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레나의 선물

by 사과

얼마나 지났을까.

천천히 주변이 밝아지며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천장에 붙어있는 풍선껌 판박이가 보였다.

솜이 납작해진 낡은 이불의 촉감.

아무리 빨아도 없어지지 않는 이곳만의 퀴퀴하고 익숙한 냄새.

그곳이 어딘지 알아차리자 울컥 눈물이 차오르며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립고 반가운 나의 공간.

내가 눈을 뜬 곳은 보육원에 있는 나의 침대였다.


'역시 꿈이었구나.'

그래, 거지 같은 악몽을 또 꿨던 거다.


끔찍했던 모든 일들이 현실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혹여나 누가 볼까 눈물을 슥슥 닦는데, 손과 옷에 묻은 피가 눈에 들어왔다.


참을 수 없는 구역감이 몰려왔다.

화장실까지 가지도 못하고 근처에 있던 쓰레기통에 모든 것을 게워냈다.


‘꿈이 아니었다고? 그럼 난 어떻게 여기에?’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진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학교에서 정신을 잃은 이후 난 얼마나 잔 걸까.

누가 날 여기에 데려다 놓은 걸까?

답을 알 수 없는 물음표 뿐이었다.


보육원은 학교에 가기 전 그날 그 모습 그대로였다.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는 듯 했다.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다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거울 속 나는 귀를 달고 있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 귀를 만져 보았다.

말랑한 플라스틱 혹은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귀 모형이었다.

살짝 잡아당겨 보았지만, 그것은 진짜 신체 일부처럼 피부에 딱 붙어있었다.


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런 식으론 아니었다.


'누가,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소름이 끼쳤다.


'귀가 있으면 뭐해. 여전히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고요하던 내 세상에 일방적으로 소리가 들이닥쳤다.


[알림 시스템을 시작합니다.

- 상태: 기기 부착 완료

- 사용자: C50HR / 신체 동기화 84%

- 인식된 생존자 수: 1

- 알림: ‘소리 수신 기능’이 처음으로 활성화됩니다.]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깜짝 놀라 귀를 막아 봤지만, 외부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소리···

평생을 갈망해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너무나 무섭고 끔찍했다.


귀 모형을 뜯어내려고 미친 사람처럼 발악해 보았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경고:

기기 제거를 시도할 경우,

자동 방어 장치가 작동합니다.

> 전압: 최대 50,000V

> 의식 마비 및 전신 근육 경련 유발]


아까워 달리 냉랭한 목소리였다.


‘그래. 어디 한번 죽여 봐!’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책상 서랍 속에 있는 커터칼을 꺼내 귀를 자르려고 하는데, 귀쪽에서부터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비명조차 지를 새도 없이 마취총을 맞은 짐승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의지와 상관없이 머리와 몸이 덜덜 떨려왔다.


[경고: C50HR 장치는 사용자에게 부착된

핵심 인터페이스로, 지속적으로 강제 해체를 시도할 경우

‘자폭 모드’로 전환되어 최대 전압이 적용됩니다.]


다시 한번 떨어진 커터칼을 주워 들었다.


'뜯어버려야 해... 없애야 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금세 깊숙하게 자리 잡은 두려움이 나를 멈춰 세웠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MISSION CODE: S-915

임무명: ‘레나의 선물’ 회수

위험도: 하

위치: 보육원 출입구 인근

시간 제한: 59:59

보상: 생존률 +5%, 시스템 정보 일부 해제

경고: 미션 실패 시, 불필요한 생체 자원으로 인식되어 정리 대상에 포함됩니다.]


‘레나의 선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로 방 밖으로 뛰어나가 다른 누군가를 찾아보았지만,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딜 갔을까? 잠시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났을까? 혹시 지훈이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빠르게 고개를 털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지훈이와 같은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복도를 돌아보기로 했다.


보육원에 혼자 있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혼자서만 있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간절히 바래왔는데, 막상 혼자 있으니 무섭고 외로웠다.

모두가 함께 하던 날이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당시엔 북적북적한 환경이 진절머리나게 싫었는데, 지금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알림 이후, 소리는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쓰러진 나를 보육원으로 옮겼다면,

그것도 정확하게 내 침대에 옮겼다면 나를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 체구가 작은 편인 것은 맞지만,

정신을 잃은 나를 끌고 보육원까지 왔다면··· 힘이 센 젊은 남성일 것이다.

