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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닭 Jul 13. 2024

빛나다

사실, 어슴푸레해도 좋다.

찬란했던 


 여러 대학의 학과를 소개해주는 웹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의 학과가 소개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영상을 재생했다. 큰돈을 벌기는 힘든 학과이기에, 더욱 보람과 의미를 쫓아 전공을 선택한 청춘들이 저마다의 생기를 드러낸다. 화면 속 비친 후배들의 눈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빛나는 게, 나는 미웠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나는 찬란하게 빛났다. 갖고 싶은 직업이자 꿈을 향해 순전한 열정으로 도전했고, 그 과정이 너무나 즐거웠다. 내가 가질 직업이 펼쳐낼 긍정적 영향력에 심취해서 그에 맞는 역량을 기르고자 다양한 활동을 하며 준비했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 내가 꿈꾸던 미래는 나의 일상이 되었다. 결실의 순간이다.

 그러나 강한 빛은 눈을 멀게 한다. 오늘도 나는, 어릴적의 내가 매일 꿈꿨던 곳으로 출근하지만,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한다. 보람과 의미에 눈이 멀었던 나는 현실을 보지 못했고, 지금의 나는 매일 격무에 시달리며 빛이 바래간다. 그러다 찌든 피곤함에 고개를 돌리다 동료와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자연히 실소를 흘리게 된다. 말 없이도 마음이 통했음을 느낀다. 이 직장의 못난 점을 공유하며 깔깔대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숙연해진다. 나는 왜 내 꿈을 비웃으며 오락거리 삼고 있는가.

 답은 간단했다. 어릴 적 꿈꾸었던 내 꿈이, 그저 '꿈'에만 불과 하단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열정과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고, 남은 대분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는 나를 갈아 넣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큰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이런 고민으로 생긴 불편함은 갈 곳을 잃어, 죄 없는 꿈을 욕하게 됐다. 돌아봐야 할 건 나인데 말이다. 



얼룩덜룩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었다. 꿈을 이룬 것이 아니라 꿈에 잡아먹혔다고 생각한 것이다. 직장이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도 아닌데, 나의 불행을 직장 탓으로 돌리며 세뇌했다. 이 직장에는 답이 없으니 다른 살길을 찾자, 내가 처한 현실이 너무 불합리하다, 이런 사람들과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겠느냐, 짜증내서 미안한데 일이 너무 힘들었다 등. 현실의 때와, 스스로 만든 자책으로 나의 빛깔은 얼룩덜룩해지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자. 아직 늦지 않았다. 때를 닦아낼 시간이다.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이란 속담이 있다. 모든 구름은 은색 테두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구름이 해를 가리더라도, 구름의 가장자리로 스며 나오는 햇빛이 있다는 것이다. 구름에 구애받지 않고 해는 여전히 빛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명 깊었다. 나 또한 그렇다. 현실과 자책의 때가 나의 빛나는 모습을 가릴지라도 나 자신은 빛나고 있다. 때를 뚫고 나오는 얼룩덜룩한 빛은 진정한 나의 빛이 아니다. 일과 삶을 분리하고 나의 루틴을 유지하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편안하게 즐기자. 고생 끝에 낙이 온단걸 믿으며 지금의 고통을 즐겁게 받아들이자. 정신 개조 프로젝트 시작이다.

 동시에 별난 행동도 시작했다. 힘들고 괴로운 마음이 들 때, "행복해", "신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얄팍한 믿음에서 기인한 행동이었다. '사람의 뇌는 멍청해서 슬플 때 웃으면 진짜로 기분이 좋아진다더라'라는 믿음이었다. 힘들 때 행복하다고 말하면 정말 행복해지겠지! 정말로 나는 괴로움을 잊고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찬란하게 빛날 내가 눈에 잡힐 듯 아른거렸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슴푸레하길


 그러나 곧 "행복하다"라고 속이는 것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주문을 외듯이 "행복하다"라고 아무리 중얼거려도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그러다 한 번은 정말 행복한 순간이 있어서 "행복해"라고 말했는데, 말하자마자 굉장히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표현한 행복함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고, 감정 장치가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렸다.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막연하게 '나는 행복하다'고 속여왔기에, 나를 스쳐 지나간 작은 행복들도 놓쳤을 것이 분명했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나를 어떻게 가꿔야 할지 방향을 찾기 힘들었다.

 나를 속여오면서 나도 모르게 쌓여온 정신적 피로는, 최근에 개봉한 영화 '인사이드 아웃 2'(2024)를 보며 터졌다.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는 인간의 여러 감정을 캐릭터화했다. 기쁨을 형상화한 '기쁨이'라는 캐릭터도 있는데, 나는 이 캐릭터가 1편(2015)부터 싫었다. 나에게 '기쁨'이란 감정은 낯설고 먼데, 이 캐릭터는 조증에 걸린 듯 맹목적인 긍정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편에서 기쁨이는 달라졌다. 한결 성숙한 모습을 보였으며, 자신의 힘듦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특히 다른 인물들에게 정신적으로 압박받던 상황에서, 기쁨이는 이렇게 외쳤다. "그래, 나 제정신 아니다. 늘 긍정적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제야 내가 '무조건 괜찮아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살면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고통의 원인을 모두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겼고, 어떻게든 바로 고쳐 긍정적인 나를 만들고자 했다. 살면서 느끼는 정신적인 피로가 내가 성장하는 중에 겪는 성장통이라 생각했지만, 고통에서 느낀 슬픔과 괴로움을 무시해서는 안되었다. 구름 뒤에 가려진 게 의심할 여지없이 찬란한 태양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집착이었다.

  긍정 과잉, 긍정 오남용, 긍정 집착의 늪에서 빠져나와 불안함을 돌볼 시간이 왔다. 억지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남은 전력을 쥐어 짜내어 점멸하듯 행복하기보다, 어슴푸레해도 좋으니 한결같이 평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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