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30평 전세집을 얻이 두 아이를 키우는 건 변호사에게도 생각보다 버거운 일이다. 특별히 낭비한 것도 없는데, 월말이 되면 통장은 늘 빠듯하다. 아이들 교육비, 식비, 몇가지 잡비에 대출을 갚고 나면 남는 돈은 거의 없다.
얼마 전, 대출 상담을 받으러 은행에 갔을 때, 대출 담당 직원이 내 원천징수영수증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변호사인데 소득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요?" 진짜 내 소득에 놀라서 반문한 것이었거나 아마 그가 소득 신고를 누락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한 듯하다. 어느 쪽이든 돌이켜보면 상당히괘씸한 일이지만 그 때는 맹세컨대 조금의 불쾌함도 느끼지 못한 채 "아 예 그러네요"하고 말았다. 나도 내 소득이 변호사가 되기 전 예상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근로소득세를 성실히 납부하는 직장인 일 뿐, 숨길 소득도, 따로 챙길 여유도 없다.
법대에 진학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할 때까지만 해도 내 가슴엔 하늘같은 꿈이 있었다. 판검사가 되어 세상의 거악을 척결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정도의 숙명같은 이상과 나만이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추호에라도 하고 있을 판검사 동기들을 비웃기에 여념이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변호사가 되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형 로펌의 일원이 되었다. 서초동 개업가의 풍파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다행이고, 그만큼 울타리에 갇혀 살고 있다는 것이 불행이다. 그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이상과는 달랐다. 이 곳에서도 꿈은 있다. 돈의 꿈.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도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의미있는 일로 간주되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만난 대기업 임원이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씁쓸한 얼굴로 잔을 부딪히며 말했다. "꿈은 하늘에서 시작해서 결국 내 집 지붕에 떨어지지." 젊은 시절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큰 꿈을 품었겠지만, 가정을 꾸리고 나면 가족을 돌보는 일이 그 꿈을 대신한다는 의미였다. 말석에서 들을 당시에는 사치스러운 술자리 농담처럼 들렸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나도 생활인이다.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가장이고, 한달 일을 쉬면 곧바로 삶은 궁핍해질테다. 그 돈의 꿈이라는 것도,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 만큼의 꿈이 아니다. 가족이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내가 매일 버겁게 이루고 있는 현실적인 꿈이다. 배고플 일이 없도록 할뿐 부자가 되려고 하는 일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신경 거슬리는 일이 있어도 보란 듯이 문을 박차고 떠날 용기조차 가질 수 없는, 그저 안정된 수입을 유지해야만 하는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