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作 '은하'를 읽고..
"이제 회사에서의 여러분들의 포지션과 이미지는 본인이 만드는대로, 본인의 노력으로 점점 그렇게 되어질 것입니다. 필요한 구성원이길 원한다면 필요한 인력임을 늘 어필하고 노력하고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십수년 전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후배들의 마지막 교육때 선배인사로 내가 했던 말이다.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진 S사의 신입사원 그룹입문교육. 당시 입사5년차인 선임들은 부서내 추천과 사측의 차출로 마법의 자켓을 입고 '지도선배'라는 타이틀로 마음껏 본인들의 노고를 뽐냈더랬다. 지도선배에게만 주어지는 자켓과 벳지는 '과정본부'라는 무시무시하고 꼬장꼬장하지만 폼나는 지도선배들의 아지트에서는 별볼일이 없었겠으나 갓 들어온 신입사원-그곳에서의 교육이 직장생활의 첫번째 관문이라 여기던 그 반짝반짝한 후배들에게는 그들의 시야에 포착되는 순간 단정하게 호흡하고 잘보이기를 애쓰게 하는 무언의 힘이자 부러움이었다.
나의 갓 서른. 나라는 사람이 다른사람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싶은지 고민했고, 그러한 모습으로 인정받기 위해 어지간히도 노력했다. 밤을 새워 일하기 일쑤였고 일이좋아 밤을 새우는 것인지 밤을 새우는 모습이 합리적이길 바래 애써 잘난체 했던건지 잘 모르겠다. 그것이 현명함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최초의 직장 선배로 만난 그 후배들에게 직장인의 꿀팁이라도 되는냥 저리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맷집좋게 일했다.
그리고 몇해 후 원하던 회사로의 이직 기회가 생겼고 최종 인터뷰에서 본부장이 나에게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질문은 "내가 너를 어떻게 셀링하면 되겠어?"였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회사생활을 보낸사람 처럼 내가 그간에 보여지기를 원했던 나의 '김윤정'을 야무지게 대답했고 이직에 성공했다.
이러한 나의 경험과 당시의 현재에 나에 대한 정체성(正體性)은 내가 원하는, 내가 향하고자 하는 to-be의 모습으로 정해진다고 확실하게 믿고 있었다.
나의 마흔. 저집 아빠는 뭐하는지, 저집 애는 어느학원다니는지 궁금해 하는 엄마들이자 나의 동료들에게 더이상 뽐내고 싶은 나에대한 나의 to-be는 없다. 이런이유로 이제 나를 다그치거나 나를 무던히 애쓰는 일은 그저 나의 마음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훌륭한 어른이 되게 하는 나의 생각, 나의 습관, 나의 욕구와 욕심까지..
누군가에 보여지는 모습이, 내가 정해놓은 나의 틀이 이제는 점점 무용해 짐을 느낀다. 남편과 다툰 어느날 아침 환기를 위해 활짝 열어둔 겨울의 공기가 따듯하고 큰 덩치의 그를 한번쯤 꼭 안아주고 싶어진다 느껴진다면 그냥 그저 말없이 다가가 힘껏 안아준다. 그렇게 좋은 하루이기를 마음으로 빌어주는것이 이제는 내가 원하는 나의 나이다. '이렇게 되면 행복하겠다..'보다 '지금 이것, 지금 이사람, 지금 이순간' 행복할줄 알기를 애쓴다.
인희의 모습에 빗대어 나의 삼십을 회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희가 정해놓은 '내가 어떻게,,' ,죄책감, 좋은딸의 상(像)은 그녀가 자기(自己)를 찾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쉬운일인지 알게하는 것을 방해하였으나 마치 죄많은 아비가 그녀를 돌본 것 처럼 인희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인희의 삶에서 처럼 누구나에게 행운이 그리 쉽게 오는것은 아니다. (자기의 내면을 묵인한 결과로 이생을 마감하고자 했던 그녀의 일탈이 그녀만 살게 한 사고는 필경 행운이다.)
열심히 자기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궤적을 가지고 산다. 그 궤적이 각자의 사연과 각자의 인연으로 수정될 수는 있겠지만 그 또한 각자의 궤적이다. 나만의 궤적이 나와 함께 하는 소중한 이들의 궤적을 존중하며 서로 어울리며 나의 오십에도 아름답고 적정한 궤적으로 빙글빙글 은하의 한 점 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