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냄새 풍기며 재판가는 길

파트너 다이어리 11일차

by 이너픠스


직업이 변호사라고 하면 "말씀 잘 하시겠어요"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이 "술자리 많으시죠"다.


숙취로 고통받으며, 머리가 깨질 듯 아픈 날 눈을 떴는데, 그날 처리해야 할 서면과 미팅 생각이 겹치면 일을 그만두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다.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다짐이 하루도 못 갈 것을 안다. 대체로 그 날 밤에도 술자리가 있으니까.


물론 술자리가 매번 힘든 건 아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술실력이 남만큼은 되어서 술잔이 한두번 오기면 내가 신나서 떠들 때도 적지 않다. 사건 이야기는 1차에서 끝나더라도, 인간적인 신뢰는 2차, 3차의 술잔 속에서 쌓인다. 그 술잔 속에는 의뢰인의 고민도, 기대도 함께 담겨 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그 술자리의 결과는 고스란히 몸에 남는다.


때로는 일주일에 5번 술자리가 있는 경우도 있다. 비장하게 시작한 한주간 몸과 마음이 시들어 과정은 대략 이렇다.


월요일: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벌써 사무실은 가기 싫고, 몸은 무겁다. 이번 주는 고난의 행군이다. 어떻게든 하루라도 비워보려 했지만 무참히 실패했다. 이 주가 끝나길 간절히 바란다.


화요일: 어제의 술자리로 머리가 무겁다. 아직 남은 나흘 관의 술자리들을 생각하면 절망감이 든다. "오늘 저녁 술자리를 왜 잡았을까?" 후회가 밀려오지만, 이미 잡힌 약속을 깨기는 어렵다.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알람이 울리는데도 끄기 바쁘다. 천만다행으로 오전에 특별한 일정이 없지만 오후 회의와 재판은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다. 덜큰하게 취한 상태로 눈만 부릅뜬 채 시간을 보낼 것이다.


목요일: 해가 들이치는 침대에서 눈을 뜨고, 핸드폰을 열어 택시 결제 시간을 확인한다. 어제 몇 잔 이후로 기억이 없다. 카톡에는 술에 취해 보낸 기억나지 않는 메시지와 사진들이 가득하다. 기특하게도 집에 잘 들어왔고, 인사까지 마친 것 같다. 몇개 메일을 누운채로 마치 사무실에 있었던양 꾸며 보내지만 그마저도 여의치않다. 안도하며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잠에 빠진다.


금요일: 한계다. 배를 설사로 비운지는 벌써 몆일이 됐다. 이번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기어이 금요일이 되엤으니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지만, 저녁이 되면 또다시 술자리가 열린다. 술자리에선 굳이 내가 자제하지 않아도 동료들이 술을 권하지 않는다. 그만큼 내 얼굴이 지쳐 보였던 것일까. 속이 울렁거리지만, 맥주 한 잔을 들이키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는 것 같다. 멀쩡한 정신으로 다른 사람들이 취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이쯤되면 약간 알콜 의존증 비슷한 증상이 온다. 낮에는 술병도 보기 싫다가 오후 늦게쯤 되면 술취가 살짝 깨면서 술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알콜성 건망증은 일상적이다. 그래서 일정, 할 일, 주요인사의 신상 등등 기억해야할 모든 것은 핸드폰에 적어둔다.


직업을 탓하다가도, 동료들을 보면 누구나 이렇게 살지는 않는 것 같아 내탓인가도 싶다. 이번주도 일주일에 세번만 마셔보자는 헛된 약속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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