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 엄마 방학 되돌아보기
이제 남은 겨울 방학 하루! 다음 주 월요일에 개학한다. 우리 반 아이들이 보는 게시판에 개학일에 챙겨야 하는 준비물과 안내 사항을 올려놓고 보니 우리 아이들 담임선생님들께서도 알림장을 올려놓으셨다. 나만 개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개학을 한다. 길고 긴 방학 동안 잘 쉬면서 너무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조금 걱정하던 차에 아이들도 내야 할 과제가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먼저 딸은 책상 위에 놓인 숙제표에 스스로 숙제한 만큼 체크하고 있었다. 과제는 독서, 운동, 생활 글쓰기 3편, 독서록 4개였다.
책 읽기 - 방학 때 도서관에 자주 갔기 때문에 책은 많이 읽었으나 대부분 만화책인 것이 좀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글밥이 있는 책도 읽어서 잘 정리해 두었다.
일기 - 거의 매일 쓰고 몰아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운동 - 주말엔 나와 수영장을 가고, 일주일에 두 번 줄넘기 방과 후 수업과 집에서 이따금씩 트램펄린을 했다.
악기 - 피아노 학원을 아직 가지 않고 내가 조금 바이엘을 가르쳐주었더니 방학 동안 매일 조금씩 피아노도 쳤다.
학습 - 수학은 1학년 때부터 시작한 핀란드 수학책을 매일 2장, 기적의 연산 2장, 3학년 복습 단원평가 1-2장씩 했다.
한자 공부는 내가 공책에 적어준 1-2자 글자를 여러 번 쓰는 것으로 했는데 새해 들어서 6급 급수책으로 하루에 2장씩 쓰고 외우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솔직히 딸은 걱정이 없다.
방학 동안 오전에 잠깐 방과 후 갔다 오면 자기 방에서 만화책 보거나, 악기 연주, 만들기 하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영어 AI펭톡하면서 스스로 시간을 잘 보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동생이랑 놀거나 TV를 보고 4시 이후에는 해야 할 공부를 알아서 하는 믿을 수 없이 성실한 아이다. 방학 동안 피아노 학원이라도 다닐 것을 여러 차례 권유했지만 힘들다고, 집에서도 충분히 연습할 수 있다고 하여 미룬 상태인데 조금씩 연습 시간도 늘리고 흥미를 갖게 된 것 같다. 수영도 자유형은 25M 풀에서 중간에서 한번 쉬면 잘하고, 배영 팔 돌리기도 할 수 있고, 평영과 접영 발차기 연습 중이다. 주말에만 간 것치고 꽤 잘하는 편이라 여름에 강습을 받으면 더 체계적으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아들은 어떨까?
과제는 독서 기록 학습지 1장, 일기 1주일에 1-2편, 운동하기, 선택과제 2개 이상하기이다.
독서 - 만화책을 주로 본다. 말이 좋아 학습 만화지만 살아남기 시리즈, 흔한 남매 시리즈 등 누나가 빌려온 책은 거의 같이 다 보고 혼자 책 읽는 시간도 좋아한다. 하지만 기록은 하지 않는다.
일기 - 방학 초반에 거의 일기를 쓰지 않고 있다가 너무 미루는 아이를 닦달을 해서 폭풍 몰아 쓰기를 해서 겨우 할당량을 썼다. 말을 해서 한 번에 쓰는 법이 없었다. 10칸 공책 일기장에 8월에 한 편, 10월에 한 편 쓰고 텅텅 비어있다. 매일 공부 시간마다 쓰라는 말을 하지만 말은 허공에서 사라지는 마법!
운동 - 방과 후 줄넘기 수업을 다니고 있고, 이따금 트램펄린도 잘한다. 방학 동안 보조바퀴 떼고 자전거를 잘 타게 되었다. 수영장은 1번 같이 갔는데.. 아직 배울 준비가 안 되었다. 물놀이는 좋지만 수영은 싫단다.
