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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pr 18. 2023

오늘을 사는 것

9년전 그날의 기억

월요일 1교시는 국어,

3단원 느낌을 살려 말해요 마지막 시간이었다.

상황에 따라 말투와 표정, 몸짓을 다르게 해야 하고 듣는 사람, 읽는 사람의 연령대, 관심사에 따라 말하고 쓰는 내용을 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단원이다. 딱히 재미있는 단원은 아니라서 여러 차례 글을 읽고, 그 글을 요약하고 듣는 대상에 따라 발표하는 연습을 몇 번하니 마지막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시간 학습 목표는 자신의 경험을 실감 나게 말하는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마다 보물상자를 쓴다. 보물상자는 자신의 경험을 잊지 않고 보물처럼 상자에 담아둔다는 뜻으로 그냥 일기다. 주제를 주말에 있었던 일로 하고 그 일을 실감나게 말하는 연습을 하면 수업 내용으로 알맞다고 생각했다. 돌아가면서 주말에 있었던 일을 하나씩 말했다.


-가족들과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러 갔어요.(나도!)

-아빠랑 형이랑 피구를 했어요.(주말에도 피구구나.)

-밸리 대회에 나갔어요.(이번에도 일등이라니 대단하다.)

-아람단 선서식에 갔는데 추웠지만 친구들하고 재밌게 놀았어요.(비 오는 날 놀이공원은 더 재밌지)

-두 살짜리 친척 동생을 보러 갔어요. 귀여웠어요. (너도 그럴 때가 있었지.)


바닷가에 간 아이, 친척들이랑 놀러 간 아이. 아파서 집에만 있던 아이 등 주말마다 아이들이 안고 있던 사연은 각각이었다. 친구들과 둘이서, 또는 셋이서 같이 이야기하라고 하니까 아이들마다 시끌벅적 이야깃거리 한 보따리씩 풀어놓는다.


이런 경험을

-누구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듣는 사람이 관심가질 내용

-그때의 표정과 몸짓, 말투

까지 생각하면서 다시 발표하라고 하니 시끄러웠던 교실이 잠잠해졌다. 나 같아도 저렇게 다 생각해서 말하라고 하면 말하기 싫을 것 같았다. 일단 내가 먼저 발표 방법을 예로 보여줘야 아이들도 하나둘씩 발표를 할 것 같아서 주제를 생각했다.


주말 동안 딸이랑 둘이서만 지냈던 이야기를 할까

오랜만에 재밌게 본 슬램덩크 만화 이야기를 할까

오늘부터 가는 생존수영에서 아이들 무서워하지 말라고 내가 배웠던 수영 이야기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데 한 가지 생각에서 멈췄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 어제가 무슨 날이었는지 아니?

-일요일이요.

-4월 16일이요.

-제 생일이요.


-맞아. 어젠 일요일이었지. 4월 16일. 9년전 4월 16일 선생님이 겪은 이야기를 해줄게. 9년 전 선생님은 스물아홉 살이었고


-웅성웅성(우리 반 애들은 내 나이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영특한 녀석들) 


-자자~ 다시 시작! 함양군 안의초등학교에서 1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어. 우리반 아이들은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는데 너무 예뻤지만 걔들은 스물일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었지. 매일매일 시끌시끌 즐겁게 놀았던 것 같아.  


-그러면 그 사람들은 벌써 17살이겠네요.  


-(헐! 정확하다.) 맞아. 올해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올라간다고 연락 왔더라. 9년 전 그날은 아주 날씨가 맑았던 봄이었어. 1층이던 우리 교실 앞에는 여러 꽃나무들이 가득했는데 그땐 철쭉이 많이 보였던 것 같아. 수업 자료를 찾느라고 인터넷창을 여는데 메인 화면에 빨간색 속보가 뜬 것이 보였어. 서해안 어디쯤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거야. 참. 사람이 무심한 게 그런 빨간 글씨가 뜨니 순간적으로 관심을 갖다가도 내 일 아니니까 다시 수업 자료를 찾으려고 화면을 넘겨버렸지.

쉬는 시간에 다시 보니까 빨간 글씨 내용이 바뀌었어. 여객선 승객 전원 구조!

그러면 그렇지. 우리나라가 얼마나 안전한 나라인데 그런 일이 있겠어. 모두 다 구조됐구나. 다행이다.  하고 시간이 지나갔던 것 같아. 그리고 인터넷을 한동안 안 보고 있었어. 퇴근할 때 라디오를 들으면서 다녔는데 라디오에서 나온 이야기는 내가 아까 봤던 뉴스 기사와 전혀 다른 얘기였어.


-어떻게요?


-배가 완전 수직으로 기울었고 점점 가라앉고 있다는 거야. 사고 난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아직 배에 있고.


-네? 왜 사람들을 안 구했어요?


