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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트랑책이랑 Aug 14. 2023

[영화 리뷰] 힐빌리의 노래

삶을 지탱하는 나의 깨어진 등껍질에 바치는 글

힐빌리, 낯설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힐빌리’는 미국의 중남부 애팔래치아산맥 지방의 농민과 나무꾼들 사이에서 발생한 오래된 민요, 이 지방 사람들을 시골뜨기의 개념으로 일컫는 용어라고 한다. 주인공 J.D.의 가족과 선조들이 살아온 터전이 그곳이다.      


가난한 시골 출신이지만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3개나 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예일대 로스쿨을 다니는 J.D.. 로펌 취업을 위해 저녁 식사 면접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J.D.는 누나 린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누나는 엄마가 헤로인을 과잉복용했다며 고향으로 급히 내려와 달라고 한다. 하필 취업 면접 주간이라 잠시 망설이지만, 어릴 적 엄마와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J.D.는 고향으로 가기로 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고향 오하이오에서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시작된다.     


베브는 J.D.의 엄마다. 10대 때 아이를 낳은 베브는 혼자서 J.D.와 린지를 키우며 살아간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간호학교도 다녔다. 베브는 400명이나 다니는 학교에서 2등을 할 만큼 공부를 잘했지만 대학에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베브는 자신을 지켜주던 아버지, 즉 J.D.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자포자기한 삶을 살아간다. 베브가 신중하지 못한 동거와 결혼을 하며 J.D.와 린지의 삶 역시 늘 불안정하다.


섬세하고 배려심 깊은 아이, J.D.는 방황을 한다. 총명하지만 가정 상황 때문에 학업에 전념하지 못한다. 자칫 노력하지 않아서 엄마처럼 ‘기회’를 잃을지도 모를 상황이다. 그러나 다행히 베브와 달리, 그에게는 든든한 구원자가 있다. 외할머니는, 과거에 똑똑한 딸 베브가 여기저기 치이며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할 때 더 붙잡아주지 못했던 과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위기의 순간마다 확고하게, J.D.를 붙들었다. 결국 편찮으신 할머니가 약을 살 돈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부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J.D.는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도 하며 좋은 성적을 받기 시작한다.     


돈이 없어 강제 퇴원 조치된 베브, 잠시 모텔에서 지내기 위해 J.D.와 함께 모텔로 가는데 다시 약을 하려다 J.D.에게 뺏긴다. 불안정한 상태로 침대에 누운 베브는 J.D.에게 같이 있어 달라며 손을 뻗는다. J.D.는 면접에 늦지 않기 위해 바로 돌아가야 한다. J.D.는 베브의 손을 꼭 잡는다. J.D.는 그렇게 오하이오에서의 과거와 현재를 받아들인 듯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족과의 기억과 예일대에서의 여자 친구와의 행복한 때를 떠올린다. 그리고는 베브에게, 사랑한다고, 행복하자고,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하지만 여기 머물 수는 없다고,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베브는 아들의 손을 놓는다. 베브는 그렇게 각자의 삶이 있음을, J.D.가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함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리고 코네티컷주로 돌아간 J.D.가 2차 면접 대기실에서 호명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에게 힘을 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로펌의 화려한 저녁 식사 면접을 앞두고 잔뜩 주눅이 들었던, 힐빌리 출신의 J.D.가 고향에 와서 과거와 현재를 함께해 온 가족이 자신을 지탱하는 ‘유산’임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강가에서 발견한 거북이가 비록 깨진 등껍질이라도 그 등껍질을 떼어내 버리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듯이, 완전하지 못하고 설령 못났더라도, 웃음과 눈물이 범벅되어 공유된 ‘유산’은 끈끈하고 힘이 있다는 것을, J.D.는 자신과 가족들의 과거와 현재의 생채기를 돌아보고 서로 보살핀 기억을 떠올리며 깨닫는다. 그렇게 J.D.는 과거와 현재를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당당하게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듯하다.      


문득, 나의 등껍질이 떠올랐다.

그리고 질문이 떠올랐다.      

나의 삶에서 구원자는 누구였으며, 나는 온전히, 등껍질의 의미를 발견하는 여행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첫 물음의 답은 알고, 두 번째 물음의 답은 아직 모른다.

다만 영화를 본 후, 나의 영혼에, 나의 등껍질을 향한 ‘감사함’, 한 스푼을 더한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J.D.의 실제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였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온 J.D.의 독백으로 글을 마친다.


"나에겐 두 번의 기회가 필요했다. 처음엔 할머니께서 구해주셨다. 두 번째로 날 구한 건 할머니의 가르침이다. 우리의 시작이 우릴 정의하더라도 매일의 선택으로 달라질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완벽하진 않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들에겐 없던 기회를 내게 주었다. 어떤 미래가 날 기다리든 그건 가족 모두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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