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 부지런한 사랑
들어가며
예전에 읽고, 예전에 썼던 글 이다.
내 문서 속에만 존재하던 글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서 기분이 오묘하다.
한참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혼자 사색하고 책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6/4/2022], [12/26/2022 블로그 포스팅 후 비공개], [06/23/2024 카카오 브런치]
우선, 나는 이 책을 #알로하융 이라는 유튜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자기계발 영상에 관심이 많고 자주 보던 나에게 알고리즘이 이 유튜버를 추천해줬다. 이상향도 나랑 비슷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이슬아 작가에 대한 언급을 하는데, 왠지 나도 그냥 그 작가에 글이 읽어보고 싶었다.
우선 한 구절 한 구절 줄 치면서 너무 소중하게 읽었다.
그래서 늘 글만 읽고 넘기던 내가 필사도 하고, 내 생각도 녹여서 글을 처음으로 써봤었다.
프롤로그_부지런히 쓸 체력,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영화를 사랑하는 첫번째 단계는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번째 단계는 영화에 대한 평을 쓰는 것이고, 세번째 단계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며 그 이상은 없다고 트뤼포는 말했다”(9 페이지)."
나도 이 말에 동의하고,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 이렇게 글을 쓴다. 나는 책을 사랑하려고 한다. 작은 방 안에서도 더 넓은 세계로 나를 데려간다. 그리고 힘들 때는 위로를 해주고, 열심히 하려는데 방향을 모를 때는 방향성을 알려주기도 한다. 길을 잃었을 때 가끔은 길 잃어도 괜찮다고 위로도 해주고 또 시간이 흐른 뒤에는 옳은 길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글쓰기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우리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다른 이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자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자고 글쓰기는 설득했다. 내 속에 나만 너무도 많지는 않도록. 내 속에 당신 쉴 곳도 있도록. 여러 편의 글을 쓰는 사이 우리에게는 체력이 붙었다.”(11페이지)
나도 꾸준히 일기쓰고 생각들을 정리하는 글을 쓰면서 더 체력이 생긴 것 같다. 그냥 일상적이고 아무 내용없이 매일 같은 얘기를 쓰다가 점점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체력인가보다. 그리고 운동할 때 도 마찬가지 이다. 어제는 이 속도로 이 만큼 뛰면 힘들었는데 다음 날 은 덜 힘든 거 보면 내가 이만큼 성장했구나 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나의 어린 스승들에 관하여
“이야기란 우리를 몇 번이고 다시 살게 할 수 있었다.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볼 수도 있고, 현실에서는 엄두도 안 날 스릴을 잠깐 체험해볼 수도 있고, 가짜로 비극을 겪으며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도 있었다. 그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더 강해지기도 했다.”(23페이지)
나이와 상관없이 배울 점은 항상 있다. 나이많다고 다 어른이 아닌 것처럼, 나보다 어리다고 해서 배울점이 없는 게 아니다. 항상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 두고싶다. 이야기 또한 그렇다. 내가 살아 보지 않은 삶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믿어지는 문장들
"좋은 문장의 근거를 생각할 때 자주 다시 읽은 책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이 소설에는 작문 연습을 하는 어린 쌍둥이가 등장한다.”(25페이지).
“‘좋아한다’는 단어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둘 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실에 충분한 문장을 연습한다.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묘사를 훈련한다.”(25페이지)
사람마다 각자의 시야가 있다. 누군가에게 나쁜 경험이었다고 해도 다른사람에게는 나쁜 경험이 아닐 수 있다. 가치 판단은 직접 경험할 이에게 맡겨야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이런 성향이다. 본인이 해봤는데 별로다. 가지마라. 건방진 조언 이라고 생각한다.
재능과 반복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게 되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 지 알게 되어서다.”(35페이지)
재능 보다도 꾸준함의 힘이 막강하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시작과 중단 끝에 다시 시작하게 되는 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지만 다 어느정도 하다가 말게 된다. 내가 재능있다고 믿는 분야도 부담스럽고 자꾸 미루게 된다. 그렇지만 글을 읽고 쓰는 건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할 수 있다. 대단한 작품을 만들기 보다는 꾸준히 글을 쓰는 연습을 해야겠다.
