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종서

by 사과

"또각 또각”

바닥과 천장 모두 눈에 걸리는 것없는 깔끔한 회백색의 공간.

흠없이 번쩍거리는 스테인리스 바닥을 울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딱 달라붙는 검은색 바디수트에 빨간 하이힐을 신은 종서였다.


우주복 같은 옷을 껴 입은 수십명의 사람들이 종서를 향해 허리 굽혀 인사했다.

종서는 인사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는 듯, 무심하게 중앙에 있던 원기둥 안으로 들어갔다.


안경을 쓴 중년의 남자가 다가와 기계의 문을 닫고, 그 옆에 있는 버튼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말을 하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실험실은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우우웅-”

침묵을 깬 것은 원통형의 기계였다.


기계 뒤에 달린 모니터로 종서의 신체에 대한 모든 정보들이 빠짐없이 기록되고 있었다.

기계를 조작했던 남자의 눈동자는 빠르게 흘러가는 정보들을 따라잡기 위해 쉴새없이 움직였다.


“삑-“

10분 뒤, 기계가 멈추자 종서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내려왔다.



“생체 파동 정상. 뇌파 동조율 99.96%입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경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그건?”

종서가 남자를 보며 물었다.


"요청주신대로 준비해두긴 했는데, 이게 맞는 건지···”

남자가 곤란하다는 듯 종서의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했다.


“실험 좋아하잖아, 아니야?”

종서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아이, 그게 그래도···”

“그럼 니가 들어갈래?”

종서가 남자의 말을 끊고 물었다.

남자를 바라보는 종서의 눈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아, 아뇨.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잔뜩 겁에 질린 남자는 손사레 치더니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위이이이잉-"

남자가 머리 위에 있던 CCTV를 향해 눈짓을 하자, 실험실 반대편 벽이 갈라졌다.


노인이 사람들의 손에 끌려 들어왔다.

손발이 묶인 채, 입에는 헝겊이 물려 있었다.

“으어, 으어어!”

제대로 된 영양을 챙기지 못한 듯 흰 머리와 수염, 피부가 눈으로 보기에도 퍼석퍼석해 보였다.


종서는 무표정하게 손을 들어 보였다.

노인을 끌고 왔던 사람들이 옆에 있던 방 안으로 노인을 집어 넣었다.


방 안도 밖의 공간과 마찬가지로 바닥과 천장이 전부 스테인리스로 된 무균의 공간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쪽 벽면이 밖에서 방 안을 볼 수 있도록 강화 유리로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노인은 괴성을 지르며 계속해서 자신의 머리를 유리에 박아댔다.


밖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노인이 온힘을 다해 머리를 박을 때도, 미세한 진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귀먹은 노인만큼 좋은 실험체가 어딨어.”

종서가 대답을 강요하듯 남자를 바라보았다.

"마, 맞습니다."

"맞아?”

종서가 표정을 거두고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남자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이었다.

"뭐, 그럼 틀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남자가 종서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으학학학!”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웃음소리였다.

종서는 남자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하여튼 김팀장님 재밌어.”

종서가 남자의 오른쪽 어깨를 툭툭치고 뒤돌아 걸었다.


'미친년···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다니···’

종서의 뒷통수를 보는 남자의 눈빛이 잠깐이지만 살벌하게 번뜩였다.


“자, 그럼··· 시작해.”

종서의 말에 남자를 비롯한 사람들이 노인을 데려왔던 안쪽 방으로 일사분란하게 퇴장했다.

그 실험실에 남아있는 건, 오직 종서 뿐이었다.


문이 닫히기 직전, 남자가 종서를 향해 휴대폰 같은 손바닥만한 기계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현재 실험체의 뇌파는 24Hz로, 큰 긴장 및 불안을 보이고 있으며 감각적 공포를 극대화하기 알맞은 상태입니다. 인간 뇌의 고통 수용 수치를 기준으로 설계된 HB 프로젝트 03번째 실험 10초 뒤에 시작합니다”

종서는 귀찮으니 빨리 꺼지라는 듯 대충 손을 휘휘 저어보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들어간 방의 문이 닫히자,

10

9

8

7···

유리벽에 카운트 다운이 나타났다.


게속해서 벽에 머리를 쳐박던 노인은 모든 걸 체념한 듯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노인의 주름을 타고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안녕~ 잘 가~”

밝은 목소리였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종서가 노인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노인은 귀를 틀어막고 몸을 떨더니 이내 눈, 코, 입, 귀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노인이 자신의 주먹으로 머리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하더니 고통스러운 듯 머리채를 잡아 뽑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유리창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


종서는 놀라지도 않고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다 CCTV를 향해 눈짓할 뿐이었다.


***

얼마 뒤, 우주복을 벗은 남자가 내려왔다.


노인이 쓰러져 있던 바닥이 움직이며 벽에 있던 엘리베이터에 시신을 실었다.