-그러니까. 이해하기 힘들었어. 집에서 티브이를 보니 전 방송국에서 사고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어. 구조 몇 명, 빨간 글씨가 뉴스 상단에 계속 떠 있고 화면은 배의 앞부분이 바다 위로 나온 채 점점 가라앉고 있는 모습이었지. 주변에는 구조선들과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떠 있는 모습이었어.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었어. 분명 전원 구조했다고 했는데 이제는 골든타임이 몇 시간 남았는지 알려주고 있었던 거야.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일부는 구조됐지만 거기 타고 있었던 많은 학생들, 가족들, 사람들은 아직 배 안에 있다는 말은 정말 믿기 힘들었어. 우리나라처럼 안전한 나라에서 대낮에 바다에 떠다니는 배가 가라앉는 사고가 일어났다니. 그리고 그 사람들을 아직도 못 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었어.  


-선생님, 세월호 사건이죠? 수학여행 갔던 고등학생들 이야기죠?

-선생님, 그때 우리 2살 때죠?


-어. 그렇네. 너희들은 막 기어 다니거나 누워있던 아기였겠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면 아주 많은 학생들이 배 안에서 구조 방송을 기다리면서 차분하게 구조되기만을 기다렸지만 그 아이들을 구할 수 없었어. 그날 이후 방송에는 구조 몇 명, 사망 몇명, 실종 몇명 이런 숫자들이 계속 바뀌었지. 그 바다는 물살이 험하기로 소문난 바다였고, 바다에 직접 갈 수 없는 가족들은 가장 가까운 진도 팽목항에서 돌아오지 않는 가족들을 애타게 기다렸어.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던 바다에는 그날부터 노란 리본이 달면서 빨리 돌아오라고!

추운 바다에 더 있지 말고 따뜻한 집으로 어서 오라고! 잃어버려야 했던 아이들을 기다렸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선생님이 말한 경험은 바로 그날 있었던 선생님의 하루야.

어제는 그 사건이 일어난 지 9년이 된 날이었어.


선생님도 몰랐어. 주말이라서 선생님 딸이랑 스즈메의 문단속도 보러 가고, 문구점 쇼핑도 하고, 꽃 보러 공원에도 갔었거든. 그저 뿌연 하늘 보면서 심한 미세먼지가 불만이었지만 그래도 딸이랑 둘이서 하는 시간이 참 행복했어.

9년 전 그날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이야.

그날 이후 한동안 대한민국은 티브이를 켜도, 인터넷을 봐도, 라디오를 들어도 세월호 희생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과 사고 난 배가 얼마나 위험한 항해를 했는지, 그날 대한민국 정부가 보인 여러 가지 믿을 수 없는 행태들에 대한 비판들로 가득했어. 4월이면 즐거운 소풍, 수학여행, 축제들로 행복하고  떠들썩할 시간이었는데 그해 4월은 참 조용하고 무거웠어.


- 선생님 그 사건 때문에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많대요.


-트라우마를 아는구나. 대단하다!  사람이 넘어지면 상처가 나거나 멍이 들지. 이런 눈에 보이는 상처들은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면 되는데 마음이 아픈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떻게 치료할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상황이 되면 그날의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마음의 상처, 그런 것들을 트라우마라고 한대.

사고 당사자, 희생자 가족들이 가진 고통과 트라우마는 선생님이 감히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힘겨웠을 거야. 그런데 그날의 상처는 그 당시를 살아가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았었나 봐. 선생님은 사고 당사자도 아니고 가족들도 아니고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이렇게 마음이 아직도 아파. 다 잊고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제저녁 뉴스를 보는데 선생님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더라고. 그런데 그 가족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버텨냈을까?를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운 거야.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언제 어디에서 사고가 날지 모른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이런 생각이 그때부터 자리 잡게 된 것 같아.

선생님이 항상 너희들에게 잔소리하지. 교실에서 뛰지 말아라. 복도랑 계단에서 장난치지 말아라. 그런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인 것 같아.  


여기까지 이야기하는데 내 목소리는 많이 떨렸고 눈앞이 흐렸다. 조금씩 흐느끼고 있었나 보다.

월요일 아침부터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국어 발표를 위해서 생각한 주제였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남아 있던 그날의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11살 아이들에게 날카롭게 느껴지진 않았는지 미안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9년이 되었다.

9년 동안 이곳은 얼마나 더 안전한 나라가 되었는가?

그것은 장담하지 못하겠다.

세월호 사건 이후 전국의 3-4학년 초등학생들은 생존수영을 배우게 되었고 1-2학년들은 안전한생활이라는 교과서를 받아 공부하게 되었고 각종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안전 교육 시수는 나날이 늘어났다.

그 사건이 아이들이 생존수영 교육을 받지 못해서,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생긴 일일까?

그 날 이후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어 비슷한 일들로 상처는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9년전 1학년 아이들이 쓴 편지
9년전 1학년 아이들이 쓴 편지

그렇지만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  오늘을 사는 것.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면 내일이 오는 것.

짧은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은 쉬는 시간을 가졌다.

복도에서 뛰는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걸어 다니라고 잔소리를 하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하루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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