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워더링하이츠 그리고 그 속의 작고 따듯한 정원.

에밀리브론테 作 폭풍의언덕을 읽고..

by 김윤정

바깥으로 나있는 창에 예쁜나비 한마리가 다가와 봄햇살을 받으며 유리창을 두드리지만 작은창을 가진 아이는 바깥으로 나있는 창을 열지 못해 답답하다. 어쩌면 창이 너무 작아 언뜻보기에 예쁜 봄 풍경 같지만 실제로 나가보면 폭풍우가 휘몰아 치기 전의 잠시 고요한 상태일 수 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마음에 작은 창을 가지고 난다. 처음엔 태고의 탯줄로 연결된 엄마와 아이 처럼 너무 작아서 세상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따듯하고, 반대로 또 얼마나 냉혹한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 세상의 사랑을 듬뿍 머금은 후에는 당면하게 될 차가운 위기들을 담담하게 이겨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게 된다. 아이가 가진 그 창이 커지고 아이와 세상을 연결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사랑과 신뢰와 걱정과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람은 서로에게 의존적인 존재이며 사람의 경험이란 당장은 그런것 처럼 느껴지지 않아도 아주 힘이 세다.

20대 초반에 지체장애우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다년간 한 적이 있다. 자발적으로 수행하고자 했던 나의 봉사에 대한 의지가 복지관 선생님께는 그다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던 듯하다. ‘이렇게 잠시 왔다 가겠지..’라는 경험에 의거한 적당한 확신? 그런데 그 적당한 확신을 비웃기라도 한 듯 참으로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더랬다. 그렇게 타의에 의한 오해를 자발적으로 해결하고 복지관 선생님 이면의 걱정은 다시 안 올 뜨내기 선생님을 기다릴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게 힘든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복지관이 있던 송파구의 대단지 아파트가 재개발이 되면서 복지관은 이전했다. 그즈음에 나는 더이상 봉사를 지속할 순 없었지만 “돈많은 친구들은 복지관와서 활동 안하지~ 여긴 정말 힘드는데 엄마가 일해야 해서 돌봐줄 수 없는 애들이 많이 와~”라던 선생님의 말씀이 이내 맘에 남았고, 직장인일때도 아줌마가 되어서도 꾸준히 아이들을 위한 봉사를 하겠다는 힘 센 결심으로 남았다.

아이를 지나지 않고 어른이 되는 사람 없고 지나온 과거에서 겪은 경험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나의 현재와 미래에 발현한다. 그래서 나와 지나칠 수많은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에 작게나마 따듯하게 든든하게 머물기를 애쓴다. 특히 나와 인연(因緣)한 아이에게 좀 더 따듯하길, 좀 더 기다려 주길, 좀 더 크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길 노력하고 조금만 덜 아파하고 조금만 덜 탓하기를 바란다. 히스클리프를 보면서 난 이시대의 금쪽이를 생각했다. 든든하고 따듯한 어른들이 좀 더 오래 그 곁에 있었다면, 그래서 그 아이가 마음의 창을 스스로 크게 내어 빛을 양껏 머금고 저 멀리서 몰려오는 먹구름도 의연하게 대면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어른이된 상처 많은 아이의 처절하고 뾰족한 울부짖음이 아프고 처연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산다. 그 언덕속 집에서 덜 스산하게 더 따듯하게, 덜 외롭고 더 행복하기 위해 저마다의 정원을 가꾼다. 태어나보니 남들보다 더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워더링 하이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내 세상을 작은정원에서부터 시작한 두 번째 캐시처럼 그렇게 각자의 워더링 하이츠에서 충실하게 주어진 날들을 애쓰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가꾸어진 작은 꽃밭들이 아주 조화롭게 어울려 크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할머니의 종결(終結)이 나의 시발(始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