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내일 국어시간에는 기말고사 끝난 기념으로 '시 낭송 대회'를 합니다. 다들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한 편씩 골라와서 돌아가며 낭송을 하고, 1등에게는 상품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남자 고등학교 교실에서 무슨 낯 간지러운 시 낭송이겠냐만, 2002년 당시 고1이던 나는 두근두근했다. 드디어 내가 아무도 몰래 써왔던 시를 친구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공개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종일 시 낭송 대회 생각뿐이었다. 써 둔 작품도 몇 개 없었지만,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멋지게 낭송하고 싶었다. 집에 도착 후 책상 앞에 앉아 서랍 맨 밑 구석에 몰래 숨겨둔 비밀 노트를 펼쳤다. 나름 제일 잘 쓴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황새'라는 제목의 시를 골라 수십 번 속으로 읽고 또 다듬었다. 가족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용한 목소리로 낭송 연습을 했다. 밤이 깊어가는 것도 모르고 시어 하나하나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쉬이 잠들기가 어려운 밤이었지만 빨리 내일이 오길 바랐다.
친구들도 저마다 한 편씩 시를 선정해 왔고 ㅡ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많은 친구들이 아침에 부랴부랴 국어 책을 뒤졌다ㅡ 나는 '황새'를 품에 안고 국어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국어 선생님의 손에는 몇 권의 문제집이 들려 있었고, 그것이 오늘의 1등 상품이었다. 생각보다 탐나지 않는 상품을 보고 우리는 상대팀의 에이스가 자유투를 던지기 직전처럼 단체로 야유를 보냈고, 머쓱하게 웃으시며 막대기로 교탁을 두 대 탁탁! 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낭송대회가 시작됐다.
땀냄새로 찌든 꿉꿉한 학생들의 시 읽기는 예상외로 상쾌했다. 문과반이라 그런지 제법 낭만이 있는 작품들을 골라서 진지하게 낭송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다시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몇몇은 낭송'대회'답게 감정을 과다 투영하여 느끼하게 읽기도 했고, 일부러 익살스럽게 읽기도 하며 청중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그런 특별한 아이들의 순서가 지난 뒤 내 차례가 다가왔고, 나는 너무 평범하고 재미없는 시를 준비한 것 같아 자신감을 잃은 채 교탁으로 걸어 나갔다. 그래도 누구보다 많이 연습한 터라, 긴장하지는 않고 시어 하나하나 정성을 담아 낭송했다. 그렇게 무난하게 끝내고 자리로 돌아갔다. 다행히 아무도 내가 직접 쓴 시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낭송 대회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사랑'에 관한 시를 멋지게 낭송하여서 모두의 웃음을 터뜨린 친구가 1등을 했다. 그런데 그때
"혹시, 자기가 직접 쓴 시를 낭송한 사람이 있었을까?"
라는 선생님의 말에 조심스럽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손을 번쩍 들었는데, 친구들이 일제히 나를 보며 감탄사를 뱉었다.
"오~뭐야 진짜?"
나 혼자였다.
선생님께서도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시며 내게 작품을 가지고 다시 앞으로 나와보라 하셨고, 건네 드린 '황새'를 천천히 눈으로 한 번 살펴보시고는 직접 아이들에게 낭송해 주셨다. 이후 시어와 구절에 대해 창작자인 내게 질문을 하시며 자신의 해석이 맞는지 확인하셨다. 이내 등을 토닥이시며 잘 썼다고 칭찬해 주셨다. 어리둥절했지만 기분이 정말 좋았다. 친구들의 박수를 받으며 천천히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요동치는 심장을 느끼며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나는 분명 자리에 앉았는데, 신기하게도 날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도, 내려서 걸어가는 골목길에서도, 씻을 때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내 안에 반짝이는 빛을 가릴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짝반짝 더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또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취미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하루는 수업을 듣던 고1 학생이 물었다.
- 선생님, 선생님은 언제 국어 교사라는 꿈을 꾸게 되셨나요?
- 너처럼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 내 안에 반짝이던 순간을 놓치지 않았고, 그렇게 꿈이 시작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