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키스탄으로 떠났던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1년 이상 살 계획으로 떠난다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올봄에 환송했는데, 그의 갑작스러운 유턴이었다. 살다가 느닷없이 어느 날 중앙아시아로 이주하겠다던 그의 자유로움을 나의 이 찰떡지게 질퍽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의 대안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겼건만, 이런 젠장!
남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나의 현재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자 노력하리라는, 이런 하나 마나 한 깨달음은 갖지 않는다. 나는 또 다른 아바타를 찾아서 누군가 나 대신 위험을 감수하고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고 위험에 맞서 마체테(machete)를 휘두르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 주기를 원한다.
그 모험담을 들으며 나도 준비할 것이다. 언젠가 여건이 되면 뛰쳐 나가리라. 그 시점이 영영 오지 않는다 한들, 적어도 나의 가슴은 항상 먼 곳을 향해 열려 있다. 그리하여 미나리를 다듬으면서도, 아이를 학교에 태워주면서도, 서류를 복사하면서도, 회의 준비를 위해 커피 셔틀을 하면서도, 나의 머릿속은 이 세상 가보지 않은 곳 구석구석을 누비며, 광활한 시공간의 시원(始原)을 가르는 바람 소리로 가득하다.
일단, 친구를 만나면 수고했다고 술 한잔 사야겠다. 그리고 은근슬쩍 물어봐야지.
“다음 여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