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지만 순진하지 않게

방구석 사색

by copeadee

내가 결혼하던 해, 만 25세였던 그때

결혼을 하고 아프리카에 오게 되면서 결심했다.


내가 한 8살 때 쯤 간식으로 짜장범벅 컵라면을 후루룩 먹으며 보던 TV 속. 혓바닥 가운데에서 반짝이던 피어싱을 보며 ‘저 가수는 왜 노래를 부르면서 입 안에 구슬을 넣고 있을까’ 궁금해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시절. 또 여자 커플이 올리는 결혼식을 보며 장난 드라마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 세상이 온통 의문덩어리였던 시절 이었는데

그때쯤 미국에서 시행되던 냉동인간 실험처럼, 지금의 나는 ‘나’라는 사람을 아프리카에 동결해 두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당시에도 냉동인간 실험은 무모하고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고, 지금도 그 의문은 여전하다. 나 또한 하나뿐인 인생을 걸고 실험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반 오십을 향해 가던 있는게 시간 뿐인 시절의 나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발상이기도 했다.


영원하지 않을 젊음처럼, 쉽게 물들어버리는 순수함을 최대한 오래 소유 하고 싶었다.

한참 이 세상에 찌들어 있던 어른들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갔다가 호되게 당했던 그때.

그래서 도망치듯, 무모하지만 고결한 실험은 시작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조건. 순진해지지는 않으리.


내 안에 있는 타인을 측은히 여기고, 배경과 겉모습, 지위와 나이를 불문하고 영혼이 통하는 세계를 지키되, 대책없이 더럽혀진 손에 끌려다니지 않으리.

밝게 웃는 얼굴 뒤에 추악한 얼굴을 숨긴 처키에게 나의 영혼을 팔지 않으리.


가족과 친구라는 이유로 나를 함부로 조종하려는 자에게 나의 옆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리.

부디 인간의 심리를 잘 읽어내, 하늘로부터 선물받은 순수한 본능을 악용하는 자들에게 나의 영혼을 빼앗기지 않으리.


매일매일 정신 차리고, 나의 것을 지키고 보존하며, 나눠야 할 때는 순수한 날것을 꺼내어 마음껏 교류하리.


너무 투명해서 감히 가공된 색을 입히기 어려운,

너무 투명해서 깨뜨리려 다가왔다가 비쳐지는 자신의 추악함을 보고 스스로 부끄러워 도망가길…


이것이 내가 원하는 수년 후 나의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순수함을 아프리카 이곳, 심해 속 깊이 심어두었다.

그리고 나의 지성을 이곳 와일드한 땅 위에 던져두었다.


마치 하나의 돌이 되어 마음껏 굴러다니며, 밟히고, 누군가의 차 바퀴 밑에서 고정하는 데 쓰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이의 손에 들려 누군가를 공격하는 데 쓰이기도 하다가, 또 누군가의 화분에 들어갔다가 마침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을 때—누군가가 예쁘다고 말하며 소중히 주머니에 챙겨, 진가를 알아줄 때까지.


나는 그렇게 구르고, 부딪히고, 던져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도 네가 살아남는다면, 필히 꽁꽁 숨겨두었던 순수함을 쓸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이 내가 되고자 하는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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