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다움과 여행
미지 희타님의 많은 게시물들과 글들을 보면서 좀 많이 찾았던 키워드가 "자기다움"이었어요. 나로부터 시작한 거. 자기다움. 그래서 희타 님이 생각하는 자기다움이란 뭘까? 그리고 지금은 내가 자기답다고 생각하는지 내가 지금 나를 사랑하는지 그런 것도 궁금했고, 아니면 자기답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희타님에도? 그런 게 궁금했어요.
희타 그럴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고 좀 촘촘하게 오가는 것 같아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답지 않았는데 잠시 나답다가 또 잠시 나답지 않았다가. 아니면 하루 안에서도 나다운 시간이 있었는가 하면 누굴 만나냐에 따라 또 나답지 않아지기도 하고.
미지 평소에 자기다움에 대해서 좀 생각을 많이 하시나요?
희타 안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오히려 자기다우려고 하면 더 약간 뚝딱거리게 돼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가만히 있으려고 해요. 그러다 뭔가 생각이 나면 그걸 해야지 이러고. 근데 보통 뭔가 생각이 나서 그거를 추진력 있게 진행하면 그게 결국에는 나한테 맞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생각날 때까지 계속계속 떠올리고 생각하고 메모하고.
처음에 제일 처음에 내는 아이디어들이 보통 타인의 욕망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타인의 기대, 내가 들었던 말들,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 이런 것들이 아무래도 섞여 있어요.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것, 트렌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 이런 것들이 다 섞여 있어요. 그거를 계속 채에 거르고 거르고 거르고 거르고 나면은 뭔가 남는데 그걸 위해서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는 그 지난한 과정을 참아내고 견디는. 그런 게 저도 모르게 나다우려고 하는 행동인 것 같아요.
미지 오늘의 키워드인 것 같아요. 오늘 본 전시도 그렇고요. 저는 전시 보는 거 되게 좋아하고 많이 보면 대부분 작가들이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가 있단 말이죠. 그게 뭐 좀 어려울 수도 있고. 근데 이 전시 같은 경우에는 뭔가를 뭔가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그냥 다들 그냥 나.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거. 나는 이런 사람이야, 가 담긴 전시인 것 같아서 "고유함"이라는 키워드도 많이 생각했어요. 저는 작가님을 인터뷰하고 싶었던 이유가 그거거든요. 고유한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해서요. 저는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게 없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계속 그런 게 있는 사람을 존경하고 선망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부산 중앙동 고단한 영혼에서 열린 <고단한 단체전>
희타 저 알았어요. 뭔지 알았어요. 자기다움은 애쓰지 않은 모습인 것 같아요. 애쓰는 순간 그 길을 잃는다고 생각해요. 오늘 저희 엄마랑 우연히 마주치셨잖아요. 대표님 보자마자 너무 아름다우시다고 그랬잖아요. 사실 그런 게 애쓰지 않아도 다 드러나고 티가 나고 새어 나오는 거예요.
저도 대표님한테 나다움을 보여야지, 고유한 내 모습을 보여야지! 하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왜 나를 인터뷰하려고 할까? 그 생각을 했었단 말이에요. 난 그냥 너무 평범하게 했었는데 이렇게 생각이 드는데. 여행을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요. 근데 정말 다 다르거든요. 근데 그게 다 고유함으로 다가오지 그게 넌 틀렸어! 이렇게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에요. 근데 그 사람들이 그렇다고 일부러 특별해 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운 거라 자기가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지 않을까. 근데 그게 나랑 합의가 돼야 되는데. (웃음) 노력하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인데 애쓰지 않으니까 의식을 못하고 그러니까 없다고 생각해서 애쓰게 되고 그러면 돌아가게 되고 길을 잃고.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특히 학교 다닐 때.
미지 맞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희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랑받고 싶어서 꾸며내고 그게 나답다고 착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결국에는 알게 됐죠. 아니구나.
