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 시작하는 여행
나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처음으로 처음으로 추구한 것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핀트가 어긋난 불편한 감정을 느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멀쩡히 살아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나는 이해하기 힘든 이 현상이 너무 신기했고, 그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언제 웃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눈치와 예의라 여기고, 무리를 이뤄가는지. 그러다가 곧 벽에 부딪쳤다. 나와 친한 내 주변의 관찰대상은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이들만 분석한다면 내가 꺼려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두 번째로 추구한 것은 '중간점'을 찾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이해하고, 나만의 가치관을 확립해 나가기 위해서는, 양 극단의 일을 경험하고 중간의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느꼈다. 이를 위한 노력으로, 극도로 내성적이고 내향적이었던 나는 술자리와 동아리에 나가기 시작했다. 술자리에서 박수를 받는 행동들을 보고 기억했다. 웃음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의 특징을 모방했다. 무리의 장을 맡은 사람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새겨들었다. 나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닮으려 노력한 것이다. 덕분에 피상적인 데이터는 많이 쌓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을 이해하는 건 어려웠다. 나와 대척점에 있는 이들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은, "어떻게 저러지?"였다. 나라면 절대 하지 못할 말과 행동들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대체 무슨 생각과 마음을 품고 있는 거지? 그때의 나는 차마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느냐"같은 말을 할 수 없어서, 혼자 끙끙 앓으며 그들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했다.
이러한 생활이 몇 년간 계속되다 보니, 나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고장 난 기계가 폭주하는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작은 표정, 말과 행동에서도 병적으로 마음을 읽게 되었다. 상상을 멈추려 해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실제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대를 판단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이런 무질서한 나에 대한 반발심도 들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여러 가지 환멸과 부담 속에서, 나라는 기계는 망가졌다.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중략)
저에겐 '인간이 목숨을 부지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지금까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마다 몸을 뒤척이고 신음하고, 거의 미쳐버릴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중략)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내가 망가진 때의 모습은, 『인간실격』의 주인공인 요조와 닮아있었다. 『인간실격』의 초반은 주인공 요조의 어린 시절과, 주인공이 주변을 보며 겪은 어려움을 서술하고 있다. 그는 배고픔같이 현실적, 실용적인 점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차이점에서 오는 인지적인 문제에서 가장 큰 고통을 느꼈다. 그러다 우연히,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걸 본 그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광대'로 살길 결심하게 된다. 그 결과 누구나 그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는 속마음과 상관없이 그저 웃었다. 뼈저리게 인간을 불신하면서, 인간과 어울리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최후의 구애활동으로 광대짓을 한 것이다.
『인간실격』에 관한 사람들의 평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누군가는 과하게 우울하기만 한 어떤 개인의 신기한 이야기로 치부하고, 누군가는 공감하며 읽는다. 나는 이 책을 독서모임에서 처음 접했는데, 전자의 반응이 다수였다. 이처럼 내가 정신적으로 무너지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특별한 사건도 없이, 혼자서 망상하다가 무너진다고? 그거 그냥 유리멘탈에 정신병 아님? 당시에 검진을 받지 않아 정신병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자가 진단을 하기로는 대인기피증이 확실해 보였다.
다행히 시간이 차차 흐르며 마음이 차차 회복되었다. 내 마음은 본래 물이 담긴 패트리 접시였는데, 깨지고 난 뒤로는 한데 버무려져 슬라임 같은 재질로 바뀌었다. 좀 더 여유와 융통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내가 망가진 기간은, 다르게 말하면 회복기라고도 할 수 있다. 본래 관심이 내부로 향하던 나인데, 외부에 신경을 너무 많이 쏟으니 내부를 잘 다스리지 못했던 것이다. 회복기 동안에 나는 그동안 쌓은 경험을 소화하고 나를 다스리는데 집중했다.
