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초1, 2가 꼭 해야 하는 것
(4)억울함 다스리기
"선생님, 쟤가 저한테만 뭐라 해요!!"
초등학교 십수년의 근무 중 아이들에게 가장 흔하게 듣는 말입니다. 원래 아이들은 어른보다 억울함의 감정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자기 중심적이라 그럴까요? 아니면 억울한 줄 알았던 일이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니었던 일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해서 일까요? 그도 아니면 정말 억울한 상황에 많이 처해서일까요?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깊이 우려되는 점은 요즘 아이들의 억울함이 몇 년 전에 비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높은 억울함을 자주 호소하는 아이는 타인과 어울리기 힘듭니다. 그러니 이런 경향이 우려될 수 밖에요.
만약 여러분에게 감당하기 힘든 몇 가지 감정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억울함이 몇 손가락 안에 들 것입니다. 그만큼 어른도 다루기 힘든 감정인 억울함을 마음 속에 가득 채우고 있는 아이는 어떨까요? 친구들과 어울리고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 평범한 일과 중에도 울컥울컥 억울함이 올라와 힘들지 않을까요?맞습니다. 툭하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이들은 일단 잘 웁니다. 올라오는 억울함을 어떻게 다스릴 지 몰라 울음부터 터뜨리는 거지요. 이래서는 자기 잘못을 반성하기도 어렵습니다. 친구들 입장에서 보면 잘 놀다가도 갑자기 울고 나를 탓하니 그 친구와 친해지기 어렵겠지요. 운 좋게 친해졌다가도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계속 어울리기 꺼려질 테구요.
그런데 신기한 건, 억울함이 또래보다 높은 아이들의 부모님과 이야기 해보면 그 부모님들에게도 억울함이 자주 비친다는 점입니다.
"우리 애만 잘못했나요?"
"저희 애가 때린 건 잘못했지만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것 같은데요?" 이런 말들을 흔하게 듣습니다. 왜 나한테만 그래?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과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걸 보면 혹시 부모의 억울함이 아이에게 전염됐나, 혹은 억울함을 잘 느끼는 태도를 보고 배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원래 우리의 하루는 억울한 일 투성이입니다. 운전 중 앞차가 꾸물대다 신호에 걸리게 되어도 억울하고요, 그것 땜에 오늘만 지각했을 뿐인데 하필 등교 지도하시는 교장선생님께 걸렸을 때는 배로 억울합니다. 새 학년 기피 업무를 맡게 되어도 억울하고요, 원래 쉬운 업무였는데 갑자기 교육청에서 대대적인 사업을 벌여서 일이 많아졌을 때도 정말 억울하지요. 그래도 우리는 그 억울함들을 다룰 수 있을 만큼의 작은 눈덩어리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다 녹아 없어지는 것도 있고요, 때로는 단단한 결정이 되어버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한번씩 나를 찌르기도 하지요.
고백하건대 저도 억울함을 잘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친한 사람들과의 카톡 대화창을 보면 창피하게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억울함이 위험수위에 달한 아이들을 보고 거울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 아이를 키우게 면서 아이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되고자 억울함을 자주 표출하지 말고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자, 맘 먹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억울함을 덜 표출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억울함을 억압했느냐구요? 그건 아닙니다. 대신 표출하기 전에 제 마음을 기민하게 알아차렸습니다.
'나 지금 억울하려고 하네? 여기에 빠지지 말아야겠다.' 하고요. 알아차린 후엔 좋은 쪽으로 생각을 바꾸려 애씁니다. 그것의 일환으로 제가 저희 아이와 반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쓰는 말이 두 개 있는데요, 그건 바로
"운이 좋다." 와 "그럴수도 있지."입니다.
저는 '운이 좋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 주차장에 자리가 하나 비어있어도 운이 좋다, 급식실에 도착했을때 줄이 짧아도 얘들아 우리 오늘 운이 좋다 합니다. 단, 이 말을 할 땐 활짝 웃어야 합니다. 여러 번 쓰다 보니 이젠 저보다 아이들이 먼저 그 말을 쓸 때도 있습니다.
"선생님, 오늘 우리반 운이 좋아요."
"엄마, 지하 1층에 자리가 있어요. 오늘 우리 운이 좋았네요?" 이런 말을 할 때 아이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의젓합니다. 더불어 '그럴 수도 있지.'도 많이 씁니다. 친구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될때나, 나에게 조금 불리한 일이 생겼을 때 씁니다. 이건 아주 억울한 일이 아니고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이런 일은 종종 있어. 하는 마음을 알려주고 싶었달까요? 이렇게 좋은 운에 초점을 맞추고 나쁜일을 그러려니 넘기는 훈련을 한 아이들은 조금 억울한 일이 와도 그다지 크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물론 꾸준한 노력이 많이 필요하지요. 1년을 해도 안 되는 아이도 있는걸요.
더불어 이것이 억울함임을 알아차리기 위해 아이와 함께 감정 공부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항간에 유행하는 과도한 마음읽기는 권하지 않습니다. "억울해서 물건을 던졌구나."하는 식이요. 이런 교육을 가정에서 받고 자란 친구들은 오히려 누구보다도 억울함을 크게 느낍니다.(잘못된 마음읽기의 폐해에 대해서 할 말이 참 많은데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대신, 물건을 던진 행동에 대해서 먼저 단호하고 따끔하게 지도하고 아이의 감정이 가라앉은 후 "억울한 마음은 엄마도 알겠어. 그래도 물건을 던지는건 안 돼."라고 말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탐색하는 것은 좋습니다. 너무 아이의 마음을 다 알아줘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세요.
저 또한 아이들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아이들도 억울함보다는 운이 좋음을 기뻐하고 그럴수도 있다며 안심하는 감정을 더 많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