활하게 진행됐다. 그동안 그렸던 그림들을 넣어두는 포트폴리오는 물론, 미술 감상문을 적는 시험까지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미술 감상문을 쓸 때, 얼마나 그림을 분석하느라 집중했는지 출제 작품이었던 샤갈의 <나의 마을>이 기억날 정도다. 그 후 선생님께서는 2차까지 합격했으니 3차 시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나는 우쭐하면서도 두려웠다. 잘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잘해야만 했다.
3차 시험 날 당일, 나는 준비한 수험표를 들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장은 동네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배정됐다. 번쩍번쩍한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초등학교는 괜히 나를 위축되게 했다. 낯섦인지, 두려움인지 모른 채로 차에서 내렸다. 부모님은 시험 끝나면 정문 울타리 앞에 있겠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며 실내화 가방을 들고 교내 앞에 도착해 실내화를 갈아신었다. 그 교내 정문에는 싸늘하고 고요한 곳에서 내 입김과 처음 보는 아이들의 입김이 도사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 부착된 내 이름과 학교. 우리 학교에서 2차까지 뽑힌 애는 나밖에 없었던 걸까. 그런 생각에 어깨가 높아졌다. 주위의 아이들이 서로에게 말을 걸며 같이 화장실도 가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아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높은 층고와 서늘한 교실의 오른쪽 맨 뒷자리에 있는 나는 그 모든 풍경을 관망할 수 있었다. 잘할 수 있을까.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지만 미술 수업 때마다 그랬듯이 그리고 나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 거라 예상했다.
시험이 시작되자 자유화를 그리라며 도화지를 줬다. 내게 가장 약한 주제가 자유화였다. 뭘 그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뭘 그려야만 내가 이 중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까. 그 생각에 스케치하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내 옆은 이미 지우개 가루로 엉망이 된 지 오래였다. 시간은 계속 갔고, 나는 촉박한 시간 속에서 벌떡이는 심장을 진정시킬 새가 없었다.
수십 분이 흘렀을 무렵, 구상 단계에 멈춘 나를 제외한 주변 아이들은 벌써 채색하고 있었다. 그것도 도화지에 꽃밭을 배경 삼아 생명력이 넘치는 사슴을 그려 넣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남자아이의 그림도 다채로워지기 시작했다. 내 도화지는 겨우 스케치가 전부였다. 시계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촉박할 것 같다는 예상이 들었다. 그럼에도 연필을 놓을 수 없었다. 시계 토끼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19세기 유럽 도시 배경의 시계탑을 그리고 싶었다. 겨우 시계탑과 원형 시계들, 넓게 펼쳐진 지도를 그려야만 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선을 그리려는 순간 종이 쳤다. 나는 선으로 얼룩진 백지를 내야만 했다. 나만 백지 신세였다. 허망하게 머리에 손을 얹고 시험관이 도화지를 걷어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너무 화가 났다. 학교를 대표해서 와놓고 그림을 그리지도 못하고 가다니. 나 말고 다른 아이가 왔으면 달랐을까. 애초에 나는 영재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심이 드는 찰나도 허락하지 않고 시험에서는 또 다른 그림을 그리기를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