아 좀 재밌는 거 생각났어요. 제가 최근에 대화를 할 때 되게 많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찰 때가 자주 있거든요. 근데 그게 목소리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 만나서 내는 목소리가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목소리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어떤 보컬 학원에서 자기 진짜 목소리를 찾고 싶은 분들을 위한 원데이 클래스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냉큼 갔더니 선생님이 저보고 제 목소리를 안 쓴대요. "희타 씨 목소리가 되게 무거운 거 알아요? 원래 허스키하고 상당히 무거운 목소리예요." 이러는 거예요. 되게 깊고 굵고 무거운 목소리인데 제가 그걸 쓰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고. 그 말을 듣는데 좀 충격받았어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기 때문에.
근데 저는 그게 제 목소리라고 생각 못했거든요. 제가 사람들 앞에서 내는 좀 높고 상냥하고 그런 가벼운 듯한 목소리가 제 목소린 줄 알았는데 사실은 환경에 맞춰서 내는 꾸민 목소리였던 거예요. 그리고 선생님이 자기 목소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은 주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저도 어떤 환경에서 그런 목소리를 내게 됐는지 생각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데 좀 울컥했어요. 내가 어쩌다 목소리를 꾸며서 냈을까라고 생각하니까 막 장면들이 줄줄이 떠오르더라고요. 결국 사랑받고 싶어서 그랬던 거예요. 뭔가 새로운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싶고 나를 친근하게 여겨줬으면 좋겠고. 어릴 때는 제가 진지하다고 애들이 싫어했어요. 싫어했다기보다는 좀 피했어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들이랑 놀았거든요. 선생님들이랑 친구하고 놀았어요. 그게 저한테 조금은 상처였던 거예요. 그러고 대학생 때는 사투리도 쓰고 목소리도 굵고 무거우니까 애들이 절 무서워했어요. 그래서 친구들 억양을 따라하고 목소리도 높게 상냥하게 했던 그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뭔가 되게 위로받았어요.
또 재밌는 게, 그게 제 글에도 해당이 되고 작업이나 활동과도 다 이어져 있더라고요. 글도 제가 무거운 걸 자꾸 쓰게 된다는 고민을 누구한테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제 작품들도 사실 엄청 말이 없고 저한테는 좀 무겁게 느껴져요. 근데 그게 나인 거예요. 이번에도 알았죠. "이것이군. 이게 나이군." 책도 사실 내놓는 게 두려웠어요. 너무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할까 봐. 되게 가볍고 유쾌한 글을 내보내고 싶고 사람들도 마냥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고 근데 그게 목소리로도 다 드러났던 거예요. 그게 참 신기했어요. 자기다움이 다 연결돼 있는 거죠. 나의 몸짓이나 목소리나 이런 모든 게 연결돼 있는 게 너무 신기했고 내 목소리를 하나 찾은 것만으로도 많은 고민이 한번에 해결되는 게 참 재밌었어요. 그리고 나 되게 사랑받고 싶었구나, 내가 이런 목소리를 내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꾸며냈구나, 이제는 진짜 내 목소리를 좋아하고 아껴주고 꿋꿋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보컬 선생님을 만났던 건 뭔가 한 층 더 나다워지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나다움에 대해 고민은 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찾아가고 있는 것 같네요. 얘기하다 보니까.
미지 재밌다. 뭔가 많은 걸 들은 것 같네요. 오늘 안 그래도 약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책방에서 듣지 못했던 목소리를 들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희타 맞아요.
미지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약간 무거운 질문을 했다면 또다시 가볍게, 또 희타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여행! 벌써 신나셨네요. (웃음) 여행은 희타님께 어떤 의미인지 왜 좋아하시는지 그 가장 좋았던 여행은 뭐였는지 궁금해요.
희타 어렵다. 여행은 뭘까.
