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사람의 말 없는 삶
2화. 말 없는 사람의 말 없는 삶
어머님은 늘 조용하셨다.
말이 없다는 건, 표현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조용함 안에는 순종이 있었고, 체념이 있었으며,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던 현실이 있었다.
아버님은 밖에서는 인자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셨다.
동네 어른들 앞에서는 온화하게 웃고, 인사도 먼저 건네는 분이었다.
하지만 집 안에서 그 따뜻함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가부장적인 성향이 강했고, 여자의 목소리는 크지 않기를 바라셨다.
집안의 크고 작은 결정은 모두 아버님의 몫이었고,
어머님은 늘 ‘통보’를 받는 입장이셨다.
말투는 짧고 거칠었으며, 성정도 급해 신혼 초 나에게도
“야, 커피 좀 타와라”라는 말을 하셨다.
그 한마디에 담긴 위계와 거리감이 그 시절 우리 집 공기를 설명해 주는 듯했다.
아버님은 건축 일을 하셨다.
날씨가 좋으면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고,
비나 눈이 내리면 한 달 가까이 집에 머물며 답답해하셨다.
그럴 땐 집안의 공기도 무거워졌다.
긴 장마가 이어지면, 어머님의 발걸음과 말소리는 한층 더 줄어들었다.
게다가 아버님은 술을 즐기셨다.
일을 마친 날이면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술자리가 이어졌고,
그렇게 돌아온 밤은 집안 공기를 더욱 가라앉혔다.
어머님은 그 시간이 제일 힘들었다고 하셨다.
믿음의 가정에서, 믿음의 사람에게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슬펐다고.
그 말속에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뒤섞여 있었다.
밖에 나가실 땐 언제나 정장 차림에 단정한 머리.
시장에 어머님과 함께 가셔도 짐은 늘 어머님의 몫이었다.
어린 시절 남편은 그 모습이 싫어
“내가 들게” 하며 어머님의 손에서 무거운 장바구니를 빼앗곤 했다.
아들의 눈에도 그 풍경은 불공평해 보였던 것이다.
아버님은 가족보다 형제들에게 더 마음을 쓰셨다.
어머님이 그 이야기를 꺼내면 대화는 금세 벽에 부딪혔다.
“내가 말해봤자, 벽이랑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 한마디에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오랜 시간, 어머님은 속마음을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했고,
기대어 울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어머님은 늘 아버님께 순종하셨다.
화를 내거나 반기를 드시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조용히,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 침묵 속에는 포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가정을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단단한 책임감,
아내로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시대의 무게,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는 어머님만의 의지가 있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남편은
마음속으로 수백 번 다짐했다고 한다.
“절대 아버지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두지 않겠다.”
그 다짐은 지금까지도 남편 마음 깊이 굳게 자리 잡은 약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