용액에 넣고 동안, 로봇 청소기 네 대가 구역을 나누어 노인의 배설물과 피로 엉망이 된 공간을 치우기 시작했다.

"이게 몇이라고?”

종서가 다시 돌아온 남자를 보며 물었다.

"HB-97입니다.”

"끝이 너무 지저분해. 93은 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하겠지만, 군인이나 경찰 등 특수한 환경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은 고막 파열이나 의식 불명 정도로 그칠 수도 있습니다.”

“그럼 95로 하자. 살아남는 것도 능력이니까.”

종서가 즐겁다는 듯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시작할까요?”

남자가 종서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물었다.


“그 애 생일이 언제였더라? 비슷하게 맞춰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네, 알아보겠습니다.”


‘드디어 끝이다!’

남자가 목례를 하고 뒤돌아 가려는데 종서의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뒷목을 잡아챘다.

남자는 목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종서의 가녀린 팔목에서 초인적인 힘이 뿜어져 나왔다.


“근데 왜 나 그 노인네가 죽어도 별로 느낌이 없지? 뭔가 잘못 됐나?”

그녀의 손아귀가 누군가의 생사를 쥐고 있다기엔 종서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했다.


“아, 닙니다. 그건 대, 부분··· 미, 미 오···”

“미오?”

남자의 목을 쥐고 있던 손이 거짓말처럼 스르륵 풀렸다.

종서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남자는 바닥으로 툭 내던져졌다.

남자는 자신의 뒷목을 잡고 괴로운 듯 기침을 뱉어냈다.


“어머! 미오 완성했어? 맞아. 미오가 있어야 일을 시작할 수 있지?”

종서는 남자의 상태가 어떻든 아랑곳 하지 않고 질문 세례를 쏟아냈다.


“네, 켁켁. 프로토콜, 켁. MIO, 완성헸습니다.”

남자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반듯하게 말했지만, 중간 중간 쏟아지는 기침은 막을 수 없었다.


“얼른 봐봐. 어차피 걔 생일 얼마 안 남았으니까 MIO 상태 쓸만하면 바로 시작하자.”


팀장이 주머니에서 휴대폰 같은 기계를 꺼내 조작했다.


다시 한번 실험실 반대편 벽이 열렸다.

그곳에서 나온 것은 어린아이의 정강이 정도 되는 높이의 작은 기계였다.

그것은 미끄러지듯 조용히 달려 종서의 앞에 우뚝 멈춰섰다.


직경 20cm 정도의 네모난 몸체 앞부분에는 모니터가 달려있었고, 화면에는 [ - - - ] 뿐이었다.

몸체 위로는 모자처럼 CCTV 같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모니터 양쪽으로는 인간의 팔처럼 인형뽑기 기계같은 조악한 장치가 달려있었다.

외관만 보면 특이하게 생긴 아이들 장난감 같은 모양새였다.


“뭐야. 그동안 밤새워 만들었다는 게 고작 이거야?”

종서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기계를 발로 뻥 찼다.

저 멀리 날아간 그것은 벽을 맞고 뒤집혀졌다.

바퀴가 하늘을 향하게 된 기계가 멍청하게 버둥거렸다.


“지금 나랑 장난쳐?”

종서가 남자를 향해 손을 치켜든 순간, 치직치직··· 갑자기 그것의 화면이 깨지듯 지직거리더니 눈 깜짝할 새에 양팔을 이용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집게 안쪽에서 날카롭고 뽀족한 흉기를 꺼내 곧장 종서에게 달려들었다.

인간의 눈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하지만 종서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돌진해 오는 그것을 단숨에 잡아 들었다.


“역시 재밌어. 김팀장.”

남자가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식은 땀을 닦았다.


“가, 감사합니다, 하하··· 360도 촬영과 송출이 가능하고, 지형을 파악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어떤 길이든 지금과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계단도 오르내릴 수 있고 90도 이하의 벽타기도 가능합니다. 총과 예기를 내장하고 있어 이동하면서도 장・단거리 공격이 가능합니다. 명중률은 99.518%입니다.”

“너무 맘에 들어!’’


종서는 로봇을 품에 안아 들었다.


“너는 이제부터 ‘미오'야. 넌 내 일부로 만들어졌으니까··· 미오, 이제부터 나를 위해서만 움직이도록 해. ”

종서가 낮게 중얼이자, 로봇의 전면 카메라에서 붉은 점이 켜졌다.


종서가 천천히 미오의 모니터에 입을 맞추자 화면이 바뀌었다.

[ ^ -^ ]

웃는 얼굴을 한 기계, 미오가 어린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프로토콜 MIO 시스템 시작, 감시 대상: ‘지은’, 임무 생존자 폐기 및 ‘지은’ 상태 보고,

모드: 광각 감시, 자동 추적, 무력 대응, 미오의 작동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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