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동생과 점심으로 낙지볶음을 먹은 날이었다. 빨갛게 양념이 잘 스며든 낚지에 소면을 곁들여서 먹으니 매콤한 맛이 입안에 퍼지면서 ‘맛있다’라는 생각과 ‘맵다’라는 생각이 겹치고 중화된 맛이 떙겼다. 의식의 흐름대로 소시지에게 향하고 한입 물어 매웠던 입안을 가라앉히고 고소한 소시지 맛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 어릴 때 소시지 먹던 친구가 너무 부러웠어.”
“언니 왜? 그렇게 소시지가 맛있었어?”
“아니, 지금은 그 친구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데..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초가집인 거야. 그런데 친구 부모님이 젊었어. 부모님은 일 나가셨는지 안 계시고 식탁 위에 소시지 반찬이 있는 거야. 그때 충격을 받았지. '이걸 매일 먹는다고?' 정말 우리 집 하고 다르다고 생각했어.”
“언니네는 형편이 안되었어?” 사무실 동생은 약간 측은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집도 우리 집이 더 나았지, 근데 우리 부모님이 나이가 많으셨어. 그래서 반찬이 죄다 토속적인 반찬이었지. 마늘지, 콩자반 그런 거.”
그때 감정은 아주 희미해졌는데도 그 친구를 부러워했던 감정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 분홍소시지는 이후에도 나에게 상처를 남겼다.
어릴 때 잊지 못하는 김밥사건이 그것이다. 김밥 재료들도 여러 개가 있겠지만 분홍소시지는 제일 중요한 재료였다. 아무리 80년대 초라고 해도 그 시절에 김밥을 못싸오는 아이들은 드물었다. 그 드문 아이 중에 내가 그런 아이였다. 항상 못 싸고 온 것은 아니었다. 설사 못싸오더라도 야외에 나가서 도시락을 먹을 때는 그냥저냥 밥을 먹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비가 와서 교실에서 밥을 먹는 일이 발생을 했다. 그날 나는 도시락을 여는데 수치심이 머리끝까지 내달아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맨밥이었다. 교실에서 왔다 갔다 하시던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도 당황한 눈빛이었다. “ 어머니가 편찮으시니?” 아마 내 기억으로는 선생님도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서 물으신 것 같고 나는 뭐라고 얘기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나이 많은 부모와 사는 것은 불리한 상황에 몰릴 때가 많다. 상황에 맞게 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때그때마다 임시로 큰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미 지친 부모보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자매들의 돌봄이 간헐적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좀 더 예뻤거나 야무진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타이밍이 너무 안 맞게 태어난 어린아이가 여전히 마음 한편에 외롭게 남아 있다. 그냥 보살핌은 어린 나에게 또래 애들이 갖는 만큼한 받아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그냥 방치된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그 당시는 국민학교 시절에 김밥도 없고 운동회 날이면 집에 와서 밥을 먹던 참 귀하지 않은 존재였던 나, 나를 알아봐 주는 어른이 없던 황량한 어린 시절이었다. 나만을 위한 이벤트가 없던 시절에 나와 몇 살 차이 안나는 조카들은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았다. 아버지는 내 운동회에는 안 왔지만 조카들 운동회에는 가서 용돈을 쥐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