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벤 슈틸리히作 존재의 박물관
병상에 있는 할머니는 죽음과 삶의 공존 그 자체였다. 별다른 지병 없이 불과 2년 전만 해도 엄마 밭에서 배추를 캐다 김치를 담궜고, 아이브로우를 야무지게 들고 일자눈썹을 그렸으며 곱디고운 핑크색 루주를 늘 외출 전에 발랐다. 의식은 너무나 선명했지만 왼쪽발가락 절단술을 진행한 후였다. 피가 통하지 않아 괴사가 온거라나..
그렇게 한 달쯤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삶이 종결했다.
남겨진 4명의 딸과 4명의 사위, 2명의 아들과 2명의 며느리, 16명의 손주들 그리고 10명 남짓의 증손주들까지 저마다의 슬픔을 각자의 방식으로 겪어냈고, 문상을 온 많은 노인들은 호상이라며 가족들을 위로했다.
며칠 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들이 “엄마 오늘 미역국 먹고 싶어.”라며 웃었다.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달궈진 주물냄비에 얼마 남지 않은 참기름을 넣고 ‘치~익’ 소리를 듣던 그 순간, 마지막 참기름 한 방울을 털어내기 위해 냄비에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탁탁’쳐 떨궈내던 그 순간, 오열했다. 할머니가 남긴 참기름이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슬펐고, 이모와 사촌들 모두가 받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닌 참기름이었기에, 몰래몰래 쥐여주며 “가방안에 얼른 집어 넣어래이~”하는 할머니 모습이 그리웠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925년에 태어난 안신자 할머니는 내 아들,딸에게 99라는 숫자의 왕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남았고, 엄마와 이모들에겐 남아선호사상의 전형적인 어머니로 남았으며, 삼촌들에겐 지켜야만 하는 동기(同氣)간의 우애로 남았다. 그리고 나에겐...
사소한 참기름으로 오열하게 했던 나에겐...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애써 되뇌어 보려고 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다짐으로 남았다.
할머니가 현명한 노인으로서 인생의 한창때를 살고있는 나에게 멋드러진 말들을 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할머니의 죽음이, 할머니의 떠남이 나에게 죽음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게 했으며 그렇게 할머니의 종결이 ‘훌륭한 어른이 되자’라는 내 인생 다짐의 시발로 남겨졌다.
스벤 슈틸리히는 다시금 나에게 질문하게 한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남겨지는 것과 남기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내 다짐은 잘 지켜 지고 있는지..
사람의 인생은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떼어내고 존재할 수 없고, 그 관계는 매 순간 주는 것과 받는 것의 연속이다. 그래서 관계가 시작될 때 유지될 때 그리고 끝날 때 우리는 받은 것을 남기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며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남겨지기도 한다.
책에서처럼 우리는 사후세계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개인적으로 그것이 궁금하지도 않다. 그러나 나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았던 관계에 대한 보람, 그리고 그러지 못했던 관계에 대한 연민이 나의 마지막에 후회나 두려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35세 결혼, 36세 출산을 하면서 나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부모 자식의 관계가 생겼고 그 관계가 너무나 대단히 소중하고 귀하다. 내가 자주 하는 말들이 남아 내 아이들이 따라 하고 나의 취미와 습관을 아이들은 이질감 없이 받아들인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나의 삶이 노출되고 아이가 보이는 본인들의 태도에 엄마의 무게를 느낀다. 내가 만드는 아이와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의 맛이 점점 더 좋아지고, 기꺼이 내어지는 전에 없던 마음에 막내딸의 롤을 충실히 한 과거의 내가 놀란다. 이러한 이유로 앞으로 남겨진 나의 날들에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씩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훌륭한 어른이 되기를 애쓴다.
훌륭한 어른으로 남겨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할머니의 종결이 나에게 이리도 거시적인 고민의 시작이 된 것은 아마도 당신 자식들에겐 남아선호사상으로 남겨졌을지언정 적어도 당신과 손주들의 관계에서는 손자 손녀가 아니라 그저 귀여운 손주들로 충실히 대해 줬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내게 남겨진 마음이 내가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매 순간 사랑의 표현에 충실할 수 있게 한다.
내 나이 마흔 둘. 나에겐 두 명의 아이가 있다. 부모로서 내 아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고 그 사랑을 기반으로 아이 스스로 세상 속에서 겪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시간이 흘러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내 아이들이 나와의 관계 속에서 남겨진 소중한 것들을 되뇌며 ‘우리엄마 훌륭한 어른이었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