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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n 18. 2023

좋아하면 보인다

좋아하지 않아도 네 덕분에 보인다

일요일 오전 여섯 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지난주 공원에서 데려온 이름 모를 나무 벌레가 채집통 안에서 돌아다니는 소리인 것 같아서 다시 자려고 돌아 누웠는데 아무래도 소리가 심상치 않아서 나왔다. 소리의 진원지는 나무 벌레가 사는 채집통이 아니었다.  아들이 5월 초에 가져온 장수풍뎅이 애벌레통에서 나는 소리였다.

번데기 상태에서 통을 자주 만지면 안 된다길래 거의 방치하다시피 거실 한쪽에 모셔 두었는데 거기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뚜껑을 살짝 돌려보니 길이 4cm 정도의 장수풍뎅이가 성충이 되어 뒤집어진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얼른 아이들을 불렀다. 더워서 안방에서 같이 자기 시작해서 아이들은 엄마의 소란에 금방 눈을 떴다.


"얘들아! 일어나! 장수풍뎅이 태어났어!"

아들은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안되었는데도 엄마의 다급한 외침에 금방 눈을 뜨고 일어나 상황을 파악했다.

톱밥 위에 당당하게 앉아 있는 그 녀석을 대면하고 탄식을 내쉬었다.

"태풍아!"

바로 이름을 얻게 된 장수풍뎅이였다.

암갈색의 반짝거리는 딱지날개를 가진 장수풍뎅이는 큰 뿔도 멋있고 근사했다. 처음 가져왔을 때는 내 엄지손가락보다 약간 작은 하얀 애벌레였는데 (그때가 5령 정도되었다고 했음) 한동안 작은 통 안에서 꾸물거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어느새 어른 장수풍뎅이가 되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장수풍뎅이 이 녀석도 새벽의 소란이 어색했는지, 아니면 가족들의 호들갑이 낯설었는지, 어리둥절한 채 정지되어 있었다.

일단 비좁은 통을 교체해야 했다.


작년에 사슴벌레를 세 마리나 키운 전적이 있는 우리 집엔 비어있는 다이소표 채집통이 아직 1개 있었다.

톱밥은 작년에 사슴벌레가 죽은 이후로 다 버려서 없어서 급한 대로 장수풍뎅이 애벌레 통에 있었던 톱밥을 채집통에 탈탈 털어 넣었다. 애벌레 때부터 살았던 통 안에는 원래 톱밥이었는데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먹고 싼 똥과 탈피한 번데기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아있어 축축한 상태였다. 잘 안 떨어지는 것을 툭툭 여러 번 두드리니 모두 쏟아졌다. 그 위에 장수풍뎅이를 놔두었더니 씩씩하게 잘 걸었다.

다행히 집에 곤충젤리가 몇 개 있어서 하나 두었더니 곁에서 잠깐 먹는 것 같더니 금방 자기가 여태 살았던 톱밥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떠들썩한 우리 가족의 환영식이 이 녀석에겐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거실 한쪽 구석 채집통이 또 하나 늘어났다.


아들은 지금 일곱 살이다. 이맘때 남자아이들에게 곤충이란 그저 빛이다. 아니 삶이다.

아들은 눈뜨자마자 최강왕 곤충 랭킹 시리즈를 읽는다. 어느 정도 읽은 후에는 책에서 나온 곤충들의 배틀 장면을 자기 나름대로 각색하여 다시 그린다. (최강왕 배틀 시리즈는 정말 사실적이고 극단적인 묘사로 유명한 책으로 절대 내 돈 주고 이 책을 살 거라고 예상조차 한 적 없었다. 하지만 우리 집엔 그 책이 이미 몇 권이 있다.)


아들이 예전에 좋아했던 동물들은 문어 종류(크라켄, 대왕 오징어, 대왕 문어), 상어 종류(백상아리, 귀상어, 청상아리, 더 거슬러 올라가면 메갈로돈, 모사사우르스),  고래 종류(범고래, 대왕 고래, 혹등고래, 거슬러 올라가면 바실로 사우르스 등)와 같이 해양 파충류 또는 두족류였는데 직접 볼 수 있는 곤충들로 관심사가 바뀐 것 같다.  요즘은 사마귀, 지네, 전갈, 장수잠자리,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길앞잡이 등 자기 기준에 조금 세 보이거나 강력한 종류의 절지동물들을 좋아한다.


작년 여름 방학 때 외할아버지가 사슴벌레를 세 마리 잡아 준 이후 그 사슴벌레를 집에서 키우면서 곤충에 대한 관심이 책을 넘어서 실제로 만지고 잡고 싶어 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나는 보통 사람으로 위에 언급한 동물들은 아이가 관심 갖기 전에 절대 스스로 찾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이가 그런 곤충을 좋아하는 것이 처음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책이나 영상에 나오는 곤충들의 모습은 내 기준에서 조금, 아니 많이 혐오스러웠다.