학습 - 수학은 누나와 마찬가지로 핀란드 수학책을 하고 있는데 아직 1학년 2학기 것을 풀고 있다. 매일 꾸준히 하는 편이 아니다. 방학 때 1학년 복습 겸 단원평가지를 복사해 주었는데 그것은 하루에 1장씩 풀었다. 연산을 매우 싫어하고 할 때마다 짜증을 부린다.
한자 - 지극히 한국적인 것을 매우 좋아하여 신화, 요괴(용), 부적? 쓰는 것을 자주하여 한자 쓰는 것을 좋아한다. 적극적으로 한자를 물어보고 잘 쓰고 있어 한자 급수 책도 한 번에 대여섯 장씩 쓰면서 한다.
아들은 방학 동안 오전에는 돌봄 교실과 방과 후 수업을 하고 12시 반에 집에 와서는 누나와 놀기, TV 보기로 시간을 보냈다. 둘째로 따로 학원은 가지 않았고, 방학 동안 누나와 놀았고, 혼자 있을 때는 건담 블록, 레고, 아이링고, 각종 장난감들과 교감하면서 잘 놀았다. 어느 정도 놀고 난 후 스스로 공부할 시간이라고 하면 누나는 자기 방에서 공부를 시작하지만 조용히 혼자 놀기에 빠져들었다. 늦은 오후 시간 각자 공간에서 조용히 집중하는 시간이 좋아 아이에게 더 뭐라 말하진 않았다.
그럼 나의 방학은 어땠을까?
이번 방학은 다른 때보다 여유가 있었다. 방학 전에 학생생활기록부를 완성하고 점검까지 마쳤기 때문이다.
방학 때 나의 과제는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 6학년 수학 공부, 한자, 영어, 수영, 글쓰기(필사)이었다.
여행 - 아이들과 이번 방학엔 국내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해외여행을 가도 좋았겠지만 그동안 아이들과 다녔던 여행이 너무 관광 위주의 소비성 여행이었기 때문에 해외로 가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국내 여행을 많이 했는데 12월 말 전남 여행(화순, 담양, 광주) 1월 외갓집 여행(장수, 대전, 정읍), 할머니 할아버지댁 여행(성주, 대구) 엄마랑 평일 여행(진주, 김해)을 갔다. 당연히 거제 안에서도 칠천도, 오량리 등 많이 놀러 다녔다. 이제 초등학교 2, 4학년으로 올라가는 아이들이라 체력적으로 나보다 훨씬 건강하고, 교과서에서만 보던 것들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국내여행이 제격이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화순의 운주사, 고인돌 유적지, 공룡발자국화석지
담양의 소쇄원, 죽녹원, 곤충박물관
광주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관
대전의 국립과학박물관, 카이스트, 화폐박물관
정읍의 내장산, 쌍화차거리, 동학농민혁명기록관
진주의 청동기박물관, 토지주택박물관
김해의 국립김해박물관, 클레이아크 뮤지엄 등 한 번만 가기에 아쉬운 곳도 많아 다음에 꼭 다시 오자고 약속한 곳도 많았다. 거리상 서울이나 경기, 강원도 쪽 여행은 겨울에 부담스러워서 가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버스, 기차를 타고도 여행하기에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았다.
수학 - 25학년도 희망 학년 1 지망에 6학년을 썼다. 교사 경력 14년이 넘었지만 6학년을 한 번도 못해본 것은 조금 부끄러운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선호학년이 아닌 6학년을 썼다. 5학년을 연거푸 했기 때문에 6학년 이어서 하는 것도 크게 부담스러운 상황은 아니지만 수학 공부는 미리 조금씩 했다. 하루 10문제 고난도 문제 풀기를 방학동안 해서 6학년 1학기 수학은 진도를 마쳤다. 생전 처음 보는 유형의 문제도 많아 한번에 다 풀기 어려웠다. 딱 10문제! 잘 모르겠는 문제는 덮어두고 다음날 머리 맑을 때 풀면 후루룩 잘 풀어졌다. 1학기 대강 끝낸 후 2학기 문제도 풀고 학습지도 미리 만들 계획이다.
