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강제로 교직에 들어서기까지
2011년 1월
사실은 도망가고 싶었다.
국어교사가 되기 위해 4년 간 대학에서 공부했지만, 솔직히 국어 공부가 재미없었다. 졸업하며 치른 임용고시에서는 너무 큰 점수 차로 떨어졌기에 아쉽지도 않았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동시에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원망했다.
'왜 나를 국어교육과로 보내셨나요. 왜 '국어교사'에 대한 뜻을 품게 하셨나요.'
그때까지 해 본 거라고는 국어 공부밖에 없었기에 다른 길을 찾기는 어려웠다. 멋진 교사가 되어 돌아가신 할머니 산소 앞에 가서 합격증을 들고 엉엉 울겠노라 다짐했으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임용고시 재수를 시작했다. 학교 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맡은 뒤, 언제나 - 정말 놀랍게도 매일매일 - 공부가 잘 되지 않아 책을 두고 밖으로 나갔다. 주로 벤치에 앉아 멍하게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기 직전에 다시 도서관 자리로 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잠시 앉아 있다가, 같이 공부하러 온 친구들과 모여서 밥을 먹었다. 식사 후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 앉았지만 이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는 책을 보며 답답해진 마음을 이기지 못해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 먼저 갈게. 내일 봐."
친구들에게 문자를 남긴 뒤, 재수생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이른 시간에 혼자 도서관을 탈출했다.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 이곳저곳을 서성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너무 일찍 가면 집에 있을 가족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늦게 들어갔다. 나 혼자만 불행하면 되는 거였다.
하루하루 견디기가 힘들었다. 하나님께서 내 길을 인도하셔서 시작한 공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지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의 괴리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은 피폐해져 갔고, 잠시 모든 걸 두고 여행을 다녀올까도 생각했지만 재수생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떠날 용기가 없었다.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릴 용기는 더 없었다.
2011년 7월
교회는 도피처였다. 토요일만 되면 찬양팀 연습을 하고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고 모임을 하는 등 주말 동안 나름 열심히 살았다. 주일이 가까워오면 즐거웠고, 밤 10시 30분쯤 개그콘서트가 끝나갈 때면 답답함이 몰려왔다.
재수를 시작한 지 반년이 되었을 때 합법적으로 며칠 동안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 변명 거리가 생겼다. 청년부 여름 수련회를 참석하는 것이었는데, '노방 전도' 수련회라서 준비할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최종 목적지 한 곳을 정해둔 뒤 각 조별로 루트를 달리 하여 걸어가면서 전도를 하는 컨셉이었다.
'무전'으로 떠나는 수련회였기 때문에 먼 거리를 도보와 히치하이킹을 통해 가야만 했다. 내가 속한 조는 '김천'을 지나서 목적지인 '함양'까지 가는 루트였고, 그 지역의 교회를 찾아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잠도 교회에서 잤다. 3박 4일 동안 다양한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순간순간 함께 하시는 은혜에 힘입어 낙오자 없이 무사히 완주했다.
2011년 8월
은혜 충만한 마음을 가지고 도서관으로 돌아갔지만, 공부와 은혜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게 한 단계 더 깊은 좌절을 경험하고 있을 때, 경북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기독교 대안학교 국어교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향이라 많이 망설였지만, 지금 이대로 살다가는 조만간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서 어디로든 탈출하고 싶었다. 그렇게 교직 경력이 제로인 상태로 하나님 빽만 믿고 이력서를 제출했고, 감사하게도 면접을 보러 학교에 찾아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며칠 뒤 면접을 보기 위해 학교가 있는 '김천'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가서 김천역에 내렸고, 거기서부터는 시내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첫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라 굉장히 떨렸다. 내가 타는 버스가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 후 버스에 올랐다. 출발과 동시에 불안과 걱정이 나를 삼켰다.
'학교는 어떤 곳일까, 면접에서는 어떤 질문을 하실까, 내려야 할 정류장에 잘 내릴 수 있을까, 그리고 이 학교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길이 맞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의자 손잡이를 꼭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그 길이 맞다면 말씀해 주시고 보여 주세요.'
버스가 출발한 지 5분쯤 되었을까.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열흘 전 수련회 때 걸었던 그 길이야. 이쯤에서 히치하이킹에 성공해서 트럭 뒤에 타고 갔었어. 맞아, 저기 보이는 다리에서 좌회전을 했었어!'
놀랍게도 내가 타고 있던 버스도 그 다리에서 좌회전을 했다. 이후로도 버스는 쭉 내가 알고 있는 길 - 불과 열흘 전에 조원들과 함께 걸었던 길 - 을 똑같이 따라갔다. 믿기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저 감사했다. 덕분에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조금씩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너를 위해 계획한 그 길이 맞으니 두려워하지 마."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면접 후 집으로 돌아와 얼른 컴퓨터를 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난 수련회 사진 중 '김천'에서 찍은 사진들을 한 장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히치하이킹에 성공한 뒤 트럭을 타고 가며 찍은 셀카에서, 환하게 웃는 내 모습 뒤로 그날 면접을 보고 온 학교가 찍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온몸에 있는 털이 모두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이틀 뒤 합격 전화를 받았고, 그렇게 반 강제로 교직에 들어서게 되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편 105절 말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장 10절 말씀)
나의 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 아이자야씩스티원 (클릭 = 유튜브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