"어떻게 저러지?"라는 질문의 답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내 기준에서 거침없는 행동을 해 나갈 때, 행동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의문을 많이 품었는데, 답은 별게 아니었다. '그냥' 그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니야 그냥으로 끝날 리 없어, 무언가 깊은 뜻을 가지고 있을 거야'라고 생각해왔지만, 정말 답은 '그냥'이었다. 그들은 나만큼 예민하게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지 않거나,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성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거나, 혹은 의심이 아닌 확신으로 행동에 옮겨왔다. 그리고 이 모든 건 '그냥'으로 표현되었다.
자존감을 회복한 나는, 이제 나를 찾기 위해 가벼워지기로 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과한 집착을 버리기 위해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울함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도 연습했다. 의식적으로 생각을 돌리는 연습도 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친구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려 노력했다. 그러자 무의식적으로 남을 판단하던 생각도 줄어들기 시작했고, 조금은 남들의 시선에서 덤덤할 수 있었다.
또한 나와 삶 속의 인지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균형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워라밸'이란 말이 등장한 것처럼 말이다. MBTI로 치자면, INFJ-T에서 INFJ-A로 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용기는 기도를 마친 두려움이다.
- 도로시 버나드
나는 종교를 믿지는 않기에, 여기서의 기도는 온전히 나를 향한 기도다. 지난날,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들로 얼마나 깨지고 부서졌던가. 나는 여러 차례 마음의 깊은 밑바닥을 밟고 올라오면서, 점차 못난 나까지 끌어안을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 용기를 바탕으로 '나로부터 시작하는 여행' 계획을 세워본다. '나에게로 시작하는 여행'이 외부에 먼저 관심을 둔 뒤 나로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이라면, '나를 위한 여행'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나로부터 시작하는 여행'을 떠나려 한다. 나를 먼저 챙기고 외부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으로, 점차 나에 대한 부정을 줄이고 있다. 사람에 따라 보여주는 모습은 다르지만, 소극적인 것도, 진지한 것도, 엉뚱한 것도, 변덕스러운 것도, 차분한 것도, 아이 같은 것도 모두 나의 모습이고 '나'다. 내가 꾸며낼 수 있는 모습이라면 그것도 나이고, 내가 편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모습도 모두 '나'다. 나와 남의 관심이 다르다고 해서, 서로가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각자의 분야와 전문성이 다를 뿐.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잘 파악할 수 없는 나의 모습에 책임감을 가지길 꺼려한 듯하다. 내가 그런 심한 말을 하다니, 내 잘못이야. 이건 나보다 그 사람의 말이 더 맞는 게 아닐까? 내가 잘못 행동했어. 나는 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대할 수 없을까? 나는 이중적이야 등.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나를 적대하고 무시했으니 나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런 모든 감정도 내가 나이기에 느끼는 것이고, 내 감정이니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을.
이번 주제는 지금까지 다룬 이야기 중 가장 난이도가 높았다. 자고 일어나며 이어서 쓰고, 몇 번이나 수정하길 반복했다. 단순히 그저 나를 토해내는 건 쉬운 일이지만, 남들이 읽을 것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글을 정제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한 편의 짧은 글에 담기에는 나를 모두 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표현하고 싶은 주제에 맞는 이야기만 담게 되었는데, 글에 실린 일부로 나는 어떻게 평가받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특히 나는 주변 몇몇 친한 친구들에게만 브런치 링크를 공유했는데, 가까운 곳에서 나를 보는 그들은 이 글을 어떻게 읽을지 매우 궁금하다. 댓글이라도 달아주면 좋을 텐데! 매정한 녀석들. 누군가 나를 완전히 이해해주길 바라면서도 친근한 누군가에게 속마음까지 밝혀지기는 여전히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도 내 곁에 함께해주는 친구들과,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들은, 조금이나마 이 글에 관심을 가지셨으리라 생각이 든다. 혹은 노력으로 읽어주셨거나. 내가 아닌 남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신 모두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