비행기에 딱 탔어요. 딱 내렸어요. 숙소에 들어가서 짐을 풀었어요. 그러고 첫 외출. 그때부터 저는 엄청, 이것도 아까 얘기하던 거랑 연결이 된다. 나답다고 느껴요. 내가 살아있음을 느껴요. 뭔가 되게 자유롭게 느껴요.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아. (웃음)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어! 근데 나는 내가 너무 좋아. 진짜 편해요. 내가 너무 편한 시간. 내가 정말 편하게 느껴지는 시간. 나를 싫어하지 않는 시간. 평소에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냥 고민이 별로 없고 뭔가 연결된 듯 연결되지 않은 그 감각이 되게 자유를 주고, 그때그때 내가 어떻게 행동해도 그게 거짓말 같지가 않아요. 그게 진짜 신기해요. 그러니까 똑같은 행동을 해도 여행을 가서 하면 거짓말 같지 않아요. 그냥 놀이 같아요. 저에게 여행은 정말 최고의 놀이다. 그냥 가서 내가 뭘 해도 그냥 나의 삶을 사는 것 같아.
여행을 가면 행운이 넘쳐나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그래서 이게 운이 어디까지 이어지나 기대되고 운이 안 좋을 때도, 어떻게든 긍정적인 상황으로 흘러간다는 걸 믿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안 좋은 상황이 있어도 변수가 있어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고 긍정적인 상황으로 전환이 빠르게 되고.. 좋아요. 즐거워요.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재밌어요.
미지 어디가 제일 좋으셨나요?
희타 장소로만 따졌을 때는 뉴욕이 제일 좋았어요. 뉴욕은 정말 정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것이 주는 어떤 편안함이 정말 컸어요. 그리고 제가 영화를 보면서 키웠던 로망들이 그곳에 갔을 때 깨지는 게 아니라 더 강화되더라고요.
미지 어떤 영화였나요?
희타 뉴욕이 나오는 영화. 많겠지만 『프란시스 하』. 그걸 영화관에서만 세 번 봤어요. 그런 영화가 정말 없는데 20살 때 서울에 혼자 한 달 살면서 처음으로 본 심야 영화였어요. 심야 영화 보는 게 꿈이었는데 이룬 거예요. 근데 그 영화가 『프란시스 하』였고 너무 좋았고 재개봉할 때마다 찾아가서 봤어요. 그레타 거윅의 팬이 돼서 신작이 나오면 항상 보고. 그런 의미가 있는 영화예요. 그 배경이 뉴욕이고 그러다 보니까 뉴욕을 너무 가고 싶었는데 가게 됐고 거기서 또 되게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고 외롭기만 하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혼자 하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더 짙어지는 것 같아요. 뭔가 항상 요란하기만 하면 되게 그냥 즐거웠어! 이럴 텐데 되게 어두운 시간도 있기 때문에 그게 더 애틋해지는 것 같고 그게 뉴욕이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하는 여행은 사실 어디가 좋았다기보단 어딜 가서 누구를 만나서 좋았다가 더 커요. 그게 좀 달라진 점. 코로나 전후로. 뉴욕은 코로나 전에 갔었고 책을 내고 나서 떠난 여행에서는 그 공간보다는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컸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거는 최근에 했던 여행에서 프랑스에서 온 커플을 만났어요. 그 커플이랑 일주일 동안 같은 숙소에서 지냈는데 우리가 숙소의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 셋이서 서로 알게 모르게 의지하고 가끔 여행도 같이 하고. 그리고 일본어를 조금씩 저도 공부해왔고 프랑스인 친구도 공부를 조금 해 와서 아침에 같이 일본어 동화책을 멋대로 읽고 해석하는 (웃음) 그런 소소한 일들이 있었어요. 그런 식의 교류 그러니까 그 과정에서 말로 하지 않은 소통이 있었거든요. 눈빛과 어떤 마음, 제스처들. 머리를 쓰다듬어준다거나 눈빛으로 애정이 드러난다거나 알게 모르게 사진을 찍어준다거나 같이 웃는다거나. 그런 게 쌓이고 쌓여서 정말 추억이 됐어요. 헤어질 때도 막 눈물이 나고, 지금도 계속 엽서를 주고받아요.
