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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복수 Nov 17. 2024

"누구나 그 사람의 일생이 한 편의 드라마야." 황석영

세상 이만한 드라마가 없다.


"사람은 말이야. 누구나 그 사람의 일생이 한 편의 드라마야."


고전 혹은 영화의 엔딩으로 나올법한 이러한 말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소설가 황석영 작가님의 말로 중고등학교 동기동창인 홍승수(책 '코스모스' 번역가)님과 포도주 한잔 하며 나눈 대화 중 일부이라고 한다. 이렇듯 진짜 작가는 입으로도 글을 쓴다.  


엄마는 처음 유방암으로 진단받은 후 입원, 수술, 그리고 항암까지 약 두 달간의 시간을 정신없이 보냈다. 마치 드라마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클라이맥스와 같은 격동의 시간이 두 달 내내 엄마의 인생에 줄기차게 이어진 것이다. '다 잘 될 것이라'라고, '괜찮을 것'이라는 위로와 격려는 수십 번, 수백 번 들었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은 듯했다. 밤늦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때가 많았고 인터넷과 유튜브에 수도 없이 돌아다니는 영상과 자료들에 혹하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나는 병원이라는 곳이, 의사라는 '작자'가 불안한 환자의 마음을 정확하지 않은 수치와 확률로 돈 벌 궁리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에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다.)  


항암을 시작하면서 엄마 몸속 백혈구 수치와 면역기능은 급격하게 나빠졌고, 평소라면 눈에 띄지도 않을 손가락의 작은 상처가 아물지 않고 퉁퉁 부었으며 고름이 찼다. 얼굴은 부기와 빠짐이 반복되면서 엄마의 기분을 롤러코스터 타듯 놀렸고, 잠은 오지 않아 더 많은 생각과 걱정들이 엄마를 괴롭혔으며, 기력이 없어 누워있기만을 반복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 총 4번의 항암 중 2번의 항암이 지나갔고 며칠 전 와이프가 엄마의 머리를 잘라주었다. 정확하게는 밀었다. 손을 잡고 살짝 당기기만 해도 숭덩숭덩 빠져나오는 머리가 위태로웠고 집안 곳곳이 빠져있는 긴 머리가 보일 때마다 엄마는 속이 쓰렸을 것이다. 아들 앞에서는 '항암이 잘 든다는 증거'라며 애써 웃어 보이지만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  


어제는 처제의 6개월 된 두 쌍둥이를 데리고 엄마집을 찾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우연찮게 짝짝이 잘 맞은 3쌍의 커플들은(?) 다음과 같았는데 첫 번째는 늙은 부모님 둘, 두 번째는 중년인 나와 와이프, 마지막으로 보송보송한 남녀 아이 둘이 그것이다. 집을 들어서자마자 "아이고~"로 시작된 이 만남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넘쳤다. 엄마는 하염없이 아프고 나는 걱정이 산처럼 많았지만 힘들었던 삶의 드라마는 "아이고~ " 한마디로 끝나버렸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웃었다. 다른 것은 얼굴 주름뿐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깊은 주름과 나의 고민을 '1'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 낯가림이 심하지 않은 아이들은 늙은 할아버지의 들었다 놓았다 하는 어설픈 손재간에 웃음을 멈추지 못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엄마는 아이들이 귀여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렇게 웃고 있는 엄마를 보는 순간 갑자기 나는 엄마가 너무 예뻐 보였다. 아버지는 아이들과 정신없이 놀고 있었고, 와이프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의 민머리 바로 밑 이마에 진하게 뽀뽀를 했다. 엄마는 순간 너무 놀랐는지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붉어지는 눈시울이 옆에서도 뚜렷이 보였고 나 역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와 나,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고 그 순간이 드라마였다. 


'엄마 황석영 작가님이 그랬데.. 인생은 매일, 지금이 한 편의 드라마고 하이라이트고 절정이야.'


함께 있던 병실에서 고통에 힘들어 누워있는 엄마를 뒤에서 말없이 안을 때, 삭발한 예쁜 데미무어(데미무어는 영화 '지아이제인'에서 삭발을 했는데 마침 얼굴 작은 엄마와 닮았다.)의 이마에 진한 뽀뽀를 남길 때, 맑고 투명한 눈과 솜털 가득한 쌍둥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함께 웃을 때.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이고 드라마이지 않을까? 그렇게 작고 감동적인 스토리들이 하나 둘 모여 추억이 되고 인생이라는 멋진 드라마가 된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소중하다. 세상 이만한 드라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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