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볶음 논쟁

선배, 그건 아니잖아요?

by Mount Zion

2009년. 때는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었지만 대구는 여름 날씨였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나는 한 사람에게 푹 빠져서 날씨가 더운 줄도 모르고 있었다.


군대를 전역하면 당연히 여자친구가 생긴다고, 무조건 자기들이 소개해 준다고 얼른 나오기나 하라고 큰소리치던 같은 과 여자 동기들은 전부 4학년이 되어 임용고사실에 처박혀 있었다. 그것들을 믿은 내가 바보였다. 그렇게 전역 후 솔로 생활을 1년 정도 했을 때,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같은 과 선후배 사이로 '평범'하게 지내고 있던 두 살 아래 후배였다. 평소에는 인사만 하고 지내는 전혀 특별할 것 없는 -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 사이였다. 그러다 과 친구가 우연찮게 주선한 3:3 식사 자리에서 그녀의 매력을 발견하게 됐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 웃음이 많고 소탈했으며, 가까이에서 오래 보니 (예쁜 건 원래 알고 있었지만) 더 예뻤다.


그 만남이 금요일 - 방금 먼저 자러 들어간다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는데 금요일이 맞단다 - 이었다. 다음날, 주말을 맞아 딱히 약속이 없었던 나는 싸이월드에 접속한 친구들 목록을 훑고 있었는데 마침 그 후배가 있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안녕! 어제 잘 들어갔어?

"네 선배. 선배도 잘 들어갔죠?"

"어어. 혹시 오늘 뭐 해?"

"오늘요? 글쎄요 별일 없어요. 왜요?"

"그럼, 시내 가서 나랑 놀래?"



직진이었다. 사실 내가 되게 섬세하고 계산적인 사람인데 '사랑'만큼은 직진인 사람이거든. 이전에도 그렇게 직진했다가 퇴짜 맞은 적이 있었지만, 그러면 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였다. 밀고 당기고를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날도 냅다 150km짜리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는데, 놀랍게도 스트라이크였다.


아직도 그 자리에 있더라 그 엔제리너스. 동성로 중앙에 있는 엔제리너스 테라스 자리에 앉아서 무려 4시간 동안 대화를 했다. 처음으로 단 둘이 대화를 하는 자리였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말이 잘 통할 수가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때 나는 혼자 속으로 프러포즈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랬을 수도 있다. 부끄럽다.


그런 스윗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금요일에 식사, 토요일에 둘만의 동성로 만남 후 급속도로 가까워진 우리는 바로 다음 주에 있을 근처 대학교 축제에 같이 가기로 했다. 내 기억으로는 수요일 - 정확하지 않아서 물어보러 방에 들어갔다 왔는데 벌써 7살 아들이랑 둘이 똑같은 자세로 누워 자고 있다 - 이었던 것 같다.

학교 앞 정문 포장마차에는 축제답게 온갖 음식들을 팔고 있었는데, 우리는 문제의 '순대볶음' 2인분을 사서 불꽃놀이가 잘 보이는 운동장 벤치에 앉았다. 거기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순대를 먹다가 또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135km짜리 체인지업을 한가운데로 던졌다. 젓가락으로 순대를 하나 집어서 후배가 먹을 수 있도록 입 가까이에 가져다준 것인데, 어? 뭐야? 스트라이크였다. 그 순대를 얌전히 받아먹는 걸 보며 '와 이건 90km짜리 커브를 한가운데 던져도 삼진 잡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이제 고백 후 사귀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논쟁이 생긴다.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난 100% 확신을 갖고 파란 장미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 너무 오글거리지만, 브라운 아이즈 소울의 '그런 사람이기를'을 불렀고 지금 글을 쓰면서도 듣고 있다 - 고백했는데, 당연히 삼진 후 해피엔딩일 것 같던 경기는 끝내기 홈런으로 인한 패배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완벽했는데? 분명 내 순대를 받아먹었잖아. 아니 그럼 왜 그때 받아먹었지? 아니라고 말했어야지? 표정이라도 찡그렸어야지?


(이후 사귀게 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물론 지금은 결혼 후 잘 살고 있으니 결국 내가 승자이긴 하지만, 그놈의 '순대볶음' 이야기는 가끔 나올 때마다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이쯤에서 그녀의 입장을 들어보자.



"오빠, 아니 선배. 그때는 선배가 그냥 '싫지 않은, 잘해주는 친한 선배' 정도였을 뿐이야. 좋아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고! 우리가 친해진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었어. 순대볶음? 그럼 뭐 내가 거기서 그 순대볶음을 안 먹고 정색하면서 선배 왜 이러시냐고 했어야 하나?"


...

여러분의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