제가 필름을 찍으니까 제가 그 친구들을 찍어주기도 하고 친구들이 제 카메라로 저를 찍어주기도 했는데 그 사진들에 너무 드러나는 거예요. 애정이. 왜 사진을 보면 그 사람의 시선이 보인다고 하는데 그전에는 그걸 잘 몰랐어요. 남의 사진을 볼 때는 느껴지지만 내 사진을 볼 때는 잘 못 느꼈는데 그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 정도로 되게 강렬했나 봐요 감정이. 그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헤어질 때까지 일주일 동안의 흐름이 사진으로도 보이니까. 거기다 반대로 그 친구들이 찍어준 제 사진을 보는데 또 보이고 느껴져요. 그 경험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진이 보물이 되는 순간이었죠. 그걸 다 인화해서 그 친구한테 보냈는데 그걸 너무 좋아해주고 그런 게 자꾸 쌓이니까, 마음을 열고 정말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진심으로 대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소통하면 이렇게나 행복한 일이 생기는구나. 이렇게 애틋한 관계가 생기는구나. 정말 다른 언어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좀 크게 느꼈어요.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미지 저도 뭔가 제주도 한 달 살이 할 때 그런 경우들이 많았는데 여행지여서 오히려 그렇게 더 마음을 열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기억에 남는 게 저 좀 휴학하고 약간 좀 방황할 때 제주도 한 달 자리를 갔거든요. 그래서 저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주 2일 일하고 5일을 놀러 다녔어요. 근데 그때는 좀 이제 방황할 시기여서 절을 많이 다녔거든요. 제주도에도 절이 많아요. 관음사라고, 관음사는 한라산 올라가는 코스 중에 하나기도 하고 한라산 초입이어서 절이 진짜 산에 둘러싸여 있어요. 그리고 그게 진짜 느껴지더라고요. 좀 높은 지대에 있고, 뭔가 산의 정기가 있는 곳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되게 큰 절이었거든요. 거기에 혼자 가서 템플 스테이를 오래 하고 계시는 아주머니분이랑 한두 시간 수다를 떨었어요. (웃음) 그때 마침 제가 휴학생이었고 저는 사범대를 나왔고 근데 그분은 제주도에서 선생님을 하다가 교사에 약간 회의를 느끼시고 계신 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요즘 교육이 어떻고 하면서 그런 얘기를 같이 차 마시면서 한참 하다가 내려갔는데 이제 거기가 산이다 보니까 버스가 있긴 한데 자주 안 오고, 저는 뚜벅이였다 보니까 그래서 그냥 걸어 내려갈까? 했거든요. 쭉 걸어내려가면 큰길에서 버스를 탈 수 있어서. 근데 그 길이 완전 도로였거든요. 정말 도로고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은 조금 있는 그 길을 그냥 한여름에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래서 생각해 보니까 진짜 위험해 보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차가 쌩쌩 다니는데 어떤 애 여자애 혼자서 그렇게 걸어 다니고 있으니까. 그래서 어떤 차가 한 대 서가지고 되게 젊은 여자분이 먼저 내리셔서, 너무 위험해 보인다고, 우리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큰길까지만 태워주겠다. 신혼부부셨어요 그래서 차 타서 또 이야기하고, 그런 일화도 있었어요. "무슨 일 난 줄 알았다고, 왜 여기서 혼자 이러고 있냐고" (웃음)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만남들이 있었죠.
희타 맞아. 우연이 주는 즐거움이 자꾸 여행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미지 거기서 그냥 호의를 받은 거잖아요.
희타 맞아요. 저도 여행하면서 느껴요.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네?' 그거를 한번 느끼니까 현실로 돌아갔을 때 좀 아무렇지 않아 지는 것도 있어요. 나는 어딜 가나 누군가에게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그리고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누구에게나 사랑스러운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근데 정말 여행은 좀 다들 도피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저는 그냥 좀 내려놓는 일 같아요. 그냥 이렇게 갑옷이 있었다면 갑옷을 벗고 그러니까 맨몸으로 수영하고 헤엄치는 것처럼 피부로 느껴지는 것들을 온전히 다 느끼는 그런 여행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상태로 순수한 호의들을 많이 접하면서 인류애가.
미지 세상에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구나 아직 살 만하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희타 그런 걸 내려놨을 때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런 순간의 경험을 압축적으로 하게 되는 기간이 아닐까 여행이.
미지 맞아요.
이제 마지막인데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결국 또 물어보게 되네요. 앞으로의 계획.