한자 - 아이들만 한자 공부를 시킬 수는 없지 않나 싶어 이번에 다시 1급 한자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2급 한자 능력급수는 그야말로 팔팔한 대학 3학년에 땄었다. 1급 자격증은 아이들 낳고 육아휴직 기간에 뭐라도 하자 싶어 2번 시험을 봤었는데 그때 마무리를 못했다. 3500자 배정한자 중 1800자는 읽고 쓸 수도 있어야 한다. 오랜만에 보는 한자들은 다 비슷하게 생겨서 한동안 하루 열자 외우기만 하다가 조금 탄력이 붙어 하루에 20자 정도 외운다. 한자 공부의 왕도는 없다. 그냥 많이 보고 많이 쓰는 것이 다인데 예전엔 그렇게 서너 달 준비해서 바짝 1달 동안 외워 2급도 땄었는데 그때보다 암기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 같다.
교직 생활에 꼭 필요한 자격증도 아닌데 굳이 시작한 이유는 해가 갈수록 교사인 나도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글을 쓸 때도 유식한 한자어를 많이 쓸 필요는 없어도 글 속에 품격이나 대화할 때 여유를 갖고 싶는데 참 글이나, 말이나 가벼움을 스스로 절감하기 때문이다. 아이들만 한자 공부하라고 했지만 다시 시작하면서 같이 공부하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영어 - EBS이지 잉글리시를 매일 듣고 대화문을 외우고 있다. 주어진 텍스트를 외우는 것이 다지만 계속하다 보니 아주 서서히 발음이 나아짐을 느낀다. 물론 영어 울렁증은 여전하다. 꾸준히 하던 것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수영 - 방학 동안 여행도 자주 가고, 설 명절도 있어서 매일 가진 못해서 여전히 초급 라인이지만 너무 좋은 게 이제 수영할 때 숨이 턱턱 막히진 않는다. 강습 때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은 물론 힘들지만 강습 끝나고 혼자 아주 천천히 자유형을 할 때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음을 느낀다. 물을 잡고 보내며 물 흐름을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딸과 수영장을 갈 때도 아이와 운동이 아니라 물속에서 노는 것이 즐거워서 간다. 방학 중이라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 허겁지겁 챙겨서 집에 가지 않고 온탕 속에 앉아 있는 것도 즐거움이다.
그리고 글쓰기! 방학 동안 토지 필사를 몇 장했다. 한강, 유홍준, 유시민의 책을 보면서 깊이 있고 살아 움직이고,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문장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글을 쓸 수 없다는 무력감보단 그런 문장을 읽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눈부터 길러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사실 일주일 한 번 글 쓰는 것도 미룰 때가 많았는데 방학이라 여유가 많았는데도 평소보다 더 많은 글을 쓰기 힘들었던 것은 우리 아들이 일기를 미룰 때의 마음과 비슷했을 것 같다. 몰아서 한 번에 쓰는 것보다 짧아도 딸처럼 하루 몇 줄이라도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 안 하는 마음. 아들한테 했던 잔소리는 결국 나에게 되돌아오는 말이었다.
한 공간 서로 다른 세 사람의 방학이 이제 마무리가 되어간다. 물론 일주일 후 또다시 봄방학이 시작되지만 그때는 겨울방학만큼의 여유보단 새 학기 준비로 분주할 테니 지금의 마음과는 다를 것이기에 하루하루 가벼이 보냈던 시간이 무겁게 지나갔다.
어떤 방학을 보냈는지 선생님에게 숙제 검사받는 학생의 마음이 되어 글을 쓰니 우리 반 23명 아이들 마음도 이해가 된다. 매일 조금씩 내 공부를 했지만 크게 변화가 없어 자랑할만한 것은 못 되는 나의 방학이라 그런가. 개학일 숙제 잘 한 아이에겐 아낌없이 칭찬을, 숙제 잘 못한 아이들에겐 할 수 있는 만큼은 책임질 수 있도록 딱 그만큼의 응원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