아니, 이동수단이 있는 노인이라면? 여러 명의 여자라면?

무수한 가능성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머리만큼 눈도 바쁘게 굴려보았지만, 어떤 방에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오랫동안 비워져 있었던 것처럼 전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잠깐 돌아봤을 뿐인데 숨이 찼다.

몸이 아직 완벽하게 회복된 건 아닌 듯 했다.

숨을 고르기 위해 한쪽 벽에 기대 앉아 쉬고 있는데 영은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미리 주는 생일 선물! 친구들한텐 비밀이야!]

영은 선생님의 장난스러운 윙크까지 생생하게 그려졌다.


'선물...!'

내 사물함은 보육원 바깥 출입구 쪽에 있었다.

햇빛도 비도 그대로 맞는, 실외 사물함.


나와 몇 명의 친구들만 실외 사물함을 썼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기지 못한 운 나쁜 아이들이었다.


사실 나는 그날 제일 먼저 가위바위보에서 이겼다.

하지만 바꿔주었다.


‘장애인끼리 돕고 살아야지.’

필담을 내밀자, 항상 무표정하던 봄이 언니가 피식 웃었다.

봄이 언니는 다리가 불편했다.


지금껏 그 일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다시 그 살갗을 에는 듯한 진동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공포에 마음이 약해졌다.


천천히 복도 끝 출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출입구에 다가갈수록 희미한 피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냄새를 인지한 순간부터 몸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긴장감에 침을 삼키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졌다.

출입구까지 걸어가는 길 자체가 일종의 고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사물함 앞에 섰을 때, 발가락 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몸이 뻣뻣하게 얼어붙었다.

사물함 밑으로 흥건한 피가 고여 있었다.


'사물함에 들어갈 정도라면 강아지나 고양이 아닐까?'

피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걸로 보아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가...


사물함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는데, 눈에 띌 정도로 손이 덜덜 떨렸다.

문을 열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손을 거두고 털썩 주저 앉아버리고만 그 순간,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


찌그러진 콜라캔이었다.

깜짝 놀라 위를 쳐다보았다.


찰나였지만 옥상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가까스로 일어나 옥상을 향해 뛰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올랐다.


그리고 내가 옥상에 도착했을 땐...

아무도 없었다.


“어우어어!!!”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몸을 쓴 탓인지 머리가 핑핑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빨간 노을이 지고 있었다.


끔찍한 상황과 달리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 풍경을 모두가 함께 누렸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떨어졌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약해지면 안 돼.'

흐르는 눈물을 닦고 몸을 일으켰다.


사물함을 확인해야 했다.

사물함 안에 사건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숨겨져 있을 지도 몰랐다.


운이 좋아서든, 나빠서든

어쨌든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 일을 해결해야만 했다.


다시 사물함 앞에 가서 섰다.

아까보다 더 진한 피비린내가 코 끝을 자극했다.


자물쇠가 걸려있긴 했지만 비밀번호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바꿀 수 없는 최초 비밀번호가 자물쇠 밑바닥에 적혀있었으니까.

비밀번호를 돌리자 딸깍 하고 자물쇠가 풀렸다.

자물쇠가 풀리는 묵직한 감촉과 함께 끼이익- 사물함의 문이 열렸다.


질끈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제일 처음 보인 건 찢어진 한장의 종이였다.

커다란 글씨로 ‘내가 누구게?^^’라고 적혀있었다.


천천히 메모를 떼어내고, 뒤에 있던 무언가를 확인한 나는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그리고 멈췄던 사고 회로가 다시 작동했을 때, 나는 네발 짐승처럼 보육원 안쪽으로 필사적으로 기어서 도망쳤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끔찍한 광경에 손바닥과 무릎이 까지는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끔찍한 무언가가 온몸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따뜻한 날씨임에도 소름이 돋았고 오한이 들었다.

사물함 안의 잔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고 헛구역질이 이어졌다.


사물함 안에 있는 건 헤드셋을 낀 영은 선생님의 머리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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