작년에 채집했던 사슴벌레


그런 나의 반응이 아이의 건강한 호기심? 탐구심을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올해 유치원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학기 초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성향을 완벽하게 파악하셨다. 예전에 가르쳤던 유치원 아이 중 한 명이 우리 아이와 비슷한 성향이었다면서 그 아이가 부모님과 직접 채집한 지네를 유치원에서 관찰했던 경험을 말해주셨다. 아들은 그 이후 자기도 지네를 직접 키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지네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자주 보기도 힘들고 혹시 보게 되더라도 독이 있으니까 집에서 키우는 것은 절대 불가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흥을 깨긴 싫어서 같이 채집하러 가자는 말을 몇 번 했었다.


좋아하면 보인다.

관심 없는 엄마나 누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들 눈에는 보일 수밖에 없었다.

벚꽃이 막 지기 시작할 무렵 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목재 체험장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 집에 가려는데 아이는 발견했다.

바로 비단길앞잡이를!

뇌보다 다리가 더 빨라 마치 산속에서 사람을 앞서 가며 길을 안내하는 것 같다고 해서 길앞잡이라고 이름 붙은, 육식성 곤충 길앞잡이를 아들은 채집하고야 말았다. 색깔도 이뻤고 크지도 않고 딱 알맞은 채집 상대였다. 아이 스스로 채집해서 집에서 1-2주 키운 다음 유치원 선생님의 허락 하에 유치원으로 데려가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던 길앞잡이가 어느 날 죽었다길래 “산에서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살다 보니 힘들었나 보다." 했는데 이게 웬걸!

화려한 비단옷을 벗고 갈색 길앞잡이로 탈피를 했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이 덕분에 아이들이 곤충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어요!"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죄송한 마음이었다. 애들 챙기는 것도 힘드실 텐데 길앞잡이까지 얹혀 드리다니... 아무튼 길앞잡이 채집 이후 아들은 채집에 더 열성이었다.

정확히 탈피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색깔이 바뀐 길앞잡이


다음 대상은 그토록 원했던 지네였다. 5월 어느 아침 매일 돌던 코스 대신 아이들이 자주 노는 놀이터 근처를 걷고 있었다. 놀이터 옆은 대나무 숲이었는데 뭔가 꾸물거리는 것이 무서워서 빨리 걸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빨리 걷는데 봐버렸다. 길이 10cm에 달하는 지네였다.

일단 나도 그때까지 아이 책을 같이 보면서 지네의 수많은 다리에는 익숙한 상태였지만 그것이 그림일 때와 살아 움직이는 수십 개의 다리였을 때는 다가오는 공포가 달랐다.

아무튼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어서 아침잠을 기분 좋게 깨워주려고 보여주었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당연했다.


"왜 안 잡았어?"

엄마가 그것을 어떻게 잡니. 엄마는 못해.

하지만 아들은 엄마의 안위보다 자신의 호기심이 더 앞선 아이였다. 등원길에 다시 지네가 출몰했던 장소로 갔고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본 후에는 채집욕이 더 살아나버렸다.

유치원 끝나고 잡으러 오자고 철석같이 약속한 후에 무사히 등원을 했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하원할 때 아이는 이미 정신적 준비를 끝냈다.

친구들에게 지네를 잡아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고 선생님들은 나를 보며 엄마가 고생이 많다는, 다 안다는 측은한 눈빛을 보내셨다.


다시 돌아간 지네 출몰 장소엔 죽은 지네만 남아 있었다. 죽은 지네라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아이는 달랐다. 살아있는 것을 원했다. 물론 죽은 지네는 유리병 안에 고이 담아 자기 방안에 두었는데.. 나는 그 곁에 가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동학년 선생님께 했더니 연배가 있으신 선생님께서 대나무 숲에 지네가 많이 산다면서 닭고기를 유리병 안에 조금 넣어 땅속에 묻어 놓으면 지네를 잡을 수 있다는 비법까지 알려주셨다.

이렇게 순진한 엄마는 아들에게 말했더니 아들은 트랩을 만들었다.

집에 생닭은 없어서 치킨 너겟을 구워 병 안에 넣고 병이 들어갈 만한 구덩이를 파서 넣은 후, 그 위를 대나무로 뒤엎은 완벽한 지네 덫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며칠 뒤 비가 많이 와서 덫은 망가져서 그대로 쓰레기통 행이었다.

지네 사진도 있지만  심신 안정을 위해 그림으로 대신함


하지만 다시! 좋아하면 보인다. 아들의 눈에만 그렇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지네는 참 자주 여러 번 보였다. 어둑한 공원, 학교 텃밭, 잔디밭에서 참 자주 보였다. 독충이라는 것을 이해를 해서 아이는 채집통이 없을 때는 잡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장수풍뎅이의 우화 과정을 목도한 감격의 순간을 잠시 뒤로 하고 근처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아이들은 그림도 그리고 김밥도 먹으면서 편안하게 쉬고 짐을 챙겨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역시 아들의 눈에만 보였다. 

사마귀 약충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아직 어려서 이 아이도 조금은 귀여워 보인다.

자연이 아니라 집에서 오래 살진 잘 모르겠지만,

작다고 우리가 이렇게 함부로 채집해 오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결정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잘 키워서 여름 풀숲으로 돌려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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