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팔을 툭툭 건드리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용수철처럼 반사적으로 몸이 튀어올랐다.
침구는 땀으로 젖어 축축했고, 운동장을 몇 바퀴 뛰고 난 것처럼 숨이 가빴다.
[지은아, 나쁜 꿈 꿨니?]
영은 선생님이 능숙한 수화로 물었다.
[네··· 무서운 꿈을 꿨어요.]
내 대답을 본 선생님이 걱정스레 웃으며 물었다.
[대체 어떤 꿈이었길래 그래.]
선생님이 다정한 손길로 땀에 젖은 내 머리칼을 넘겨주었다.
선생님의 따뜻한 눈동자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방금 전까지는 정말 생생했는데···’
대부분의 꿈이 그렇듯, 잠에서 깨어나니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자극적인 몇몇 장면만, 어떠한 연계성도 없이 뒤죽박죽 마구잡이로 떠올랐다.
꿈속 세계에서는 무자비한 대학살이 일어나고 있었다.
칼이나 총, 탱크 같은 무시무시한 무기는 없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죽어가고 있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도와달라고 피 묻은 손을 내밀던 사람들을 뿌리치며...
나는 홀로 ...도망치고 있었다.
악몽 속에서도 나는 비겁하고 치졸했다.
절대,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조각난 몇 개의 이미지만으로도 작게 몸이 떨렸다.
[기억나는 부분만이라도 털어놔봐. 도움이 될 거야.]
영은 선생님은 얼른 이야기해 보라는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재촉했다.
말을 할까 했지만 아무래도 입을 다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착하고 여린 선생님께 아침부터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진 않았다.
[방금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이젠 괜찮아요!]
영은 선생님은 나의 수화를 읽더니 장난스럽게 웃으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개.꿈.”
우리는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선생님은 양팔을 벌려 나를 폭 안아주었다.
선생님의 냄새, 온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 나는 지금 안전해.‘
이따금 생각했다.
세상에 종말이 온다면, 나는 제일 먼저 죽을 것이다.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다 몸을 찢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면 그제야 ‘죽는구나’ 할 것이다.
바보같이...
세상을 구하는 영웅은 커녕, 내 한 몸도 제대로 건사할 수 없는 인간.
그게 나였다.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기분 나쁜 꿈은 다 잊어버리고,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사물함 열어 봐, 알았지? 꼭?]
[사물함이요? 왜요?]
[미리 주는 생일 선물! 친구들한텐 비밀이야!]
선생님이 찡긋 윙크를 해보였다.
선생님의 깜짝 이벤트 소식에 몸에 남아있던 불쾌한 긴장이 완전히 풀어져 버렸다.
’선물이라니! 과연 뭘까?‘
단순한 성격 탓에 선물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으로 금세 정신이 팔렸다.
영은 선생님은 우리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선생님은 우리가 버려진 아이들이 아니라, 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아이들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하겠지만, 그 말은 우리를 살게 했다.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각기 다른 깊이와 모양의 상처를 필사적으로 숨기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으니까.
선생님의 위로는 자꾸만 덧나는 우리의 환부를 어루만져 주는 하나뿐인 약이었다.
영은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나는 더 특별한 존재였다.
그때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좋기만 했다.
내 자신이 미워지고 약해지는 순간이 오면 기도처럼, 주문처럼 선생님의 말을 되내이곤 했다.
***
선생님은 복도를 돌아다니며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있었다.
모두 즐거워보였다.
끼고 싶었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입모양을 읽어내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꽤나 피곤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애쓰고 노력할수록 자꾸만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소리도 영원히 듣지 못할 거라는 절망감이 나를 깊게 갉아먹고 있었다.
***
자는 동안 땀을 너무 많이 흘려 간단하게 샤워를 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유난히 맘에 들지 않았다.
오른쪽 귀는 흔적조차 없이 뺨과 매끈하게 이어졌고, 왼쪽 관자놀이에서 턱뼈까지는 깊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그 자리에는 귀를 대신하듯 귓볼을 뚫은 것 같은 작은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어린 시절, 나를 괴롭혔던 아이들 몇몇이 구멍 안으로 이쑤시개를 쑤셔 넣어보기도 했었다.
이쑤시개는 금방 빼냈지만, 나는 그대로 기절해서 꼬박 3일하고도 반나절을 깨어나지 못했었다.
이쑤시개가 좀만 더 길었다면 나는 그대로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 이후로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가늘고 뾰족한 이쑤시개가 떠오르곤 했다.
‘이 저주스러운 외모 때문에 버려진 거 아닐까?’
듣지 못하는 건 둘째치고 귀가 없다니...
아무리 부모라도 괴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애정도, 자비도 없이 자신이 낳은 핏덩이를 갖다 버릴 수 있었던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울적해졌다.
인조 가죽이 헤진 낡은 헤드셋을 썼다.
머리 위로 익숙한 무게가 내려 앉았다.
내 세상엔 어떤 음악도 소리도 들어올 수 없지만, 나는 항상 헤드셋을 쓰고 다녔다.
헤드셋을 쓰면 나도 남들과 똑같아 보이니까.
나만의 위장을 끝낸 뒤, 다시 씩씩한 척 보육원을 나섰다.
***
우리 보육원 아이들은 항상 붙어다녔다.
부모 없는 애들, 부모가 버린 애들, 보육원 사는 애들...
우릴 싫어하는 애들은 이런 식으로 우리를 손가락질하고 욕했다.
