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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나 Nov 23. 2023

광고, 생명을 구하다

THE LAST PHOTO_ITV+CALM

더 이상 미디어에서 볼 수 없는ㅡ

새로운 광고로 잊혀지기에는ㅡ

광고 카피라고 무시해 버리기에는ㅡ

너무나 아까운 광고 이야기


illustrated by Yunna

인형처럼 예쁜 아기를 안고 있는 남자가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기를 바라보며 노래 부릅니다


“If you’re happy and you know it, clap your hands, Clap! Clap!”  

(당신이 행복하고 그것을 알고 있다면 손뼉을, 짝! 짝!)

“If you’re happy and you know it, then your face will surely show it.  

(당신이 행복하고 그것을 알고 있다면 얼굴에 확실히 보이지요”

“If you’re happy and you know it, clap your hands, Clap! Clap!”  

(당신이 행복하고 그것을 알고 있다면 손뼉을, 짝! 짝!)

(우리 모두 다 함께 손뼉을)


환하게 웃으며 아기는 노래에 맞춰 두 개의 작은 손으로 손뼉을 칩니다. 아기가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자 아기를 안고 있던 남자도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환하게 웃습니다.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의 영상이 이어지고, 반주 없이 읊조리는 듯 부르는 여자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Bring me sunshine in your smile

(당신의 미소에 햇빛을 가져다주세요)
 Bring me laughter all the while

(내내 웃음을 선사해 주세요)
 In this world where we live there should be more happiness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더 많은 행복이 있어야 해요)
 So much joy you can give to each brand new bright tomorrow

(각자의 새로운 내일에 당신이 줄 수 있는 너무나 많은 기쁨을요)

Make me happy through the years

(세월이 흘러도 나를 행복하게 해 주세요)
 Never bring me any tears

(나를 울게 하지 말아 주세요)
 Let your arms be as warm as the sun from up above

(당신의 두 팔로 저 위의 태양처럼 따뜻하게 해 주세요)
 Bring me fun bring me sunshine, bring me love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세요,

나에게 햇빛을 가져다주세요

나에게 사랑을 가져다주세요)

                   (원곡: Willie Nelson, 2008)


계속될 것 만 같던 행복한 사람들의 영상은 검은 화면으로 암전 되고 자막이 나타납니다.


“These are the last videos of people who took their own lives”

(이 영상은 자살한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Suicidal doesn’t always look suicidal”

(자살은 언제나 자살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광고 다시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6Jihi6JGzjI

https://www.youtube.com/watch?v=NEIXQJnMKAY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은 바이러스 감염만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수년간 코로나로 인한 생활반경의 축소와 전례 없는 생활고로 영국의 자살률은 엄청난 속도로 증가했습니다. 치명적인 질병이나 예측할 수 없는 사고와는 달리, 우리는 자살은 순간의 관심과 행동으로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죠.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목격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라도 그들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영국의 CALM (CAMPAIGN AGAINST LIVING MISERABLY)은 관심과 행동의 시점을 우리에게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어떠한 신호도 주지 않는 평범한 일상의 날들을 자살로부터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는 시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죽음으로 까지 몰고 가는 불행은 그 어떤 시그널도 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살과 가장 가까운 순간의 모습은 특별하고 이상하고 지극히 불행해 보이는 순간이 아니라,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심지어 행복해 보이기까지 하기 때문이죠.


영국 최대의 상업 방송국인 ITV와 CALM은 [THE LAST PHOTO]라는 캠페인을 통해 자살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뒤통수가 아니라 가슴을 크게 치는 방법으로 바꿔주고 있습니다.


연출되지도 않고, 극적이지 않은… 오늘 아침에 집에서, 동네에서, 일터에서 마주쳤을 것 같은 편안하고 즐거운 모습들이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모습 이라니!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은 늘 울거나 절망해 있거나 낙담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정 반대에 가깝죠.

불행은 늘 큰 칼을 들고 내 앞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살금살금 기척도 없이 다가온다는 장항준 감독의 말처럼, 이 캠페인의 키 메시지는 바로 “자살은 자살처럼 보이지 않는다”입니다.


귀한 생명들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는 것은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매일매일이라는 것을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 만으로 우리는 알 수 있지요.


가슴을 한 방 크게 친 이 캠페인은 16억 건의 노출수를 달성했고, 이 캠페인의 목적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160여 건의 자살을 예방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기부금 또한 400%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캠페인의 목적에 맞는 성과뿐만 아니라, 광고적으로도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23 칸국제광고제에서 필름부문 그랑프리를 포함해 총 27개의 상을 수상한 것이죠.


사고의 순간에 몸을 던지거나, 무기나 무술로 위험으로부터 지켜내거나, 의학적인 발견을 하거나, 의료기구나 신약을 개발하는 등 생명을 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죠. 하지만 그런 거창한 방법이 아니어도 우리는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거나, 대화나 관심 같은 소소한 행동을 실천하는 것 만으로 가까이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죠. The Last Photo 캠페인은 광고를 통해 평범한 우리를 생명을 구하는 히어로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캠페인은 오늘 여러 가지 편견을 부수고 있네요.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누가 봐도 불행해 보일 거라는 편견.

생명을 구하는 일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일일 거라는 편견.

그리고 무엇보다, 광고는 생명과 관계 없을 거라는 편견.


세상은 넓고

훌륭한 광고는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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