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도 그리운 이유
"케어 일이 배우고 싶다면 언제든지 말해줘."
면접을 봤던 관리자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본어도 못하고 노인복지 경력도 없으니까 보조를 해야만 해.'라고 자신감이 떨어진 나에게, 언제든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이야기 하라는 그 말은 울컥할 만큼 따뜻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일본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서 꼭 케어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생겼다.
일본은 시프트제로 원하는 요일에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월말이 되면 다음 달은 언제 근무가 가능한지 체크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일정이 있으면 언제든지 다른 요일로 바꾸거나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또 일하는 사람이 많아서 매일 시간마다 다양한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일할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어르신 이름이다. 사람 이름을 대체로 잘 기억하는 나지만 기본 세 글자부터 시작하는 일본어 이름은 익숙하지 않았다. 또 어르신의 옷이나 양말, 속옷 라벨에는 한자 이름이 적혀있다. 오마이갓. 처음 빨래를 개고 방에 가져다 놓을 때가 가장 어렵고 땀나는 순간이었다. 그때 함께 일했던 직원에게 어르신의 한자 이름을 물어보다가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든 어르신 방에 들어가 옷에 적힌 한자를 노트에 쓰고 이름을 매치했다.
감동은 그다음 날이었다. 어제 함께 일했던 직원이 나에게 종이 두 장을 주었다. 알고 보니 어르신의 방 위치와 한자와 가타카나가 적힌 이름의 종이였다. 그 종이를 보고 울컥했다..
"나카니시상..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벅찬 감동을 길게 설명하며 말하고 싶었지만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고맙다는 말이 내가 일본어로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었다. 그녀는 천사가 틀림없다. 탈의실에서 만난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20대부터 어르신을 케어했고 지금은 30대라고 했다. 외국에서 일을 하는 내가 대단하다며 본인은 할 수 있는 외국어가 없고, 낮아지는 내 자신감도 높여주었다.
하루는 어르신 저녁 식사를 도와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목에 사례가 걸려 기침을 하게 되었다. 그때 같이 일하던 직원이 나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주었다.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케어받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정말 별거 아닌 사소한 행동이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는 날 중 하나이다.
그 외에도 많은 직원이 내게 친절했다. 천천히 이야기해 주거나, 직접 보여주며 설명해 주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해주었다. 일본 사람들은 메이와쿠(민폐를 끼치지 않는) 문화라고 해서 속마음을 숨기는, 즉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보여준 웃는 얼굴과 사소한 친절은 외로운 일본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게 외국인이든, 함께 일하는 동료든, 케어해야 하는 어르신이든. 내가 받은 친절과 따뜻함을 생각하며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일본 요양원은 내게 많은 것을 느끼고, 알게 해 주었던 곳이기에 여전히 그립고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