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김상무) 조직: 다시 시작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

by 이부장

개발동 복도는 평소보다 조용했다.


출근 시간은 이미 지났지만 자리에는 빈 의자가 몇 개 보였다. 누군가는 커피를 들고 천천히 들어왔고, 누군가는 아직 메신저도 켜지 않은 채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팀 분위기는 한동안 이런 식이었다.


프로젝트 일정은 계속 밀렸고, 고객사의 요구는 점점 까다로워졌고, 팀원들은 지쳐 있었다.


“어차피 또 안 될 텐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날 오전, 사내 공지 메일 하나가 올라왔다.


개발본부 담당 임원이 새로 온다는 내용이었다.

이름은 김상무.


다른 사업부에서 성과를 냈다는 이야기가 붙어 있었지만, 팀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또 임원 하나 오는 거네.”


박과장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이번엔 얼마나 버티려나.”


임대리가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나사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뭔가 바뀌지 않을까요?”


박과장이 피식 웃었다.

“여기 와서 바꾸는 사람 아직 못 봤어.”


그날 오후.


김상무가 개발팀 회의실에 처음 들어왔다.

생각보다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회의실을 천천히 둘러보고 자리에 앉았다.

“요즘 팀 상황은 대충 들었습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김상무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복잡한 이야기 안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내일부터 아침 9시 정각에 전원 출근입니다.”


회의실 공기가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매일 아침 9시 10분에 10분 미팅 합니다.”


박과장이 눈썹을 찡그렸다.

임대리가 메모하던 펜을 멈췄다.


김상무는 말을 계속했다.


“각자 오늘 할 일 한 줄씩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끝입니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나사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전부입니까?”


김상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 그것부터 하겠습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불만이 터져 나왔다.


복도에서 박과장이 말했다.

“아니 요즘 시대에 출근시간 단속이야?”


임대리가 낮게 웃었다.

“아침 미팅도 매일이라는데요.”

“우린 이미 바쁜데…”


나사원은 말을 아꼈다.


다음 날.


8시 58분.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김상무가 복도를 지나가며 시계를 봤다.


9시 정각.

회의실 문이 닫혔다.


박과장은 간신히 들어왔다.


김상무가 아무 말 없이 시계를 한번 보고 말했다.

“시작하죠.”


회의는 정말 10분이었다.


“오늘 할 일 한 줄씩.”


이부장이 먼저 말했다.

“고객사 장애 이슈 확인하고 대응 방향 정리하겠습니다.”


박과장.

“배포 준비 마무리합니다.”


임대리.

“테스트 케이스 정리합니다.”


나사원.

“로그 분석해서 문제 재현해보겠습니다.”


9시 20분.

회의는 끝났다.


김상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일도 같은 시간입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처음엔 다들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변화가 생겼다.


출근 시간이 조금씩 빨라졌다.

아침 회의 때문에라도 오늘 할 일을 정리하게 됐다.


전날 밤 “내일 뭐 하지” 고민하던 시간이 줄었다.


박과장이 어느 날 말했다.

“이상하네.”


임대리가 고개를 들었다.

“뭐가요?”


“일이 좀… 돌아가는 느낌인데?”


그날 아침 회의에서였다.


나사원이 말했다.

“어제 로그 보다가 고객사 오류 원인 찾았습니다.”


박과장이 바로 물었다.

“뭐야?”

“초기 설정 문제였습니다.”


이부장이 웃었다.

“그거면 오늘 해결되겠네.”


김상무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리고 짧게 덧붙였다.

“이런 게 팀입니다.”


한 달이 지나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출근 시간에 복도가 북적였다.

9시 10분 회의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회의실에 들어올 때 사람들 표정도 달라졌다.


어느 날 회의가 끝난 뒤였다.

박과장이 김상무에게 물었다.

“상무님.”

“처음에 왜 출근 시간부터 잡으신 겁니까?”

김상무가 잠깐 생각하다가 웃었다.

“예전에 읽은 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어떤 부대에 새로운 장군이 부임했답니다.”

“다들 긴장했겠죠.”

“그 장군이 첫 번째로 시킨 일이 뭔지 압니까?”

나사원이 물었다.

“작전 계획이요?”

김상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충성 인사 제대로 하라고 했답니다.”

사람들이 잠깐 웃었다.


김상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식훈련을 다시 했답니다.”


임대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김상무가 천천히 말했다.

“조직이 흐트러졌을 때는 거창한 전략보다 기본이 먼저입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같은 시간에 모이고,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고, 같은 방향을 보는 것.”

“그게 팀을 다시 세우는 시작입니다.”


박과장이 팔짱을 풀며 말했다.

“그래서 출근 시간입니까.”


김상무가 웃었다.

“네.”

“제일 단순하지만 제일 강력한 방법입니다.”


그날 오후.

나사원이 복도에서 임대리에게 말했다.

“처음엔 좀 별로였는데요.”

임대리가 웃었다.

“나도.”

“근데 요즘은… 팀 같아요.”


멀리서 김상무가 회의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예전처럼 사람들의 발걸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아침 9시 10분.

회의실 문이 또 닫혔다.


그리고 팀의 하루가 동시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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