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면 충분했다
성남아트센터로 가는 길은 낯설지 않았다.
예전에 몇 번 와본 적은 있었지만, 차로 이동하는 건 처음이었다.
헤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길은 어렵지 않았다.
차 안에서 창문을 열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하늘이 맑아서인지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차도 막히지 않아 30여 분 만에 성남아트센터에 도착했다.
짐을 내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제자였던 인택이와 현우가 먼저 와 있었다.
이번 연주회 때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흔쾌히 응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미 몇몇 연주자분들이 와 계셨는데,
다들 긴장하셨는지 말씀이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연주했던 홀보다 규모가 몇 배는 커서인지
나 역시 자연스럽게 긴장이 됐다.
거의 모든 연주자분들이 도착했고
리허설 시간까지는 잠시 여유가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밖으로 나가 보니
송바이올린 원장 재화가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얼굴을 보자마자 느껴졌다.
유난히 노랗게 질린 얼굴.
“형, 긴장돼서 거의 못 잤어요. 잘 끝나겠죠?”
“…”
나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나 역시 걱정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리허설 시간이 다 되어 마지막 연주자 한 분이 도착했고,
우리는 무대로 향했다.
3시 공연이라 12시 30분부터 리허설을 시작했다.
프로그램 순서대로 진행해야 했고
1시간 30분 안에 끝내야 했기에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모두 긴장한 탓인지
소리가 평소처럼 나오지 않았고
연습 때보다 박자도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재화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큰일 났다.’
틀린 부분들은 시간 관계상 어쩔 수 없이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연습 때는 정말 잘하셨는데,
홀의 크기 때문인지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겨우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이제 가장 중요한 건 마인드 컨트롤이었다.
한 분 한 분 다가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연습 때처럼만 하시면 돼요.
실수하셔도 괜찮으니까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내 손은 들고 있던 물컵의 물이 반 이상 쏟아질 만큼 떨리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연주 시간이 다가왔다.
대기실에서 다 같이 파이팅을 외치고
무대 뒤편으로 이동했다.
관객석을 잠깐 바라봤다.
설 연휴를 앞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자리를 채워주고 계셨다.
그 순간부터 손과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제발 무사히 끝나게 해 주세요.’
속으로 그렇게 기도를 드린 뒤
첫 연주자의 무대가 시작됐다.
무대 뒤에서 재화와 나는 숨을 죽인 채 연주를 들었다.
다행히 연습 때보다 훨씬 안정적이었고
소리도 더 좋았다.
모든 연주자분들이 크고 작은 실수는 있었지만
연습 때보다 훨씬 잘해주셨다.
결국 연주회는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 무사히, 그리고 성황리에 끝났다.
연주가 끝난 뒤 대기실에 모여
그제야 진짜 기쁨을 나눴다.
연주회를 보러 와준 지인들 역시
“정말 좋은 연주회였다”는 말을 건네주셨다.
연주자분들과 작별 인사를 한 뒤
재화와 나는 서울로 이동해
지인이 운영하는 ‘640 고깃집’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둘 다 흥분과 감격을 주체하지 못한 채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나눴다.
이 연주회 대관을 도와준 지원이와 함께
고깃집에서 뒤늦은 회식을 했다.
힘들었던 준비 과정도,
리허설의 불안도
모두 지나간 일처럼 느껴졌다.
‘이제 다시 시작이구나.’
‘이 연주회를 계기로 흐름이 바뀌겠지.’
그때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얼마나 오래가지 못할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