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의 시대, 인천을 돌아보다.

인천역 일대를 걸으며

by 윤선





인천역에 볼일이 있어 들린 후,

잠시 이 곳을 여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주차는 상상플랫폼 (주소: 인천광역시 중구 월미로 33)에 했다.

무료인데다 주차 공간도 넓직하다.



과거 이 곳은 항구 옆 거대한 곡식 창고였다고 한다.

이제는 이 곳이 복합문화센터로서 다양한 공연과 전시가 펼쳐지는 곳이 되었다. 기존의 건물을 허물지 않고 지금 필요에 맞게 개조하여 사용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개항박물관 하나였지만,

입장권을 결제할 때 <통합권>에 대한 정보도 듣게 된다.





개항 박물관 양 옆으로 근대건축전시관과 대불 호텔 전시관이 나란히 있는데, 이 곳 모두를 관람할 수 있다는 정보였다.



이왕 온 김에 다 돌아보자 라는 마음으로 통합권을 결제했다.

(성인 3,400원, 청소년 2,300원, 어린이는 무료이다.)






과거 이 곳은 작은 나룻배가 정박해있는 어촌이었다.

외세의 개방 요구에 따라 이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갑문식 데크가 있는 항구로 면모했고,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이 되었다.



(왼) 일본인 조계지 / (오) 중국인 조계지 - 건축 양식이 다르다.


이 시기 세계 여러나라들과 각종 불평등 조약이 체결되는 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조계지다. 조계지는 치외법권의 성격을 지닌다. 즉, 이 곳에서 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것은 우리나라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의 국적지의 법을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초가집과 너른 갯벌이 펼쳐져 있던 이 곳 인천역 인근(제물포)에 외국인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대불 호텔은 그 시기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로 평가되고 있다.

경인선이 놓이기 전, 외국인들은 서울로 한번에 가기에는 거리가 상당했기에 인천으로 들어온 뒤 이 곳에서 숙박을 한 후 서울로 갔다고 한다. 경인선이 개통되고 나서, 숙박객이 현저히 감소했고 그 후에는 중화루라는 식당으로 이용되다가 허물어졌다고 한다.





대불 호텔 3층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피아노가 전시되어 있다.

이문영 교수가 유학 중 뒷바라지로 고생한 아내에게 바친 선물이라고 한다.



그의 회고록에서 자신에 대한 말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어떤 말이 필요할 때,그 한 마디를 용기를 내어 벌벌 떨면서 하는 사람.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민주화 운동의 앞장선 그에게도 자유를 외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었고, 그럼에도 그는 마음 속 소리를 따랐다.





(왼) 인천 내항 / (오) 월미도



과거 지도는 개항 시대 사람들이 살아간 모습을 말해준다.

지옥의 바이킹과 디스코팡팡으로 유명해진 월미도는 과거 작은 섬이었다. 이곳에 방파제를 세우고 내륙 쪽으로 인천항에 갑문식 도크를 만들어 항구의 모습이 갖춰지기까지 지도를 통해 이 곳의 과거를 추론해볼 수 있다.







격변의 시대를 겪었을 이 곳에서도 사람들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짜장면이다.



인천항으로 각종 물자들이 실려오고 이를 나르던 사람들에게는 간단히 먹을 음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화교들이 중국에서 가져온 춘장과 우리식으로 카라멜과 야채를 볶아 면과 비벼 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이 짜장면이 되었다.




면요리의 발상지 답게 차이나타운을 더욱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누들패스라는 것이 눈에 띈다. 이 곳에 있는 다양한 면 요리를 접할 수 있는 즐거운 기회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음번에 왔을 때에는 누들 패스를 이용해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100년 전통의 자부심의 있는 공화춘에서 짜장면을 한 그릇 먹어보기로 했다. 예전에도 남편과 먹었던 기억이 났는데, 특별하게 맛있다는 느낌은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다시 먹어보니 잘게 다져진 양파와 고기, 그리고 다른 곳보다 좀 더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 자장면이었다.






인천역 일대는 인천의 개항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소중한 곳이었다.

잠깐의 시간으로는 이 곳을 전부 즐기기는 어려웠다.



다음에 와서 자유공원에 올라 인천상륙작전의 당시 모습을 떠올리고 차이나타운 골목 골목을 누비다 동인천역 쪽으로 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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