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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버스(다중 우주), 그리고 또 다른 나

외계인의 진실

by 더블윤

나는 인간이 이 드넓고 광활한 코스모스 안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이며, 주변의 모든 입자와 에너지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 광막한 우주에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부여한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의 상상은 이 우주만큼이나 넓게 뻗어나가며, 그 빛은 다채롭고 찬란하다.

르네상스의 과학혁명기 이후, 인간은 이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이 우주의 크기가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 인간은 또 다른 질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토록 광대한 우주 어딘가에는, 우리와 같은 지적 존재가 살고 있지 않을까?




이 물음에 대해 숙고하기 위해, 우선 이 우주의 크기를 한 번 가늠해 보자.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지구의 지름은 약 12,742km이다.
지구가 속한 행성계의 중심별인 태양은 지름이 1,392,684km, 즉 지구의 약 109배에 이른다.
그리고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약 1억 5천만 km, 이를 1AU(Astronomical Unit, 천문단위)라 부른다.

태양계의 크기를 정의할 때는 일반적으로 태양의 중력에 여전히 묶여 있는 혜성의 저장소, 즉 오르트 구름(Oort Cloud) 까지를 포함 한다.
이 오르트 구름의 범위는 약 10만~20만 AU에 이르며, 이를 광년으로 환산하면 약 2~3광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제 광년(light-year)이라는 단위가 등장했다.
광년은 천문학에서 사용하는 거리의 단위로, 진공 속에서 빛이 1년 동안 이동한 거리를 뜻한다.
1광년은 약 6만 AU, 약 9.46조 km에 해당한다.

이쯤 되면, 이미 우리의 감각으로는 실감하기 어려운 거리다.

그러나 태양계조차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선 그저 한 점의 먼지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는 시선을 더 멀리 뻗어야 한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프록시마 센타우리(Proxima Centauri)로, 그 거리는 약 4광년이다.
그리고 태양과 프록시마 센타우리 같은 별들이 약 3천억 개 모여 있는 우리 은하(Milky Way)의 크기는 무려 10만 광년에 이른다.

이는 곧, 만약 우리가 빛의 속도로 항해할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든다 하더라도, 은하의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이동하려면 10만 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이 지점만 보아도,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의 범위가 얼마나 아득히 미약한지를 실감할 수 있다.
아마도 우리 생애 동안, 인류가 우리 은하의 경계를 넘어설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에도 탐사선 하나 보내지 못한 존재이니까.




은하의 크기만 보아도 그 거대함에 압도되는데,
우리가 이 드넓은 우주의 전체 크기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실로, 무한에 가까운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우주의 전체 크기는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팽창하고 있으며,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멀어지는 영역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도 그 끝을 볼 수 없기에
우주의 전체 크기를 직접 측정할 수 없다. 다만 ‘가시적 범위(관측 가능한 영역)’를 기준으로 추정할 뿐이다.

현재 우주는 약 138억 년 전 빅뱅(Big Bang) 이후 계속 팽창해 왔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138억 광년'이 아니다.
팽창 효과를 고려하면 지금 기준으로 관측 가능한 우주의 반지름은 약 465억 광년, 따라서 지름은 약 930억 광년 정도로 계산된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말해 ‘우주의 크기’가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우주의 크기, 즉 관측 가능한 한계 안에서의 우주를 말할 뿐이다.




우주가 이토록 넓은 이상, 당연히 이 안에는 수많은 지구형 행성이 존재할 것이다. 그중 일부에서는 생명체가 번성했을 것이며, 어딘가에서는 고등 생명체, 다시 말해 지적 존재가 등장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환경과 모습은 우리에게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그래서 우리의 상상은 끝없이 자극받는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들이 그러했듯, 인간과는 전혀 다른 형상을 한 외계 생명체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세계가 상상의 무대 위에 펼쳐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지적 생명체들이 건설한 문명과 그들의 역사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무한한 우주의 크기만큼이나 그들의 문명 또한 다양하고,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마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멀티버스(Multiverse)’라는 개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는 그 세계관 안에서의 ‘평행 우주(Parallel Universe)’ 를 뜻하는데, 쉽게 말해 등장인물들이 다른 선택이나 행동을 함으로써 각기 다른 역사와 현실이 분기되어 형성된 또 다른 우주를 의미한다.
‘멀티버스’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다중우주’를 뜻하는 용어이지만, 이 개념은 실제 물리학에서 말하는 다중우주 이론과는 거리가 있다.

물리학에서의 다중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우주(Local Universe)’ 의 개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역우주’란 우주론적 규모 속에서 ‘우리 근처’를 가리키는 천문학적 개념이다. 즉, 관측 가능한 우주 안의 일부 구역, 특히 은하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구조적 영역을 말한다.
보통 우리가 속한 ‘지역우주’라 함은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한 국부은하군(Local Group)과 그 인근의 초은하단(Supercluster)을 포함한 영역을 가리킨다.
이 지역우주의 규모는 일반적으로 수억 광년, 즉 빛이 수억 년에 걸쳐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 범위로 묶인다.

이러한 ‘지역우주’들이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 무수히 존재한다는 가정이 바로 물리학적 의미의 ‘다중우주(Multiverse)’ 개념이다.

