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변해도 잊을 수 없는 사람
대학교 때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전여친(현.부인)과 줄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끼고 삼성라이온즈 야구 경기를 라디오 중계로 들었다. 야간 통학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니까 시간은 22시 정도 되었을까. 플레이오프 경기였는데, 끝내기 안타를 쳤다는 멘트를 듣고 같이 기뻐하며 소리질렀던 기억이 난다.
결혼 후 아이를 낳을 때 즈음 우리가 사랑하는 파란색 팀은 암흑기를 걷고 있었다. 육아로 인해 집에서 마음 편히 TV로 야구 시청도 못 하던 형편이라 자연스레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다가 작년(2024년)에 여섯 살이 된 아이와 함께 야구장에 한번 가봤는데 생각보다 더 재밌어했고, 마침 우리 팀도 성적이 좋아지는 타이밍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파란색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유니폼을 사서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을 등에 새기고, 집에서 유튜브로 선수들의 응원가를 따라 불렀다. 주말에는 경기장에 직접 찾아가서 셋이 함께 춤추며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밖으로 꺼내기 힘든 이야기가 있다. 평생을 함께 같은 교회를 섬기며 동역자로 살아가고 싶었던, 사랑하는 동생이 있었다. 유난히 살갑고 또 듬직했던 동생은 내가 노래를 할 때 옆에서 베이스 기타를 멋지게 연주하는 인물 좋은 청년이었다. 아직도 저 멀리서 날 보며 "히야! 히야!"라고 부르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 때가 있다.
교회 청년부 하계 수련회의 마지막 일정으로 계곡으로 물놀이를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같이 갔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깊지 않을 것 같던 계곡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다시 떠오르지 못했다. 당시 나는 근무하던 대안 학교에서 개학 맞이 행사 준비가 있어 수련회에 참석하지 못했었다. 비보를 듣고 흔들리는 정신을 애써 부여잡으며 장례식장에 도착했는데, 세상에, 그렇게 적막이 가득한 장례식장은 처음이었다. 수십 명이 검은색 옷을 입고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 누구도 한 마디 말을 하지도,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오직 가족들의 절규와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그로부터 벌써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 나는 대중목욕탕의 찬물에 들어가서 '잠수'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차가운 물이 내 머리끝까지 잠기는 순간이면 이내 옛 기억이 떠오르며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럴 때면 천국에서야 만날 그 이름을 한 번 부르고 서둘러 물 위로 올라온다.
경기장에 도착 후 전광판을 보며 타자들의 이름을 쭉 확인하다가 그 이름을 발견하고는 한참 동안 멍하게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우리 팀 선수들 중에는 그런 이름이 없었다. 새롭게 팀에 합류한 선수인 것 같았는데, 사랑하는 동생과 동명이인이었다. 잠시 뒤 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신나는 배경음악과 함께 울려 퍼지는 응원가를 차마 따라 부를 수 없었다. 연이어 외쳐야 하는 그 이름을 곱씹어 속으로 삼키며, 터질 것 같은 울음도 같이 삼켰다.
야속하게도(?) 그는 1군에 오래 있을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그러다 보니 나올 때마다 울려 퍼지는 응원가를 조금씩 따라 부르게 됐다. 덕분인지, 감히 입 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웠던 그 이름이 이제는 제법 자연스럽게 뱉어진다. 하지만 응원가를 따라 부를 때마다 저릿하게 아려오는 마음 한 구석은 어쩔 수 없다.
며칠 전, 올해 처음으로 1군으로 콜업 된 그 선수가 경기에 대타로 출전하여 적시타를 치는 모습을 TV로 봤다. 다음 주말에 있을 우리 가족 직관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전하여 멋진 홈런을 때려줬으면 좋겠다. 홈런볼이 하늘로 쭉 날아 올라서 햇살에 반짝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