희타 저는 이때까지 안 해본 걸 해보고 싶고 내년에 1년 정도 워홀을 가려고 하는데 그거는 그냥 긴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음, 지금은 계획을 다듬어가는 과정이 있어요. 일단 어쨌든 여행을 길게 갈 것이다. 그거는 변하지 않고. 가서 뭘 할 것이냐라고 하면 내가 계속 바라왔던 소원이 이루어지는 곳? 그런 데 가서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해보는 거.
그리고 여행하면서 일을 해보고 싶어요. 내가 안 해본 일. 몸 쓰는 일 같은 거요. 저는 제가 가장 빨리 할 수 있는 일이 책을 만드는 거여서 저한테 작가라는 직업을 부여했거든요. 그게 되게 의미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빨리 내 직업을 정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또, 여행을 하면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구나. 내가 작가라는 직업을 나에게 주었다고 해서 내가 꼭 그거를 붙잡고 있어야 될 필요는 없구나. 그냥 나는 나고, 나는 이거였다가 저거였다가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데 무엇이든 될 수 있구나. 그러면 다 해볼 수 있겠네?' 싶은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몸 쓰는 일을 너무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거고 요즘 레저 스포츠에 관심이 또 생겨서 여러 가지를 배워보고 있어요. 이제 그런 방향으로 에너지가 흘러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내가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좀 찾아가지 않을까.
미지 저도 청소 일을 해봤었거든요. 한 번 해보니까 괜찮아서 또 하게 됐어요. 원래 알바를 여러 가지를 해봤는데 편의점도 해봤고 과외도 해봤고 빵집도 해봤고 이렇게 하다가 한 번 제가 식당에서 잘린 거예요. 그래서 나는 식당 일이 너무 안 맞는 사람이구나. 하고 청소일을 하러 가게 된 거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거예요. 저는 일단 비위도 좋은 사람이고 그리고 서비스직이 아니니까 마음이 너무 편한 거예요. 사람을 대하지 않아도 되고, 청소 일은 성과가 바로 나타나잖아요. 내가 이만큼 움직여서 이만큼 깨끗해졌네? 그게 너무 뿌듯하고 되게 보람 있더라고요. 몸은 좀 힘들어도 마음이 되게 좋은 일이구나. 몸으로 하는 노동의 매력이 또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마지막 진짜 마지막으로 이거는 제가 궁금한 점인데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걷고 계시잖아요.
희타 그런가요? (웃음)
미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직장을 구하고 뭔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거에 대한 혹시 다른 길을 걷는 거에 대한 불안감은 없으신지? 저도 어떻게 보면 다들 동기들 거의 다 임용고시 쳐서 선생님 되거나 또 선생님을 준비하고 있거나 아니면 취업하거나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이렇게 다른 일을 하는 거가 많이 불안할 때가 많거든요. 작가님은 어떠실까 궁금했어요.
희타 그런 시기도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어떤 느낌이냐면 음,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다 아파트를 막 사요. 근데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남들과는 다른 걸 원하고 나만의 공간, 나만의 특별한 주거지, 아니면 그냥 오래된 빌라를 고쳐서 나답게 꾸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획일적인 것을 기피하는 그런 분들은 맹목적으로 아파트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도 있겠죠. 남들처럼 살고 싶어 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면서 그런 삶의 방식을 강화하고 강요한다고. 근데 저는 그렇게 비난하고 싶지 않아요. 나랑 다르다고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존중하고 싶어요. 그 말은 나도 존중받고 싶다는 말이고 그 마음을 너무 알겠잖아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 큰 불안은 없는 것 같아요.