“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 로맹 가리도 결국 로맹 가리가 되었다. 반복적인 글쓰기와 함께 완성된 최고의 그 였을 것이다.”(37페이지)
내가 다시 태어나더라도 나는 내가 되고싶다. 누구의 인생으로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보다는 지금의 내가 좋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서 지금의 나로 살고 싶다. 내가 뭘 하던 어디를 가던 그냥 나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지지해주고 믿어준다.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용기를 갖고 뭐든 도전할 수 있다.
음식과 글쓰기
“전공했다면 더 좋았을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그건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라 알 수가 없다.”(39페이지)
내가 살아온 삶 중에는 내가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길이 있다. 그 길을 갔으면 어땠을 까 라는 생각은 솔직히 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바꿀 수 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지금을 살고 싶다.
“글은 사실 머리도 가슴도 아닌 손으로 쓰는 것이라고. 쓰기를 반복적으로 훈련한 손만이 안정적이고 탄탄한 문장을 써낸다고.”(41페이지)
사실 별 내용없이 써온 글들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내 손이 반복적으로 훈련한 손이라는 사실로 위안을 삼고 싶다. 나는 지나고 나면 생각나지 않는 일들이 너무 아쉬웠다. 시간은 갈수록 빠르게 흘러만 가는데 내가 뭘 하면서 세월이 보냈는지 기억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도 나로 살아 볼 수 있는 글들을 쓰고 싶다. 내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나를 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나를 알 수 있을까.
소년의 마음으로 쓰는 소년의 글
“ “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혹은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 “(65페이지)
앞 부분은 생략했는데, 글이 이렇게 두가지로 나뉜다는 것 이었다. 나는 두 가지를 오가는 글을 쓰고싶다. 어쩔 때는 아이처럼 맑은 글을 쓰고 싶고, 또 어떤 때는 세상을 다 산 노인네의 글도 쓰고싶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나 같은 사람을, 도대체 왜 낳은 거냐고. 아이가 ‘이런 세상에 왜 나를 태어나게 했냐’고 물었다면, 어른은 ‘이런 나를 왜 세상에 태어나게 했냐’고 묻는다. <쇳덩이>의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옮겨적어본다.”(67페이지)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아
영화 속에서 본 것 같은 쇳덩이가
왜 나의 가슴팍 위에 자리잡고 있는지
숨을 왜 잘 못 쉬고 있니
네가 물었고
솔직히 말하고 싶었지만 쇳덩이가
왜 너의 가슴팍 위에도 자리잡고 있는지
다른 색깔 다른 모양 다른 무게의 쇳덩이
서로가 들어줄 수 없는 딱 그 모양의 쇳덩이
왜 태어난 건지 모르겠어
엄마 아빤 서로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사람을 도대체 왜 낳은 건지
어쩌면 거기서부터 난 잘못되어 있는 건지
다른 색깔 다른 모양 다른 무게의 쇳덩이
포옹을 할 때마다 귀를 닫고서 했었지
사랑을 잘해보고 싶어
깨끗하고 행복한 사랑
애초에 내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누가 나서서 말해준다면
오늘부로 깨끗이 포기할 텐데
너의 뒤통수를 만지는 일도
함께 아침을 차려 먹는 일도
논쟁을 하다 와락 껴안는 일도
어쩌면 나의 상상 속의 행복 속의
상상 속의 행복 속의
행복이었다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포옹을 꼭 해보고 싶어” (67페이지)
이 노래 가사는 마음을 너무 아릿하게 만들었다. 언니가 자주하던 질문이었다. 자신을 왜 낳았냐고. 나도 문득 생각해보면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었다. 엄마도 날 낳지않으려고 약 먹었는데 태어났다고 했었다. 나도, 엄마도 누구도 원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태어나고 또 자라나 글을 쓰고 있다. 생일에는 이상한 기분이다. 그리고 나에게 상처주는 사람들 때문에 살고 싶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런데 나도 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었다는 것을. 내 생일에 또 이 글을 수정하고 있다. 지금은 이제 크게 의미 부여 안 하고 딱히 자기 연민도 안 하게 되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나온 불행한 아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스스로 비련한 주인공이 되고는 했었나 보다. 그래서 그냥 더 날 위한 시간을 보내고 기록들을 남기고 싶다. 이런 과정을 지나서 내가 더 성숙해졌다는 걸 나중에 보고 기뻐하면 좋겠다.