하지만 우리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크게 신경쓰지 않는 척 했다.
약한 모습을 보일수록 우리를 더 만만하게 보고, 더 집요하게 괴롭힐 게 분명했으니까.
약한 아이들을 굴복시켜 강함을 과시하려는 양아치들에게 우리는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강해보이려 애를 써댔다.
약한 사람의 생존 본능이었다.
“특수반 쟤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불쌍하다. ”
“맞아. 장식용이라도 귀가 달려 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엥, 뭔 소리야? 귀가 없다니?”
“몰랐어? 쟤 귀 없잖아.”
“안 들리는 게 아니고 귀가 없다고? 아예?”
“그렇다니까? 저 헤드셋도 가리려고 일부러 쓰는 거임! 전에 양민철이 실수인 척 부딪히면서 벗겨봤는데 진짜 귀가 없더라니까?”
“미친. 근데 귀가 없으면 ...어떻게 생겼어?”
“그냥 피부야. 문어 같던데?”
“헐 대박! 나도 보고 싶어.”
“가서 보여달라고 해봐. 구경하고 싶다고.”
팬티가 보일 정도로 치마를 줄여 입은 여자 애들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큭큭거렸다.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귀가 없어서 좋은 점도 있긴 있다.
애들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든 알 수 없다는 것.
조롱 섞인 시선만 잘 견디면 된다.
익숙한 상황이었다.
평소처럼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옆에 있던 지훈이 나를 불러 세우고 말했다.
[신경쓰지 마!]
엉성한 수화였다.
긴 대화는 필담으로 밖에 못하지만, 지훈이는 꾸준히 수화를 배워 나와 직접 소통하려 애썼다.
[나중에 보자!]
나를 반 앞까지 데려다 준 지훈이 다시 아이들이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나는 뒷문에 서서 우르르 몰려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 보았다.
부모처럼 사랑을 주는 선생님, 형제자매 보다 더 끈끈한 친구들...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아이들이 계단을 오르는 동안 중간 중간 뒤돌아 보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
그리고 몇 시간 뒤, 영원할 것 같았던 평화로운 일상이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점심을 먹으려 나가려는데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둔한 사람이라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진동이었다.
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만큼 다른 감각들이 굉장히 예민한 편이라 그 은근한 떨림을 감지할 수 있었다.
처음엔 집중을 해야 느껴지던 진동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모든 감각이 곤두섰다.
그때 누군가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깜짝 놀라 뒤돌아 보니 지훈이가 서 있었다.
'오늘 제육볶음이래.'
지훈이가 큼지막하게 적은 공책을 들어보이며 헤벌쭉 웃었다.
보육원 친구들이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속이 안 좋아서... 나는 빼고 다녀와.’
내가 쓴 답장을 본 지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시 무언갈 적기 시작했다.
‘괜찮아? 올 때 보건실에서 약 받아줄까?’
‘아니야, 괜찮아! 그런데... 너희는 안 느껴져?’
‘어떤 거?’
지훈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뭐 느껴지는 사람?”
지훈이가 아이들한테 물어보는 것 같았다.
다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냥 내가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시간 뺏어서 미안해. 얼른 가서 점심 먹어!’
지훈이가 답장을 적으려다 공책을 동그랗게 말아 주머니에 넣곤 수화로 말했다.
[나중에 보자!]
진동 때문인지 속이 메스꺼웠다.
책상에 엎드려 쉬려 했는데 어젯밤 악몽으로 잠을 설친 탓일까, 깜빡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잠에 들었던 게 아니라 잠시 기절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희미하게 나는 비릿한 냄새에 눈을 떴다.
수업이 한창이어야 할 시간인데, 교실엔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느낌에 상황을 확인하려 뒷문을 살짝 열었는데, 발밑으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얼어 붙고 말았다.
그것은 피 범벅이 된 사람의 손이었다.
빳빳하게 굳은 듯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누구지?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손의 주인공을 확인하려 문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는데, 눈앞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쓰러진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피 범벅인 채로 복도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었다.
끔찍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멍하니 서 있다가 얼른 다시 문을 닫고 들어왔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교실 문에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굴려봤지만, 눈 앞에 펼쳐진 참혹한 장면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불현듯 악몽의 이미지가 흐릿하게 겹쳐졌다.
‘악몽을 다시 꾸고 있는 거야. 빨리 깨어나야 해!’
뺨을 때리고 볼을 꼬집어 봤지만 얼얼한 통증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누가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
일단 지훈이와 아이들을 찾아야했다.
혹시 몰라 필통에 있던 문구용 커터칼을 꺼내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 밖, 운동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조잔디가 깔려있던 푸른 운동장은 붉게 변해 있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축구를 하던 아이들도, 피구를 하던 아이들도 뛰어 놀던 그 자리 그대로 쓰러진 것 같았다.
도로엔 자동차 수십 대가 부딪혀 아수라장이었다.
'핸드폰을 찾아야 해!’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선 핸드폰이 필요했다.
학생들의 핸드폰은 아침에 걷어서 학교가 끝날 때까지 교무실에 보관했다.
'교무실!'
이 모든 상황이 실감나지 않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공포로 몸이 덜덜 떨렸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뒷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교실 밖으로 빠져 나왔다.
문을 열자마자 시신 한 구와 눈이 마주쳤다.
왼쪽 얼굴이 처참하게 부서져 있어 얼굴로는 누군지 전혀 구별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게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주머니에 돌돌 말려있는 공책.
지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