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탈출

by 사과

몇 분 전만 해도 함께 필담을 나누었는데···

잠깐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너무 놀라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지훈의 시신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왼쪽 눈과 두개골 일부가 사라져 있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오른쪽 눈은 차마 감지도 못한 상태였다.


‘얼마나 아팠을까···’


지훈이 괴로움에 몸부림쳤을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니 가엽고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복도 끝까지 많은 사람들이 피 투성이인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지훈에게 다가가 미처 감지 못한 눈을 감겨 주었다.

지훈의 몸은 이미 온기를 잃고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다행이라고 할 순 없지만, 복도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중 다른 보육원 친구들은 없었다.


‘누군가는 나처럼 어딘가에 살아있지 않을까?’


지훈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웠지만, 지훈의 덩치는 나보다 두 배 이상 컸으므로 혼자서 시신을 수습하기는 무리였다.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꼭 살아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돌아올게. 조금만 기다려 줘.’


하지만 막상 떠나려니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훈이 때문인지,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인진 알 수 없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지훈이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공책을 챙겼다.

공책이 펼쳐지며 말려있던 공간 안에 담겨있던 무언가 툭 떨어졌다.


밀봉된 알약 두 개와 초코 에너지바였다.

그것들을 천천히 주워드는데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눴던 필담 뒷장엔 지훈이 새로 적은 메모가 있었다.


‘에너지바 먹고 30분 뒤에 약 챙겨 먹어.’


커다란 둑이 무너진 것처럼 제어할 수 없는 커다란 슬픔이 울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너무나 무서웠다.



손가락에 닿는 종이의 감촉이 지훈의 따뜻했던 손을 떠올리게 했다.

지훈이는 누구보다 수화를 배우는 데 열정적이었다.


언젠가 내가 물었다.

‘넌 장애도 없잖아. 근데 수화를 왜 그렇게 열심히 배워?’


내 필담을 보고 지훈은 서투른 수화로 띄엄띄엄 대답했다.

[너랑 대화, 내가, 너, 말하다···]


다정한 지훈과 눈을 마주치고 있으니, 어쩐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며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피하려 하자, 지훈이 내 팔목을 붙들었다.

지훈이도 자신의 행동에 꽤나 놀란 것 같았다.


멈칫거리던 지훈은 손바닥을 보이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곤 민망한 듯 살짝 웃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보다 길게 글을 적었다.


‘너랑 대화하고 싶어서. 너랑 더 친해지고 싶어. 네가 못 듣는다 해도 나는 들을 수 있으니까. 내가 모든 소리를 다 듣고 너한테 알려주면 되잖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꾹꾹 눌러쓴 지훈의 글자마다 투명한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훈의 고백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고맙고 기쁘고 너무 좋은데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나는 결국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지훈에게 잡힌 손을 뿌리친 채 방으로 도망쳐 버렸다.


이후 나는 큰 빚이라도 진 사람처럼 지훈일 피해 다녔다.

하지만 지훈은 평소처럼 나를 살뜰하게 챙겼다.

그리곤 나를 따로 불러 자기가 괜한 말을 했다면, 불편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다.


그런게 아니었는데···

만약 지훈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평생 내 귀가 되어 달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가끔은 철없는 남동생처럼 속없는 장난을 쳐 귀찮기도 했지만, 내가 무너지고 힘들 때마다 든든한 오빠처럼, 아빠처럼 중심을 잡아줬던 지훈이었다.

더 이상 지훈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나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내 마음을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할 걸...’

후회가 밀려 왔지만, 우물쭈물하는 새에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맘 놓고 슬퍼하기엔 이런 학살을 자행한 누군가가 아직 학교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필사적으로 새어나가는 울음을 틀어막고 지훈의 공책과 알약, 에너지바를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일단 핸드폰을 찾아서 상황을 파악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교무실에 가는 동안 생존한 아이들을 만나면 상황이 좀 나아질 지도 모른다.


‘약속해. 무엇이 널 이렇게 만들었는지 꼭 밝혀낼 거야. 그래서 벌 받게 만들 거야.’


지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찬란하게 해가 들어오는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그날의 날씨는 잔인할 만큼 화창했다.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에 눈이 시릴 지경이었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시체를 가로질러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딛었다.


지옥 같은 풍경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복도에서 죽은 한 아이의 꽉 쥔 주먹에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 뽑혀 있었다.

