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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닭 Nov 05. 2022

라곰

평범함을 위한 투쟁



 스웨덴어로 ‘적당한’, ‘충분한’, ‘딱 알맞은’과 같이 ‘균형’을 뜻하는 말로,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과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삶의 경향이다. 이는 8~11세기 바이킹(Viking) 시대 때부터 현재까지 스웨덴에서 중시되는 덕목으로, ‘팀을 둘러싼(around the team)’을 뜻하는 말인 ‘라게트 옴(Laget om)’에서 유래하였다.

 라곰은 야심 찬 계획보다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삶의 작은 성취를 축하하며, 나를 아끼고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을 중시한다. 또한, 이러한 균형 잡힌 삶을 통해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적당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느끼고, 자신을 둘러싼 지역 사회, 환경과 조화롭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편, 라곰은 동양철학에서의 '중용(中庸)'에 빗대어지기도 하는데, '중용'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가리킨다. 또 프랑스의 ‘오캄(au calme)’, 덴마크의 ‘휘게(hygge)’ 일본의 ‘소확행(小確幸)’ 등도 비슷한 맥락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라곰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라곰 



  "저는 요새 살아있단 걸 느껴요. 은행잎이 머리 위로 떨어질 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분들과 함께 할 때, 운동을 하며 달라지는 몸을 볼 때. 세상의 부정적인 면 보다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고 노력하니,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껴요. 부장님은 언제 살아있단 걸 느끼세요?

  "언제 살아있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하기 쉽지 않아. 어떤 획을 그어서 설명하는 건 힘들어. 나는 흐르는 물처럼 흘려보내고 붙잡지 않기 때문에 한 부분을 짚어서 답하긴 힘들지. 열정이 있고 감정적으로 집중하면 그 기억이 오래가지만, 나는 흘려보내기 때문에 언제냐고 물으면 답하기 힘들어"



  며칠 전 부장님과 1:1 회식 자리를 가졌다. 나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시고 아껴주셔서 흔쾌히 참석한 자리였다. 일 얘기를 떠나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던 중 대화가 '삶의 방식'에 닿았다. 나는 최근 긍정적으로 살자고 다짐하며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와중에 느낀 점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부장님께서는 언제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끼시는지 궁금해졌다. 이전 글인, '행복함'에서 느낀 것처럼, 이 질문도 어른들께 실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걱정은 했지만, 부장님께서는 부정적인 반응 대신 당신의 삶의 방식을 말씀해주셨다.

  나는 부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두 가지 말을 떠올릴 수 있었는데, 첫 번째는 상선약수(水)다. 중국의 사상가인 노자의 말로,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이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자연스러운 물처럼 사는 것이 최고다!'라고 줄일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 윤리과목을 공부하던 시절에 이 단어를 처음 접했고,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과도 닮아 있었기에 부장님의 말씀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최근에 알게 된 라곰(Lagom)이란 말도 떠올랐다. 글의 머리에 설명한 것처럼, 적당하고 알맞게,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것이 스웨덴에서 유래된 라곰 정신이다. 무언가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중시하며 조화롭게 사는 것이 상선약수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껴졌다.

  상선약수는 삶이 고달플 때 목표로 잡았던 삶의 방식이었고, 라곰의 방식은 내가 어릴 적부터 가져왔던 삶의 방식이었다. 새삼 어릴 적의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평범한 삶 



  기억나기로는 초등학교 2학년 시절, 나는 라곰의 삶을 살고 싶어 했다. 물론 그때는 '라곰'이라는 표현을 알지 못했고, 막연하게 '평범하게'살고 싶어 했다. 미래에 대한 모습을 그려야 하는 활동이 있으면 꼭 빠지지 않고 평범함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듯하다. 나는 그저 나의 작은 일상이 이대로 유지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무언가 특별한 변화가 있길 바라지 않았다. 익숙한 학교 속에서 낯익은 친구와 선생님들과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것이 나에겐 평범한 것이었다. 더 무언가 특별한 것을 바라지도 않았고, 잃고 싶지도 않았다.

