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했는데 왜 평가가 다를까

by 이부장

그 해 평가 시즌이 다가오자 박과장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팀원들 평가를 정리하고 김상무에게 보고까지 마쳤지만, 정작 자기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난 사무실에는 몇 명만 남아 있었다.
박과장은 모니터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이부장님,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이부장은 안경을 벗고 고개를 들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박과장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제가 일을 못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부장은 웃었다.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야.”


“아니… 매번 평가 시즌만 되면 좀 이상해서요. 저는 나름 맡은 일 열심히 했고, 결과도 다 냈다고 생각하는데 평가가 항상 기대만큼은 안 나옵니다. 잘 나올 때도 있긴 한데 들쭉날쭉합니다.”


이부장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 쪽으로 걸어갔다.


“커피 한 잔 할래?”


종이컵에 커피를 타서 돌아온 이부장은 박과장 옆에 앉았다.


“박과장 일 열심히 하는 거 모르는 사람 없어. 나도 인정하고 김상무도 인정해. 아마 회사에서 성실함으로만 보면 상위권일 거야.”


박과장은 씁쓸하게 웃었다.
“근데 평가가 항상 상위권은 아니네요.”


이부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말했다.


“그건 박과장이 일을 열심히 안 해서가 아니라, 어떤 일을 했느냐의 차이야.”


박과장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은 다 회사 일 아닙니까?”


“맞아, 다 회사 일이지. 그런데 회사 안에서도 우선순위가 있어. 회사가 올해 제일 중요하게 보는 프로젝트, 꼭 성공해야 하는 과제, 임원들이 매주 보고 받는 과제 이런 게 따로 있어.”


박과장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예전에 ID 플랫폼 통합 프로젝트 기억하지? 그때 박과장이 PM 맡았었지.”


“네, 그거 거의 1년 했죠.”


“그때 박과장 평가 좋았어. 왜냐하면 그 프로젝트는 그 해 회사에서 제일 중요하게 보던 과제였거든. 임원 회의 때마다 그 프로젝트 얘기 나왔고, 사장 보고에도 올라가던 거였어.”


박과장은 그때를 떠올렸다.
정말 힘들었고 야근도 많았지만, 평가가 좋았던 해였다.


이부장은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 다음 해에 박과장이 했던 유지보수 프로세스 정리 프로젝트 기억나?”


“아… 네. 문서 다 정리하고 프로세스 개선해서 업무 시간도 줄이고, 팀원들 일하기 편해졌죠.”


“맞아. 굉장히 좋은 일이었지. 나도 솔직히 그거 보고 놀랐어. 그렇게까지 정리할 줄 몰랐거든.”


박과장은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이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근데 그 해 평가가 기대보다 안 좋았지?”


박과장은 조용히 웃었다.
“네… 솔직히 그때는 좀 억울했습니다.”


이부장은 종이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프로젝트가 나쁘다는 게 아니야. 근데 회사 입장에서 보면 그 해 제일 중요한 과제는 신규 고객사 런칭 프로젝트였어. 거기에 사람도 많이 붙고 임원들도 다 그거만 보고 있었지. 회사는 거기서 사고 안 나고 일정 맞추고 매출 나오는 걸 제일 중요하게 봤어.”


박과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과장은 회사 운영을 더 좋게 만드는 일을 했고, 다른 팀은 회사 매출에 직접 연결되는 일을 했어. 둘 다 회사 일이고 둘 다 중요한 일이야. 근데 평가라는 건 결국 그 해 회사가 어디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었느냐랑 연결될 수밖에 없어.”


잠시 조용해졌다.


사무실 형광등 소리만 작게 들렸다.


박과장이 천천히 말했다.
“그럼… 저는 열심히 했는데도, 회사가 크게 관심 없는 일을 하면 평가가 좋기 어렵다는 말씀이십니까?”


이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현실적인 얘기지만 그렇지. 회사는 항상 모든 일을 똑같이 보상해주지 않아. 회사가 중요하게 보는 일에서 성과가 나야 보상이 크게 따라와.”


박과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럼 저는 앞으로 일을 고를 때도 그런 걸 봐야겠네요.”


이부장은 웃었다.
“이제 박과장은 과장이고 팀도 맡고 있잖아. 그러면 단순히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는 단계는 지나간 거야. 이제는 어떤 일이 중요한 일인지 보고, 그 일에 우리 팀이 들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역할이야.”


“일을 선택하는 것도 일이라는 말씀이네요.”


“맞아. 그리고 팀장 되면 더 중요해져. 팀원들 평가도 결국 무슨 일을 했느냐에 많이 영향을 받거든. 팀장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따오면 팀원들 평가도 좋아지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평가 올리기 쉽지 않아.”


박과장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 조금 이해가 됩니다. 저는 그냥 주어진 일은 다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부장이 웃었다.
“회사에서 일은 다 중요하지만, 항상 같은 무게는 아니야. 그걸 아는 순간부터 회사 생활이 조금 달라져.”


박과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부장님, 오늘 얘기 안 들었으면 계속 왜 그런지 몰랐을 것 같습니다.”


이부장이 손을 흔들었다.
“나도 예전에 똑같이 고민했었어. 열심히 했는데 왜 평가는 다른지. 그때 우리 선배가 똑같은 얘기 해줬어.”


박과장은 가방을 들며 웃었다.
“이제 후배들한테 저도 같은 얘기 해줘야겠습니다.”


이부장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성실하게 일하는 건 기본이고, 그 성실함을 어디에 쓰느냐가 더 중요해. 그걸 잊지 마.”


그날 집에 가는 길에 박과장은 회사 메일을 다시 열어봤다.
그리고 요즘 회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프로젝트 이름들을 천천히 읽어봤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회사에서는 열심히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에서 열심히 하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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