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워!
동글동글하고 몽실몽실한 것들. 아기자기 알록달록, 순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에는 귀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통통한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옹알이하는 아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이불에 털을 비비는 새끼 고양이 등이 나오는 영상에는 몸서리치는 귀여움을 표현하는 격한 댓글들이 한가득이다. 나 역시도 이런 사랑스러움 들을 눈에 담았을 때, 정말 귀엽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조심하는 게 있다. 사람들, 특히 말을 알아듣는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너 정말 귀엽구나'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으려 한다.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귀여움의 함정
내가 대화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몇 가지 표현들이 있다. 착하다, 순수하다, 귀엽다 등인데, 나에게 이 단어들은 권력관계를 포함한 단어로 느껴진다. "너 정말 귀엽구나"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이 말은, 말하는 사람이 듣는 상대보다 높은 위치에서 칭찬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마치 자신은 더 많은 경험을 겪고 아는 것이 많기에, 어리숙한 행동을 하는 당신을 아이처럼 여기며 귀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한테 '귀엽다'라고 말하는 걸 꺼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아이의 외모, 말, 행동 등의 외형적 특징이 정말로 귀엽게 느껴질 순 있다. 그러나 귀엽다고 말하는 순간, 단순히 눈에 보이는 외형적 특징을 바탕으로 상대와의 격차와 상대의 성격을 규정하게 된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어떤 아이가 나에게 '귀엽다'라는 말을 하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역시 나는 아이에게도 인정받는 귀여운 사람이야!'라며 순수하게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은연중에 자신도 '귀엽다'라는 말에 내포된 권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귀엽다'라는 말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보호본능을 자극하고, 깨물어주고 싶은 그 특징들을 '귀여움'이라고 정의했을 뿐이니 단어에는 잘못이 없다. 문제는 표현이다.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과, '귀엽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공언된 말은 나만의 생각을 넘어 상대방의 마음과 분위기까지 자극하기 때문이다. 내가 '귀엽다'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이유다.
귀여움의 기적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 생길지 모른다. '엥? 나는 서로 귀엽다는 말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데?'
나는 '귀엽다'는 표현이 사용되는 경우를 정리하다, 놀라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귀엽다는 표현이, 권력관계를 떠나서 온전히 사랑스러움만 전달될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한 것이다. 대화 속 관계가 서로 동등한 관계일 때, 귀여움은 온전한 의미로 전달되었다.
여기서 말한 동등한 관계는, 상대의 진심을 곡해하지 않는 관계를 말한다. 절친한 친구 사이나, 서로 아껴주는 연인관계가 그 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귀엽지 않은 상대에게 굳이 귀엽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상대가 귀엽게 느껴질 때, 사랑스러움과 애정을 주체할 수 없어 '귀엽다'라고 말하게 된다. 마치 마음속 침전물이 가라앉고 남은 맑은 윗물만 넘쳐흐르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이 귀여워 보이면 답도 없다'는 말도 위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극한의 콩깍지가 귀여움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동등하지 못한 관계, 즉 상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심리적 거리감과 서열 관계를 느끼는 관계에서는 귀엽다는 말이 나오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귀여움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관계는 심리적으로 동등한 관계, 즉 편안한 관계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단어가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다니! 동등한 관계란 건 정말 기적처럼 느껴진다.
마무리하며
나에게 귀여움은 오해받기 쉬운 권력을 내포한 단어지만, 동등한 신뢰 관계를 나타내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는, 예민한 표현이기도 하겠다.
위에서 소개하지 못한 귀여움을 말하는 상황도 있었다. 소개팅을 해준다는 친구의 말에 사진을 먼저 봤더니, "음... 귀여운 분이시네"라고 말하는 것처럼, 무안함을 가리기 위해 말하는 귀여움은 예외다. 단어 본래의 의미를 크게 벗어나 예의상 사용된 말이기에 깊게 다루지 않았다.
단어 본래의 의미가 곡해되지 않는 사이에서 "귀엽다"라고 말한 경험을 떠올려본다. 기질적으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타고나서 그럴까, 많은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앞으로는,
서로 망설임 없이 귀엽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를 더욱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