만약에 누군가가 두려워하는 게 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느낀 불안을 나한테 투사해서 "너 왜 너 혼자 다른 거 해?" 이렇게 얘기를 하면은 그냥 그 사람의 말 뒤에 숨은 불안을 보고 두려움을 볼 것 같아요.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 불안과 두려움이 뭔지 나도 아니까, 저는 그걸 내가 테스트해보고 싶어요. 내 인생을. 내 인생은 내 책임이고 어쨌든 내가 수습하니까. 내 인생으로 한번 테스트해 볼게. (웃음) 그래 내가 한번 살아볼게 그렇게. 그런 다음에 어떻게 될지 내가 들려줄게. 근데 그거를 이제 저한테 얘기하는 거죠. 저한테 내가 이렇게 한번 살아볼 테니까 있어 봐. 살아보고 알려줄게. 지금 뭐 이제 여행에 돈을 자꾸 쓰려고 하니까 그 뒤가 물론 걱정되겠지만 알아서 잘 어떻게든 굴러갈 거야. 정 안 되면 손을 벌릴 수 있지 않을까? (웃음) 어딘가에서든 벌 수 있지 않을까 뭐 벌 수 없다면 그때 그 상황에 또 뭔가를 배우겠지. 그리고 지금 내가 해볼 수 있는 건 정해져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내 마음이 정해졌다면 그걸 하는 거니까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불안보다는 기대를 하게 돼요. 가능성이 무한하잖아요.
그리고 좀 놓은 게 커요. 놨어요. 미래도 걱정보다는 상상을 자주 해요. 좋은 생각도. 좋은 생각이라는 게 무조건 잘 될 거야, 이런 생각이 아니라 그 시간이 오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재밌겠다. 너무 즐거울 것 같아. 진짜 짜릿하겠다. 그게 지나고 나면 되게 애틋하겠지?' 이런 상상을 하고 그 이후에 난 무슨 일을 하지? 이런 거는 일단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상상이 잘 안 되고 (웃음) 그때 가서 보자 싶어요. 그런데도 그런 생각이 들 땐 그냥 해버려요. 그냥 거기에 머물러 보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흐르게 두다 보니까 크게 불편하진 않다. 내 인생 내 거니까 내가 알아서 하겠지. 미래에 내가 알아서 길 찾아가겠지. 미래의 나에게 맡긴다. 그야말로. 나는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 크게 별 생각이 없다.
미지 별 생각이 없을 필요도 가끔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말이 저는 좀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게 제가 많이 하고 있는 생각이라. 저도 좀, 어 특별하다가 아니라 저도 주변과 좀 달랐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혼자 레슨 한다고 야자를 빠지기도 했고 그렇게 음악교육과 사범대를 갔는데 혼자 교사를 안 하겠다고 해서 과에서 떠돌았고, 지금은 다들 취준하고 임고 치고 하는 시기에 혼자 창업을 했고.
희타 그러네요.
미지 앞으로는 뭐 하지? 모르겠거든요. 취업을 해야겠지? 싶긴 한데 별로... 잘 모르겠다. 앞으로 어떡하지?
희타 연주회. 연주회 해요.
미지 (웃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희타 그렇구나. 저는 그게 다르다는 생각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사람 다 똑같다. 그냥 저렇게 사는구나 저렇게 사는구나. 나는 어떻게 산다는 거에 대해 그렇게 큰 생각하지 않아서 몰랐어요. 사실 다르게 산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런 주제로 얘기를 잘 안 해서 그런가.
미지 저는 막 넌 진짜 하고 싶은 거 다 한다라는 소리를 굉장히 많이 듣는데, '이제는 멈춰야 되나?'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이런 낙관을 좀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가 못하고 있어서.
인터뷰 질문은 여기까지에요. 어떠셨나요?
희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미지 굉장히 멋진 말 많이 해주셨는데요.
희타 하하. 저는 '내 얘기가 재밌을까?'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그래서 얘길 잘 안 하려고 하고. 궁금해하지 않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을 아끼려고 애쓰고 또 말을 하고 나면 글을 써서 내보내는 것처럼 자꾸 괜히 말했다는 후회를 많이 해서 말을 안 하려고 하거든요. 불안해지고 막 그러니까. 그리고 글로도 남으니까 좀 걱정했는데 얘기하다 보니 그런 게 좀 날아가고. (웃음)
미지 근데 사람은 원래 말하는 걸 좋아한대요. 재밌어한대요.
희타 하고 싶은데 할 기회가 없었던 거죠.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듣는 게 괜찮으셨을지 모르겠어요.
미지 재밌었어요. 저도 궁금했던 거 다 물어봤어요. 만족!