즉, 다중우주란 한 우주 안에서 다른 역사가 펼쳐지는 ‘평행 세계’가 아니라, 수많은 ‘지역우주’라는 작은 공들이 커다란 볼풀장 안에 흩어져 있는 것에 가깝다.
다시 말해, 우리가 속한 이 우주는 무수히 많은 ‘지역우주’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다중우주의 세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외계 문명에 대한 상상은 더욱 구체적인 힘을 얻게 된다.
평행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각 우주 안에는 인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지적 존재가 살고 있으리라 상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적 생명체’라는 개념의 조건을 신중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보통 우리가 떠올리는 지적 생명체란, 발달한 두뇌를 지니고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인지 능력을 갖춘 존재다. 또한 직립보행을 통해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며, 그 손으로 도구를 만들고 다루는 능력을 가진 생명체를 뜻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들이 필요할까?
우선,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뇌를 진화시키기 위해서는 체내에 충분한 잉여 에너지가 충분히 축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적은 힘으로도 큰 효율을 내는 도구 사용 능력이 중요하며, 언제 어디서든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잡식성 식습관이 유리하다.

도구를 사용하려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손이 필요하다. 그리고 손가락이 정교하게 발달하기 위해서는, 나무 위 생활처럼 무언가를 움켜쥐는 행동이 빈번한 환경이 요구된다.
또한 숲과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는 공간 지각 능력이 생존에 필수적이므로, 자연스럽게 두뇌의 발달이 촉진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인간의 조상이 유인원이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나아가, 고등 지적 생명체의 출현에는 유인원형 진화의 전제가 필요하다는 점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파충류나 조류, 혹은 그 밖의 생명체가 지적 존재로 진화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극히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결정론적 우주’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빅뱅 이후 조용히 흘러가는 엔트로피 증가의 세계 속에서, 지구의 생성과 인간의 출현, 그리고 내가 우주를 사랑하게 된 그 사건조차 결국은 계산 가능한 인과의 사슬 위에 놓여 있음을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지적 생명체인 인간의 탄생 또한 이 우주의 시작과 동시에 이미 결정된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원리는 다른 ‘지역 우주(Local Universe)’ 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수소가 한 곳에 모여 항성이 만들어지고, 그 주변의 먼지가 뭉쳐 행성을 이루며, 적절한 거리와 자기장을 지닌 지구형 행성이 형성된다.

생명체가 태어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행성이 만들어진다면, 그곳에서 지적 생명체가 출현하기까지 필요한 경우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앞서 말했듯, 숲이 자라나고,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포유류가 등장하며, 그들의 나무 생활은 필연적으로 두뇌의 발달을 촉진하게 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진화의 과정이다.

그렇다.

인간의 출현과 다를 바 없다.




결정론적 우주관과 외계인의 존재의 유무와는 큰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결정론적 우주관이 제시하는 세계 안에서, 고등 생명체 즉, 지적 존재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인간과 같은 역사를 밟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실로 재미있는 상상이다. 이 드넓은 우주 안에 지구와 똑같이 생긴 행성과, 인간과 똑같은 생명이, 각 지역우주 안에 무수히 많은 것이다.

어쩌면 이는 수학적으로도 타당하다. 예를 들어 지적 생명체가 출현한 가능성을 우리가 계산할 수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지구의 조건을 생각하면 인간 외의 생물이 지적능력을 가질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다.
그렇다는 건 지구의 조건 아래에서 '지적 생명체=인간'이 될 확률은 거의 100퍼센트에 수렴할 것이다.

이를 전 우주적인 범위로 확장시켜 보자.
예컨대, 각 행성계가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의 행성을 가질 확률이 x, 그 행성이 유기 생명체를 탄생시킬 확률이 y, 그 생명체가 진화하여 지적 능력을 가질 확률을 z라고 하였을 때, 이 우주에서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계가 있을 확률은,


x × y × z


로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우리가 아는 한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행성은 지구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생명체가 살기 적당한 환경인 행성=지구와 같은 환경의 행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위에서 언급했던 이유로, 이 계산식이 의미하는 값은 아래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우주에 인간이 존재하는 행성의 수) = (우주 전체 행성계의 수) × xyz




이 우주는 우리의 인식을 아득히 뛰어넘을 만큼 넓다. 그리고 이 광대한 다중우주의 세계 어딘가에는 외계 문명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문명 속의 존재들은 우리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직 석기시대에 머물러, 농경과 채집이 삶의 중심을 이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신분제도와 인종차별 같은 어둠의 시대를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어쩌면, 우리처럼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조건과 변수가 작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게 작용하는 물리법칙처럼, 그들의 ‘지구’가 우리와 똑같은 역사를 겪어 왔다면, 그곳에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고, ‘브런치 스토리’라는 글쓰기 플랫폼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주를 향한 꿈을 꾸는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발견하기를 꿈꾼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지적 생명체와 그들의 문명을 만나기를 희망한다.

그러면서 나는 종종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이 지역 우주 너머, 또 다른 지역 우주에 있는 작고 푸른 행성.
그곳에 살고 있는 나와 똑같이 생긴, 나와 같은 생각을 품은 존재.
그가 조용히 밤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을 상상을.

바로 오늘의 나처럼 말이다.


우주를 사랑하는 너라는 존재, 나와 같은 너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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