“내 가슴팍 위 쇳덩이에 관해 솔직히 말해보려던 참에 상대방의 가슴팍 위 쇳덩이도 보여 입을 다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어른이 되는 감각 같았다. 내 것 아닌 쇳덩이의 색깔과 모양과 무게도 알아보는 안목. 서로 들어줄 수 없음을 알고 귀를 닫은 채 하는 포옹.”(69페이지)
나도 힘든 일들을 털어놓고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게 또 상대를 얼마나 지치게 하고 더 힘들게 하는 지 안다. 나는 항상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들어주는 사람에 가깝다. 별 생각 없이 본인의 불만들을 줄줄이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상대의 에너지를 빼앗아 본인의 배를 불리고는 한다. 그리고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사라진다. 그런 사람은 이제 그냥 내 인간관계에서 빛 보다 빠르게 제외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이렇게 생각 하고는 했었는데 또 사람의 심리와 뇌 과학에 대한 책을 읽고 나니까 조금은 생각이 변했다. 나도 내 얘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들에게는 자꾸 내 얘기만 많이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한 달 전에 쓴 글 인데도 생각이 많이 변했다. 사람은 흐르는 물과 같다. 한 곳에 계속 머물지 않고 변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말이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여기저기 구르고, 사람들에게 버림 받더라도 아무 일도 없는 것 보다 낫다.
탄생과 거짓말
“ “모두가 그저 각자 몫의 삶만 산다면 신화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지프 캠벨은 말했다.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죄다 이해하기가 벅차서 허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좋은 거짓말에는 빛도 어둠도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와 함께 지어낸 거짓말로 진실 쪽을 가리키고 싶었다.”(75 페이지)
거짓말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빈말도 그런 거짓말에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실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싶다.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말이다. 물론 그 게 정말 진심이라면 좋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지금은 안다.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특히 관계에서는 내가 노력하는 만큼 좋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냥 흐르는 대로 애쓰지 말아야겠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배려하고 다 맞춰주는 것도 말이다.
문제 해결의 경험치
나사는 아는 듯하다. 관계가 회복되어도 때로는 상처 부위가 말끔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상대방이 “나와 다른 마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그의 문장을 잊고 싶다. 그 가능성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다음 문제도 성숙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93페이지)
예전에 적어 둔 글인데 선견지명이 있었나보다. 나와 상대가 다른 마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한다는 그 말을 나는 잊고 있었다. 그저 내가 믿고싶은 대로 살아왔었나 보다. 아니면 알고있으면서도 애써 회피하고 있었나보다. 어른인 척 하더라도 관계인 부분에서는 많이 서툴다는 것을 매일 배운다. 내가 더 알아가고 공부해야 할 분야인 것 같다. 경험 만큼 쓰고 와닿는 배움이 없는 것 같다.
마무리 하며
이 책을 읽은지, 또 이 글을 써둔 지 6개월 만이다.
그 전 까지는 나만 읽는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읽을 지도 모를 가능성이 있는 곳에 글을 쓰게 되었다. 6개월 동안 많은 게 또 변했다. 저 글을 쓸 때 만 해도 세상 비련한 주인공이었다가
지금은 너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삶이 힘들 때 더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게된다. 이제는 행복할 때도 꾸준히 사색하고 필사와 내 생각을 함께 녹인 글을 쓰려고 한다.
이 글을 쓰고 2년 후 에서야 이렇게 카카오 브런치에 오게 되었다.
마음은 작가가 되고 싶기도 하면서,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에 글을 쓰는 것을 미뤄왔다.
일상 블로그도 해 보고, 영상 편집도 조금 씩 해봤는데 작위적인 모습들 같고 흥미를 오래 붙일 수 가 없었다.
나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 할 수 있는 건 사진도 영상도 아닌 글 인 것 같다.
꾸밈없이 좋은 모습 보일려고 노력할 필요없이 있는 그대로 나를 알아주길 바라며 글을 쓰게된다.
나의 가장 불행했던 시절 부터, 아픔 가까운 사람들한테도 말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써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