  커가면서도 평범함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막연했던 '평범'은 현실적인 계산 속에서 재정립되었다. 내가 느긋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떤 경제적 기반이 마련이 되어야 하는지, 나는 그 경제적 기반을 이룰 수 있는지 따져보게 되었다. 일상이 유지되는 평범함을 누리기 위해선, 평범 그 이상으로 비범해야 했다. 현대 사회는 경쟁사회였으니까.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맞을까? 고민도 잠시.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으면 미래의 행복조차 불투명해질 것이었다.

  인고의 시간이 흘러, 다행히 지금은 떳떳한 직장을 가지게 되었고, 어느 정도의 평범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우와 소리 들을 정도로 잘 벌지는 않아도, 당장 내일 잘 곳을 걱정하지는 않으니 만족스럽다. 이제는 삶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평범한 삶'이란 표현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나에게 평범한 삶을 주는, 나를 라곰 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나를 라곰 하게 만드는 것?



  '어벤져스'라는 히어로 영화에서는 타노스라는 빌런이 등장한다. 이 빌런이 라곰(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한 행동은 꽤나 과격하다. 타노스의 고향은 부족한 자원에 비해 많은 인구의 증가로 멸망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우주의 평화를 위해 우주의 생명체를 절반으로 줄이려 한다. 이를 저지하려는 히어로들과의 승부가 어벤져스의 주된 내용이다. 타노스의 라곰은 우주의 균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행히 나는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대의를 라곰으로 여기진 않고, 그럴 능력도 없다. 나의 라곰은 나와 주변의 좁은 범위에 치중되어 있다. 나를 라곰 하게 만드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나'는 내가 평범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같은 당연한 말이 아니라, 내가 혼자서 설 수 없으면 결국 정신적으로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을 때 평범함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나는 독립보다는 자립을 추구한다. 내게 '독립'이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버티는 느낌을 준다면, '자립'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몸을 일으켜 세우는 느낌을 준다. 몸을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은 나 자신만의 노력일 수도, 남의 어깨를 잡고 일어나는 노력일 수도 있다. 따뜻한 공동체를 느끼며 도움까지 요청할 수 있는 '자립'이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 일상을 유지하는 매우 큰 부분이다. 나는 '가족애', '친한 사람과의 이별'이 큰 눈물 포인트다. 어릴 적부터 '왁스 - 황혼의 문턱', '싸이 - 아버지'를 들으며 매번 눈물을 흘렸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연인과의 이별, 부모님의 나이 들어감에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일상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주변인들이 정말 소중하고 필요하다.

  경제적 자립은,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요소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마음껏 추구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기반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현실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다르게 생각하면, 현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게 만드는 경각심을 주니, 그 자체로 긍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적당히 워라밸이 보장되는 경제적인 안전망이 갖추어져야만 나는 라곰할 수 있다.



라곰을 위한 노력



  행복한 순간에 머무르고 싶어도, 시간은 흘러가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변해간다. 물에 편안히 떠 있는 새들처럼 우아할 수 없는 나는, 평범한, 라곰한 삶을 살기 위해 끊임 없이 허우적거려야 한다. (백조가 물에 뜨기 위해 수면 아래로 열심히 물장구 친다는 표현은 거짓이라고 한다.) 익숙한 것들이 멀어지는 것은 진한 아쉬움을 주지만, 나는 아쉬움에 매몰되어 슬퍼하고 미련을 가지기보다 다른 방향으로 노력하겠다.

  그때의 현재에 충실할 것. 같은 사건을 겪더라도,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내가 가질 느낌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재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나를 사랑해주시는 부모님과, 나를 아껴주는 친구와, 나를 믿는 나에게 더 집중하여 가슴 깊이 새겨두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미래에 다가올 슬픔도 예견하여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확정된 결과인 친한 이들과의 이별에 미리 슬퍼하지는 말자. 너무 슬플 테지만 그로 인해 나까지 무너져서는 안 될 것이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거대한 슬픔이 다가오더라도, 자립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미리 세워두자.


  평범하기 위해선 평범을 벗어나야 하고

  안주하고 싶다면 안주해서는 안된다.

  라곰, 평범을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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