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다섯살,원초적 불안과 공포의 기원

INFJ 할머니의 일상과 추억이야기

by 사각달
아빠가 처음 지으신 집 부엌에서 일 하고 계시는 엄마와 예쁜 옷 입고 기분 좋아서 웃고 있는 나.


이 그림은 다섯 살 적에 부엌 뒷문에 붙어 서서 엄마가 밥 하고 있는 걸 보고 있는 나를 놓치지 않고 아빠가 찍어준 사진을 그린 것이다.


어렸을 적 나는 정말로 조심성 많은 아이였다고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 마루에서 부엌으로 떨어질까 봐 뒤로 살금살금 한 발부터 조심해서 내려왔었지.."


" 곤로에 손 델까 봐 한 번도 만진 적이 없었단다"

(곤로: 1970년대식 가스레인지라고 얘기하면 알려나..?)


엄마는 그런 나를 조심성 많고 똑똑하다고 생각하셨지만, 사실 그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생성돼서 지금까지 갖고 사는 불안감과 공포심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게 맞다.


내 기억으로 다섯 살쯤 되었던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가 안 보였다.

'엄마 어디 있지..?'


일어나서 엄마를 찾아 나섰다. 하필 밖에서 초인종이 울려 엄마인 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그 앞에 서 있던 건 엄마가 아니라 동냥 그릇을 들고 망태기를 메고 히죽히죽 웃고 서 있던 꾀죄죄한 남자들 세 명이었다..


0.1초 만에 문을 닫고 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이불을 쓰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두근 거림과

더불어 그 남자들이 왠지 대문을 기어코 따고 들어올 것 같다는 느낌에 죽을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 정말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마 그게 내가 느낀 최초의 '공포'와 '불안'인 것 같다.

그날 이후부터 엄마랑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엄마 따개비 병'이 걸려 버렸다.


엄마가 가는 곳이면 어디라도 따라다녔다. 새벽에 엄마가 일어나면 나도 따라 일어났고, 밥 하려고 부엌에 가시면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서 엄마가 밥 하는 걸 보고 있었다. 당시엔 화장실이 바깥에 있었는데, 아무리 추워도 화장실 밖에서 동동거리고 서서 엄마를 기다렸다. 심지어 엄마는 나 때문에 문을 열어놓고 볼 일을 보셨다. 엄마 없어졌다고 문 밖에서 목 놓아 우는 다섯 살배기 딸년 때문에 세상 수치스러운 일을 겪으신 거지..ㅠㅠ


나의 엄마 따개비 병이 극에 달한 어느 날,

정확히 무엇이 원인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옆에 있는 바지를 집어서 내게 던졌는데, 하필 멜빵바지 고리가 내 눈 근처에 맞아 피가 난 거였다..

그 순간 엄마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는 것 같다.

엄마는 나를 안고 아이처럼 엉엉 우셨다.


"엄마가 미안해.. 어떡해.. 엉엉"


상처는 금방 아물었고, 우습게도 그날 이후로 내 병이 고쳐졌다. 더 이상은 엄마를 따라다니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별 일 아닌 것도 걱정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미리 고민하고 혼자 결과까지 예상하는 더 나쁜 병에 걸려 버렸다. 이건 불치병.. 아직까지도 진행 중인.. 흠냐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