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 인천의 뿌리를 찾아 문학산을 오르다.

by 윤선



문학산 정상 가는 길 @ 나 윤선




무언가

그 지역의 첫 시작이 궁금하다면

나는 그곳의 지명(地名)을 찾아보곤 한다.




이름의 역사를 쫓다보면 이 지역의 과거 모습 뿐만 아니라 이름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까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30년이 넘게 살아온 이 곳 인천,

나는 인천의 옛 이름을 찾아 뿌리부터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고구려, 백제의 건국 신화에 인천이 등장한다.


문학산 하산 길에 만난 백제 건국 신화 @ 나 윤선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이 부여에서 온 아들 유리를 태자로 삼자, 이복 형제였던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를 떠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남하한다. 그 중 형이였던 비류는 미추홀에서 ‘이 곳을 도읍으로 하겠다’고 선포한다. 과거 미추홀은 인천의 문학산 자락을 의미한다.



미추홀(彌鄒忽)
미추는 넓고 평화로운 지역 또는 소금을 의미할 수 있으며, 홀은 성 또는 고을을 뜻하는 고구려,백제식 지명어이다.



그렇게 나는 인천의 뿌리를 찾아 문학산에 올라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문학산 올라가는 길 @ 나 윤선



선학역 3번 출구를 나와 음식특화거리쪽으로 가니 먹자 골목이 펼쳐진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문학산 등산로 근처에서 막걸리에 파전으로 기분을 돋굴 식당들이 많았다.

이 곳은 연수 둘레길의 한 여정이기도 하다. 친절한 표지판 덕분에 미리 사전 조사를 하지 못한 나도 등산로 입구까지 편히 찾아갈 수 있었다.



문학산 등산로 입구 @ 나 윤선



등산로 입구는 이미 하산한 등산객들로 시끌벅쩍했다.

그 틈을 비집고 나는 산행을 시작했다.



문학산 오르는 길 @ 나 윤선




생각보다 내가 산을 너무 만만히 봤나보다.

동네 뒷산의 얕은 산으로 생각했던 문학산은 그런 산이 아니었다.




쭉 펼쳐진 오르막길에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숨은 턱끝까지 차올랐다.

심호흡을 깊게 하며 숨을 고르고 다시 한 발씩 나아간다.

나무 틈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다.



오르막길 나무 계단 @ 나 윤선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나무 계단.

힘들 때에는 그저 내 발만 보고 하나씩 내딛어본다. 그렇게 몇 계단이나 올랐을까.



내가 올라온 계단을 바라보며 @ 나 윤선


너무 힘들때는 잠시 서서 내가 올라온 길을 바라본다.

그저 한 발자국 씩 내딛어 올라왔을 뿐인데,

생각보다 나는 높은 곳에 있었다.




그렇게 오늘 내딛는 한 걸음이 정상으로 가는 나의 시작임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분명 정상으로 갈 수 있음을 한번 더 깨닫는다.

오늘 답사도 그 여정의 시작이 될 것이다.





40분 쯤 흘렀을까.

파란 하늘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나무가지 사이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멋진 화강암 암반이 나를 반긴다.

이 화강암은 비류가 미추홀 왕국을 건국했을 때 천연 성벽으로서 역할을 하였을 것이고, 임진왜란 때는 왜구를 막는 의병들의 결사항쟁의 울타리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시간과 사람만 다를 뿐,

이 암석은 늘 이 자리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 본다. 자연이란 우리에게 그런 존재다.




드디어 정상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철조망과 초소 옆에 <출입제한 안내> 표지판이 눈에 뛴다.



광복 이후 이 곳은 미군의 미사일 기지로 활용되었다가, 미군이 반납한 이후 우리 군이 군사 목적으로 주둔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문학산을 등산하는 시민들은 노적봉이나 연경정 등 둘레길만 걸으며 그저 정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이 곳이 10년 전인 2015년 10월 15일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 나도 정상을 밟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디어 약 한시간 만에 문학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학산 정상에 비로소 올라보니

왜 비류가 이 곳을 도읍으로 정하고자 했는지 알 것만 같다.




인천의 너른 땅과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서쪽으로는 저 멀리 인천대교와 영종도부터 시작해 북쪽으로는 계양산과 부평 일대, 남쪽으로는 학익동과 송도국제도시까지 훤히 보인다.

저멀리 북한산 자락도 조금 보였다.




문학산이라는 이름은 문학산을 둘러싼 여러 산과 봉우리의 모습이 마치 커다란 두루미가 날개를 편 듯한 모습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탁 트이는 조망에 내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비류는 이 곳에 왜 나라를 세우려고 했을까?




앞으로 해상무역이 활발히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측이라도 했던 걸까?

넓은 서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꿈을 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린 어려움은 바다로부터 부는 습한 공기와 짠 물로 인해 농사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가 세우려던 미추홀 왕국은 훗날 백제로 흡수 통합되었지만, 지금 이 곳은 인구 300만이 넘는 인천광역시로 성장했다.

비록 역사는 인천에 도읍을 세운 비류를 백성이 원망했다고 말할지라도, 결국 비류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음을 추측해본다.




이제 다시 하산을 해본다.

내려갈 때에는 문학 산성을 둘러 가보고 싶었으나 길을 잘못 든 듯 하다.

찻길을 따라 너무 한참을 내려갔을까.





덕분에 삼호현 고개를 보았다.

이 곳은 과거 인천 읍내에서 송도로 넘어가는 문학산 자락이었다.

아버지가 중국으로 가는 사신으로 배를 타고 떠날 때 가족들은 이 곳까지와서 배웅했다고 한다.

그렇게 남겨진 가족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이별하는 고개라고 하여 삼호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남겨진 가족을 뒤로 한 채 멀리 떠나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지금은 그저 평범해보이는 이 길이 이 사연을 듣고 나니 조금 서글퍼진다.





길을 잘못 든 덕분에 송도 넘어갈 때 늘 지나던 선학 터널을 위에서 볼 수 있었다.



한산한 등산길,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누군가가 걸어갔던 흔적을 따라 나도 따라가본다.





그렇게 한참을 따라 내려가니 함박 마을 장미 정원이 나왔다.

더운 여름을 보내느라 장미꽃은 저버렸지만, 예쁜 꽃나무가 나를 반겨준다.

덕분에 파란 하늘과 예쁜 꽃을 보며 하산할 수 있었다.






인천 역사의 태동지 문학산에서 선조들의 마음을 읽어보았다.

그저 책으로만 보았다면 왜 비류가 이 곳을 도읍으로 정했는지 머리로만 알았을 것이다.

땀을 흘려 정상에 오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렇게 앞으로 내가 사랑하는 인천을 알아가기 위해 한 걸음 씩 내딛겠다고 약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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