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에서 맏며느리 되기까지
1화. 단칸방, 그리고 맏며느리의 시작
어머님은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오셨다.
형부의 소개로 만나게 된 아버님은 군인 출신이셨다.
그 시절엔 여자가 혼자 결혼 상대를 고르는 일이 흔치 않았고,
“순하고 말 잘 듣는다”는 말 한마디에
어머님은 한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셨다.
사실 어머님의 이상형은 달랐다.
교직에 계시거나, 하얀 와이셔츠를 매일 다려 입고 출근하는
단정한 회사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연은 그렇게 오지 않았다.
결혼 직후, 두 분은 단둘이 집을 얻어 나왔다.
그곳은 충남 논산 벌곡면,
깡촌이라 불릴 만큼 외지고 고요한 시골이었다.
많은 시댁 식구들과 한집에서 사는 것은 피하고 싶으셨기에
둘만의 시작이 오히려 작지만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아버님, 시어머님, 시동생들까지
모두가 그 집으로 들어왔다.
단칸방 하나에 두 가족의 무게가 포개졌고,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매 끼 식사를 준비하는 하루하루가 시작됐다.
어머님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다시 ‘맏며느리’의 삶으로 들어가셨다.
시아버님은 인자한 분이셨지만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았다고 한다.
아버님은 다혈질에 가까웠고, 고집과 원칙이 분명한 분이었다.
어머님은 한평생 그 뜻을 굽히지 못했다.
그 시절의 결혼은 사랑보다 의무와 책임이 먼저였고,
어머님은 그 모든 것을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견뎌내셨다.
그 시절에는 지울 수 없는 아픔도 있었다.
첫아들을 잃은 일이다.
아직 젊고, 형편도 어려웠던 때였다.
병원은 멀었고, 치료 시기를 놓쳐 결국 아깝게 떠나보내야 했다.
남편에게는 세상에 단 한 명뿐인 형이었다.
“그 형이 살아 있었다면 든든했을 텐데…”
남편은 지금도 그 말을 종종 꺼낸다.
어머님의 시어머님, 즉 남편이 기억하는 ‘할머니’는
작고, 부지런하지 않았으며, 바라는 것만 많은 분이었다.
남편 말로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작은방 이불속에 누워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어머님이 일하러 가기 전 미리 차려놓은 밥을
어린 남편이 상에 올려드리면,
그제야 천천히 일어나 식사를 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눕는 것이 일상이었다.
정이 깊지도, 살림에 부지런하지도 않았지만
먹는 것만큼은 좋아하셨다고 했다.
그런 환경에서 집안 살림과 가족을 돌보는 일은
온전히 어머님의 몫이었다.
그 많은 손길과 수고가 아니었다면
그 집이 어떻게 돌아갔을까 싶다.
겉으로는 “그땐 다 그렇게 살았지” 하며 웃으셨지만,
그 웃음 뒤에는 수없이 삼킨 울음과
말없이 버텨낸 인내가 있었다.
그 시절이 어머님을 만들었다.
부지런하고 깔끔하며, 일의 우선순위를 세우고
정해진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
그 삶이, 이후 어머님의 전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