화장실 앞, 두 명의 여자아이는 서로를 마주본 채 손을 꼭 잡은 상태로 죽어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두통에 스스로 머리를 박은 듯, 깨진 창문에 머리를 박고 죽어있는 1학년 체육 선생님도 보였다.

금이 간 유리 사이사이로 피가 스며 들어 있었고, 선생님의 얼굴은 다 짓이겨 있었다.

처참한 모습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교무실로 이동하는 동안 몇 가지를 알아냈다.

죽은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1) 대부분 귀를 막고 죽어 있다.

(2) 죽은 사람들 모두 눈이나 머리 쪽이 터져있거나 눈, 코, 입,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3) 교무실에 가까워질수록 점심시간에 느꼈던 진동의 세기가 점점 심해진다.


교무실에 다가갈수록 진동이 거세지는 것이 느껴졌다.

진동 때문인지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팠다.


어쩌면 학교 전체를 뒤덮은 피비린내 때문일지도 몰랐다.

속이 너무 메스꺼워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진동은 이제 피부 밑 장기를 쥐어 짜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체적인 고통이 더해질수록 해맑게 웃던 지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난 그동안 지훈한테 받기만 했을 뿐, 해준 게 없었다.

그리고 더이상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훈이에게 한 마지막 약속을 지키는 것 뿐이다.


이런 잔인한 일을 저지른 사람을 찾고, 벌 받게 할 것.

그리고 지훈의 마지막을 예를 갖춰 수습할 것.


***

진동은 교무실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았다.

살짝 열려있는 교무실 문으로 다가가자 진동으로 피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어지러움에 속이 미식거렸다.

결국 그 자리에서 속을 게워내고 말았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교무실에 모든 열쇠가 있을 것 같다는 강력한 확신이 섰다.


‘차피 죽기야 더하겠어?’


문을 열고 들어간 교무실은 충격적이었다.

빨간색 페인트를 들이부은 것처럼 사방이 온통 붉었다.

전부 피였다.


그곳에 있는 시체들은 모두 머리가 없었다.

옷으로만 추측할 뿐, 누가 누군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컴퓨터와 핸드폰.


켜져있는 컴퓨터는 다 같은 화면을 띄우고 있었다.

파란색 바탕에 알 수 없는 숫자와 기호가 떠다니고 있었다.


‘해킹을 당한 건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박살난 핸드폰들도 컴퓨터와 똑같은 화면이었다.


진동도 그 화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진동을 견디는 게 괴로워 프로그램을 꺼 보려 했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그대로였다.


핸드폰은 아예 전원 버튼이 눌리지 않았고 컴퓨터는 콘센트를 뽑아도 꺼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꿈이라고 해도 너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생각 같은 건 더이상 할 수 없었다.


핸드폰을 포기해야했다.

내 핸드폰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야 했다.


‘일단 보육원으로 가야 해.’


생각과는 달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팔다리의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고, 의식마저 희미해져 갔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젖 먹던 힘을 다해 교무실을 빠져 나왔다.

계단 난간에 기대에 가까스로 한발 한발 계단을 내려갔다.

하지만 중간에 발목에 힘이 풀리면서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계단을 굴러 떨어졌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려는데 바닥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눈과 코에서 나는 피였다.

얼굴에 흐르는 피를 급히 소매로 닦으며 몸이 이 진동을 더는 견딜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언젠가 유명한 성악가가 목소리만으로 와인잔을 깨는 영상을 본 적 있다.


학교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진동에 의해 죽었을 것이다.

어떤 소리나 음파에 의해 몸 속의 장기가 팽창하면서 다 터져버린 것이다.


나는 교무실과 먼 교실에 있었던 데다,귀가 없는 덕에 운 좋게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이 질문에는 어떤 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짐작가는 것조차 없었다.


삔 다리를 절뚝이며 사력을 다해 간신히 계단을 내려갔다.

중앙 현관으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실내 분수에 흐르는 물은 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였다.

그리고 그곳엔 많은 선생님과 아이들이 머리를 처 박고 고꾸라져 있었다.


팽창하는 장기의 열을 감당하지 못하고 차가운 물에 머리를 담갔다가 그대로 익사한 사체들이었다.

분수는 피로 인해 붉어진 물을 무심히 떨어뜨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지옥의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몸에 남아있던 모든 힘이 다 빠져 나가는 듯 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걸어가면 되는데···’


더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계단 하나를 남겨두고 그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저 멀리 나를 향해 다가오는 무언가가 보였지만,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다.


‘나를 죽이러 온 사람일까, 살리러 온 사람일까...’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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